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거품론’, 삼성·SK 반도체 실적 괜찮나…“‘AI 메모리’ HBM 앞세워 정면돌파”

증권가, K-반도체 실적 전망치 잇따라 하향 조정
D램 가격 하락세 돌아서…재고 수준도 다시 확대 추세
K-반도체, HBM 등 AI 칩 적극 대응 난관 돌파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사진=삼성전자>

‘반도체 한파’를 이겨 내고 올 상반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한 K-반도체가 하반기 들어 예상보다 더딘 IT 수요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반도체 업계가 HBM(고대역폭메모리), DDR5 등 고부가 제품 위주로 생산 능력을 늘리면서, 그간 공급이 줄었던 범용 D램 업황이 본격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돼 왔지만, D램 업황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실적 개선 흐름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 수요가 견조한 HBM 등 고성능 AI 메모리에 더욱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증권 업계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 3분기 실적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9조7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는 기존 13조7000억원에서 무려 4조원가량 떨어진 수치다. 현대차증권도 삼성전자의 영업익 전망치를 기존 14조7000억원에서 11조8000억원으로, 3조원 가까이 내려 잡았다.

SK하이닉스도 올 3분기 예상보다 낮은 실적을 거둘 것이란 관측이다. DB금융투자는 SK하이닉스의 3분기 영업익 전망치를 6조5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기존 7조원 대비 5000억원 감소한 수치다.

올 상반기만 해도 D램 업황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부터 감산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HBM 생산 능력을 키우기 위해 범용 D램 생산라인을 HBM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면서 D램 공급 과잉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실제 이같은 전망은 맞아 떨어지는 듯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올 4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2.1달러로, 직전월인 3월 대비 16.67% 급등했다. D램 고정거래가격이 2달러대에 진입한 것은 2022년 12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특히 PC 제조 업체들이 IT 업황 개선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D램을 대량으로 사들이며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D램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사진=SK하이닉스>

그러나 최근 D램 가격은 바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7월보다 2.38% 내린 2.05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 선행 지표로 통하는 D램 현물 가격 역시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D램익스체인지가 집계한 범용 D램 ‘DDR4 8Gb 2666’의 현물 가격은 이달 6일 기준 1.971달러였다. 이는 연고점인 올 7월 24일 2달러 대비 1.5% 내린 수치다. 더 용량이 큰 ‘DDR4 16Gb 2666’ 제품 가격 역시 7월 23일의 연중 최고가 3.875달러에서 이달 6일 3.814달러로 1.6% 하락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PC 제조 업체들이 올 2분기에 공격적으로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재고 압박이 가중됐다”며 “전반적인 IT 수요 침체와 맞물려 판매 실적이 부진해 PC용 D램 조달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달 하순에 D램 업체들이 낮은 계약 가격에 메모리 칩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4분기 시작된 가격 상승세가 뒤집혔다”며 “월간 거래량도 상당히 감소했다”고 부연했다.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는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KB증권에 따르면 현재 D램 업체들의 재고 수준은 지난해 다운턴(하강 국면)과 비슷한 12~16주로 늘어난 상태다.

삼성·SK는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K-반도체는 이를 위한 해결사로 HBM과 DDR5 등 고부가 제품을 낙점했다. 특히 HBM을 앞세워 AI(인공지능) 열풍에 힘입어 빠르게 늘고 있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한다는 구상이다.

최근 삼성·SK에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가 올해 말부터 차세대 AI 반도체를 본격 양산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올 3월 공개한 차세대 AI 칩 ‘블랙웰’을 2025 회계연도 4분기(올 11월~내년 1월)부터 양산에 돌입한다”고 말했다.

