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에 닥친 ‘노조 리스크’가 더 거세지고 있다. 창사 이래 처음으로 쟁의 행위 돌입을 공식화한 노동조합(노조)이 두 번째 단체 행동에 나선 가운데 이달 28일 재개 예정인 본교섭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파업이 초래될 가능성이 제기돼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AI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주도권 다툼에서 경쟁사에 밀려 2위로 추락한 삼성전자가 자칫 노조 리스크로 인해 AI 반도체 경쟁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24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5.24 가자! 서초로’ 문화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노조가 합법적 쟁위권을 확보한 이후 개최한 두 번째 단체 행동이다. 이 자리에는 노조 추산 2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이 운집했다. 특히 이날 집회는 ‘뉴진스님’으로 활동하는 개그맨 윤성호, 가수 에일리와 YB(윤도현밴드)의 공연도 진행됐다.
삼성 노조가 단체 행동에 돌입한 것은 임금 협상 교섭 결렬에 따른 것이다. 그간 삼성전자 노사는 여러 차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양측은 이후 이어진 세 차례의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조정에서도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결국 중노위는 올해 3월 14일 조정 중지 결정을 내렸다. 쟁의 행위 찬반 투표에 나선 전삼노는 조합원 2만853명 중 2만330명(97.5%)의 찬성표를 받으며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하게 됐다.
당시 전삼노 관계자는 “쟁의 찬반 투표에 참여한 2만여 명 중 97.5%의 조합원으로부터 압도적인 찬성을 받았다”며 “합법적인 쟁의권 확보를 위한 요건에서도 전체 조합원 2만7458명 중 74.0%의 찬성표를 획득해 올해 임금 협상 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권을 따냈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집회에서 전삼노는 노사협의회가 아닌 노조와의 입금 협상,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한 성과급 지급, 실질적인 휴가 개선 등을 사측에 촉구했다.
손우목 전삼노 위원장은 “우리가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해줄 것을 요구한다”며 “올해 DS 부문에서 1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더라도 사측은 EVA(경제적 부가가치) 기준으로 ‘성과급 0% 지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지탄했다.
이어 “이미 경쟁사인 LG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영업익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다”며 “직원들의 노력으로 영업익을 많이 벌어들였으면 그만큼 직원들의 정당한 노동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해와 올해 임금 협상 교섭 병합 조건인 실질적인 휴가 개선에 대한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노조의 화살은 삼성전자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를 향했다. 삼성전자 사업지원TF는 과거 그룹 콘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해체된 후 마련된 후속 조직이다. 현재 삼성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담당하고 있다.
전삼노는 노사 임금 협상 교섭이 지속 결렬돼 온 것을 두고 사업지원TF의 반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손 위원장은 “최근 교섭에서도 노조가 다수 양보하며 사측과의 임금 협상을 마무리하려 했으나 막바지에 ‘서초’의 결정으로 재충전 휴가 논의가 전면 중단됐다”며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부회장 한 사람의 반대로 교섭이 무산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수많은 조합원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정 부회장에게 항의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며 “정 부회장은 아무 권한도 없는 임직원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우지 말고 직접 노조와 만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 노조는 기존에 요구했던 임금 인상률 6.5%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열린 태도도 내보였다. 손 위원장은 “앞선 교섭에서 전삼노는 사측 요구안인 임금 인상률 5.1%를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냈다”면서 “반면 사측은 노조에게 양보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고 꼬집었다.
전삼노는 이달 28일 열릴 본교섭에서 사측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있을지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달 21일 삼성전자 노사는 임금 협상 실무 교섭을 재개한 바 있다. 당시 교섭에서 노사 양측은 추후 교섭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동시에 타결을 위해 서로 노력키로 했다.
다만 노조는 본교섭에서도 사측이 제대로 된 안을 제시하지 않을 시 다시 교섭 결렬을 선언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전삼노 관계자는 “28일 예정된 본교섭에서 사측과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29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때 전삼노가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파업 돌입 선언이 담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최근 삼성 반도체 사업 수장이 전격 교체되는 등 삼성전자 내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노조 리스크로 인해 내부 결집력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이달 21일 삼성전자는 전영현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 부회장을 신임 DS 부문장으로 위촉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삼성이 갑작스런 핀셋 인사를 단행한 것은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내주면서 ‘글로벌 톱 메모리 업체’로서의 위상에 흠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AI 메모리 시장에서 위기에 몰린 삼성은 HBM 경쟁력 제고에 사활을 건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부터 D램을 8단으로 적층한 HBM3E 8단 제품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HBM3E 12단 제품은 올 2분기 내 생산한다는 포부다.
그러나 기술 초격차 전략을 앞세운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 강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SK하이닉스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SK가 HBM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삼성이 엔비디아 등 주요 AI 반도체 업체들을 빼앗아 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에서다.
이같은 위기 상황에서 노조 리스크까지 심화할 경우, 삼성 반도체는 HBM 등 차세대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글로벌 주도권 다툼에서 뒤처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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