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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미래까지 준비

1987년 취임…27년간 그룹 시총 397배로 성장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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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회장 회장 취임 사진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삼성은 현재 반도체 1위, 휴대폰 1위 등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초일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에 이르는 삼성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故 이건희 회장의 약속까지 거슬러 오르게 된다.

26일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뒤 삼성 측은 "세계가 놀란 변화의 중심에는 이건희 회장의 꿈과 약속이 있었다"고 밝혔다

1987년 회장 취임과 함께 선언된 이건희 회장의 약속은 당시 사람들에게 공허한 외침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현실화 됐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 원에 채 못미쳤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018년 386조 원을 넘기면서 39배, 이익은 2000억 원에서 72조 원으로 359배 성장했다.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96조 원으로 396배가 늘어났다.

◇IT 강국 초석 마련...이건희 회장, 한국경제 현재와 미래의 원동력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 것은 1974년이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TV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면서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과 일본보다 20~30년은 뒤쳐졌는데 따라가기나 하겠는가" 등의 평가 일색이었다. 아무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우려섞인 시선만의 그의 움직임을 따랐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합니까"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며 본인의 사재를 보탰다.

반도체 30년 기념 서명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피웠다.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랐다.

반도체 성공은 휴대폰(애니콜)이 이어 받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당시 이 회장은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전화기를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5년 8월 애니콜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랐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국가로 기록됐다.

신경영 20주년

이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번의 계기를 만들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겠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 극복의 리더십..."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는 이를 통해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이 영상은 이 회장에게까지 보고됐다.

당시 이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의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가 쌓인 삼성 제품을 보게 됐고, 품질에 대한 고민을 깊게 했던 시기였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에 이 회장은 문제점 해결을 위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발표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에 가입한 1996년, 삼성은 연평균 17%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시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 중이었던 이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나니까 현재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고 질책했다고 알려졌다.

이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내부 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 경영 합리화와 사업 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돌입한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던 삼성은 위환위기 속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학력 위주에서 실력 위주로"...사회 문화 변화 초석 쌓아

1957년 1월 민간기업 최초로 공개 채용을 도입해 27명의 사원을 채용한 삼성은 1995년 한국 기업사에 변화를 가져온 또 하나의 중대 결정을 발표했다.

바로 삼성 공채에서 학력 제한을 폐지한다는 것으로, 학력 위주에서 실력 위주로 채용한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가 무한 경쟁으로 가는 열린 시대를 맞아 이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전격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


이 회장은 "대학 졸업장과 관계 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로 해야 한다"며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이라고 밝혔다.

이때부터 삼성은 대졸 공채 대신 3급 신입사원 입사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에 합격할 실력만 되면 대학 졸업장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여성 분야에서 일어났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 회장은 "여성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전거 바퀴 두 개 중 하나를 빼 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고 말했다.

1987년 취임 초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은 여성들이 육아 부담때문에 마음 놓고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고, 어느 기업보다 앞서 어린이집 사업을 현실화했다.

◇상생과 동반성장 강조...하청업체에서 협력업체로

이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 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 회장은 작게는 삼성의 발전을 위해, 크게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위해 협력업체 육성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대부분이 양산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의 개념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삼성 계열사들에게 신뢰에 기반해 협력회사와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서는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라는 말이 사라지는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쓰며 모두가 같은 삼성 가족임을 확인했다.

이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1996년 신년사에서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신경영의 동반자"라고 협력업체를 정의했다.

◇스포츠 지원, 세계로 도약하다

이 회장은 스포츠가 국제교류와 세계평화 기여하는 힘을 인식하고 1997년부터 세계의 스포츠 발전에 힘을 보태왔다.

2009년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선 이 회장은 1년 반동안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이 기간 이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 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를 5바퀴 돌고도 남는다.

평창올림픽 유치 확정 당시


저녁 약속을 했던 IOC 위원이 다른 일정이 늦어져 약속을 취소한다고 해도 1시간30분을 기다려 만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또 IOC 위원과의 식사자리에는 항상 당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냅킨을 테이블에 비치하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소프트 경쟁력 강화...디자인경영 선언, TV도 세계 1등

이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4월 혁신적인 디자인의 휴대폰 'SGH-T100'이 출시됐다. 이 회장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조가비 형태의 이 휴대폰은 '이건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고 글로벌 1000만 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밀라노 사장단 전략 회의


또 이 회장은 2005년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 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이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으로 1996년에 이은 '제2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

이후 삼성의 디자인은 진화했고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 대가 판매되며 세계 TV 시장 판도를 바꿨다.

◇100년 기업을 향해...새로운 출발 선상에 선 삼성

"우리는 지금 가슴 벅찬 미래를 향한 출발선상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초일류이며, 방향은 하나로, 눈은 세계로, 그리고 꿈은 미래로 두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 갑시다"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이후 삼성은 100년 기업을 향한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장 취임 당시 미래를 향한 약속, IT 강국의 초석, 글로벌 영토 확장, 위기극복의 리더십, 사회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상생과 동반성장, 스포츠 지원, 소프트 경쟁력 강화 등이 모두 100년 기업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성희 기자 / lsh84@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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