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현장 목소리 듣는다더니...노동부, ‘노조 패싱’ 간담회

노동부, 노동시간 유연화 관련 IT기업 간담회 개최
인사담당자·사측 추천 근로자만 참여…노조원 한명도 없어
노조 “진짜 현장 목소리 배제한 가짜 의견수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0일 열린 주요 IT기업 노동자들과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가 ‘노동시간 유연화’와 관련해 IT업계 현장 의견을 들으려 개최한 간담회에 사측 추천 직원 외 노동조합 소속 직원은 한명도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노조 측은 정부가 경영자 입맛에 맞는 제도 개편을 추진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노조 편향의 정책도 위험하지만, 고용노동부가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하면 어느 부서가 하냐"면서도 "노조 역시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해 입장을 밝혀야지 투쟁만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일 ‘IT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라는 이름으로 기업 간담회를 주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네이버,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당근마켓, 토스 근로자와 인사담당자 등이 참여했다. 정부가 최근 추진 중인 노동유연화 정책과 관련, 근로시간제도, 임금체계, IT 인력양성 등에 대한 현장 의견을 듣겠다는 취지다.

노동부는 현재 주52시간제 개편을 포함한 ‘노동시간 유연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새정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현행 52시간제에서 ‘주 단위’로 관리하는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전환하는 개편안을 검토중이다. 정부 추진방향대로 제도가 개편되면 회사는 노사협의에 따라 1달 치 연장 근로시간을 1주에 몰아서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산술적으로는 최대 주 9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노동부는 이날 간담회 이후 IT 노동자들이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확대’, ‘근로시간 자기결정권 확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등을 원하며 대체로 노동시간 유연화 필요성에 동의하는 분위기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에 민주노총 화섬노조 IT위원회(IT노조)는 이번 간담회가 ‘가짜 의견수렴’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노조는 지난 11일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이번 노동부의 IT기업 간담회는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가짜 의견수렴”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노동부는 IT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정작 IT 노동자를 배제하고 인사담당자만 불러 간담회를 개최했다”며 “노동부가 간담회에 참여했다고 밝힌 ‘근로자’도 사측이 섭외한 노동자임이 확인됐다. 간담회 이후 발표한 보도자료 내용은 실제 현장의 목소리가 아닌 사측에 기울어진 의견”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나라는 법률을 통해 노조와 노사협의회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도록 하고 있다”며 “사측에게 근로자를 선별해 참여하도록 한 것은 경영자들의 입맛에 맞게 제도를 바꾸려는 의도”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실제로 IT 노동자 대부분은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에 대체로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T노조가 지난달 IT 노동자 183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주52시간제 개편안(연장 근로시간 ‘월 단위’ 관리 전환)에 대해 90.6%가 반대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기업이 영세한 30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94.6%가 해당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대표가 회사가 요구하는 연장 근로에 대해 거부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는 92.1%가 ‘아니’라고 답했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무노조 사업장에는 사실상 강제적인 연장근로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다.

노조 측은 ‘진짜’ 노동유연화를 위해서는 ‘포괄임금제 폐지’와 ‘근로자대표 제도 실효성 제고’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세윤 IT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 대응 토론회’에서 “IT업계에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근본적 원인은 포괄임금제”라며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쉽게 초과 근무를 시키고, 근로시간 측정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노조는 마지막으로 “노동부는 앞으로 IT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현장의 대표자인 IT노조를 통하라”며 “빠른 시일 내에 노조원 대상의 간담회를 개최해 실제 현장의 목소리도 들을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동일 기자 / same91@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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