앞서 올 3월 엔비디아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를 열고, 차세대 AI 반도체 ‘B100’과 ‘B200’을 선보인 바 있다. B100, B200은 엔비디아 호퍼 아키텍처 기반의 H100의 성능을 뛰어 넘는 차세대 AI 반도체다. 호퍼 아키텍처가 아닌 새로운 플랫폼 블랙웰을 기반으로 제조돼 H100 대비 최대 30배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반면 에너지 소비는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블랙웰은 2년 전 출시된 호퍼 아키텍처의 후속 기술이다. 최대 10조개의 파라미터로 확장되는 모델에 대한 AI 훈련과 실시간 LLM(거대언어모델) 추론을 지원한다. 블랙웰이라는 명칭은 게임 이론과 통계학을 전공한 수학자이자 흑인 최초로 미국국립과학원에 입회한 데이비드 헤롤드 블랙웰에서 따 왔다.

새 아키텍처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신형 AI 칩은 최대 208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칩이라는 게 엔비디아의 설명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블랙웰의 샘플을 파트너사와 고객사에 납품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CEO는 “블랙웰 샘플은 이날부터 전 세계 파트너사와 고객사에 배송되고 있다”며 “현재 블랙웰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실로 엄청나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 HBM3E 12단. <사진=SK하이닉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양산이 본격화한다는 소식에 K-반도체도 동반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AI 칩을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선 핵심 AI 메모리인 HBM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엔비디아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있는 SK하이닉스는 큰 수혜가 점쳐진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한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공룡인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올 3월엔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하며 삼성전자 등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SK는 HBM 경쟁력 확보에 더욱 속도를 올리고 있다. 특히 주요 고객사에게 샘플로 제공한 HBM3E 12단 제품을 올 3분기 내 양산하고, 4분기에 본격 출하해 글로벌 HBM 시장에서의 위상을 한층 제고하겠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에는 HBM3E가 HBM3의 출하량을 크게 넘어 서고, 전체 HBM 출하량 중 절반을 차지할 것이다”며 “올해는 TSV(실리콘관통전극) 생산 능력 확대, 10나노 5세대(1b) 전환 투자 등을 기반으로 HBM3E 공급을 빠르게 늘려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명예 회복을 노리고 있는 삼성전자도 엔비디아의 최신 AI 칩 양산 소식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그간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사로잡지 못했던 삼성전자는 최근 5세대 HBM인 HBM3E에 대한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비해) HBM 시장에 다소 늦게 뛰어 들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엔비디아로부터 HBM3E 품질 검증을 완료하고 ‘H200’용 HBM3E 8단 제품의 출하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한 삼성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질 전망이다. 차세대 AI 칩인 블랙웰에는 8개의 HBM3E 12단 제품이 탑재될 것으로 예상돼서다. 주목할 점은 삼성전자가 HBM3E 12단 제품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36GB HBM3E 12H.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지난 4월 24Gb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구현했다. TSV는 수천개의 미세 구멍을 뚫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적층된 칩 사이를 전극으로 연결하는 기술이다. 삼성은 이 기술을 기반으로 3GB 용량인 24Gb D램 12개를 수직으로 쌓아 현존 최대 용량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의 HBM3E 12H는 AI 서비스 고도화로 데이터 처리량이 급증하는 최근 추세 속에서 최고의 솔루션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당 제품을 활용할 경우 GPU 사용량이 줄어 총 소유 비용(TCO)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서버 시스템에 HBM3E 12H를 적용하면 HBM3 8H를 탑재할 때보다 AI 학습 훈련 속도를 평균 34% 개선할 수 있다. 추론의 경우에는 최대 11.5배 많은 AI 사용자 서비스가 가능하다.

삼성은 업계 최초로 개발한 HBM3E 12단 제품을 고객사 일정에 맞춰 올 하반기에 본격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 부사장은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 상반기 HBM3 내 12단 판매 비중이 3분의 2 수준을 기록한 만큼 HBM3E에서도 성숙 수준의 패키징을 구현했다”며 “이를 기반으로 HBM 사업 내 HBM3E의 매출 비중은 3분기에 10% 중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4분기에는 60% 수준까지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고 내다 봤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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