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차전지 분야 고부가가치 소재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C가 올해 3분기까지 8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의 여파가 배터리 업계는 물론 소재 분야에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SKC의 주력 사업인 이차전지 소재 사업의 영업손실이 확대됐다.
실적 부진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SKC는 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SKC는 ‘회과자신(悔過自新)’의 자세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은 글라스(유리) 기판 사업을 적극 육성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SK그룹 전반에 걸쳐 진행 중인 리밸런싱에 발맞춰 운영 개선에도 힘써 재무 건전성을 제고하겠다는 포부다.
SKC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해 3분기 매출액이 4623억원으로 집계됐다고 5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3774억원 대비 22.5%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적자 기조를 이어 갔다. 올 3분기 영업익은 -6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1억원 대비 적자 폭을 더욱 키웠다. 이번 분기에도 영업 적자를 기록하면서 SKC는 2022년 4분기부터 8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SKC 관계자는 “주요 사업의 업황 회복이 여전히 쉽지 않아 양대 축인 이차전지 소재 사업과 화학 사업에서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사업 부문별로 살펴보면 올 3분기 이차전지 소재 부문의 매출은 786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761억원 대비 55.4% 줄어든 수치다. 영업익은 -35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9억원에서 적자폭이 확대됐다.
이차전지 소재 부문의 실적이 상당히 저조한 것은 전기차 업황 부진, 고객사 수요 둔화 등이 지속됐고, 고객사 재고 일시 조정 영향으로 IT 및 ESS(에너지저장장치) 관련부문의 판매가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이에 따른 가동률 저하로 고정비 부담이 확대되면서 영업손실이 크게 늘었다는 게 SKC의 설명이다. 다만 재고 감축으로 평가 충당금 일부가 환입 되면서 직전 분기인 올 2분기(-374억원)보다는 영업 적자 폭을 줄였다.
화학 부문 매출은 1년 새 75.0% 증가한 3130억원이었다. 그러나 영업손실은 157억원으로, 적자 기조를 지속했다. 주력 제품인 프로필렌글리콜(PG)의 견조한 산업용 수요에 힘입어 판매가 호조를 이뤘으나 북미, 유럽 등 원거리 해상 운임이 상승하면서 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영업익은 적자를 냈다.
이차전지 소재, 화학 부문과 달리 반도체 소재 부문은 SKC의 효자 사업으로 등극했다. 올 3분기 반도체 소재 부문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208억원 대비 222.6%나 증가한 671억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2억원에서 141억워으로, 무려 540.9% 급증했다.
AI(인공지능) 서버향 비메모리 양산용 테스트 소켓 매출이 꾸준히 성장한 것이 실적 개선에 주효했다. 특히 테스트 소켓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27%에 이를 정도로 고수익 기조가 유지됐다. 또한 SK엔펄스의 주력 품목인 CMP 패드 등 기타 부품이 손익분기점 수준에 도달하면서 선방했다.
8개 분기 연속 적자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SKC는 위기 극복에 사활을 걸었다. SKC는 사업 부문별 경쟁력 강화를 통해 내년부터 실적 반등을 노린다는 구상이다.
이차전지 소재 부문에선 이차전지용 동박 사업 투자사 SK넥실리스를 통해 중화권 대형 고객사의 물량 판매에 나선다. SK넥실리스는 주요 고객사와의 중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해 매출을 본격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특히 말레이시아공장 가동률을 큰 폭으로 끌어 올려 원가 구조 개선을 실현할 예정이다.
화학 부문은 PG의 동절기 수요 증가와 해상 운임 안정화 영향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관측된다.
반도체 소재 부문의 경우 테스트 소켓 사업을 하는 ISC가 주축으로 자리 잡으며 지난 분기에 이어 이번 분기에도 반도체 소재 사업의 실적을 견인한 바 있다. 계절적 비수기 영향으로 메모리용 테스트 소켓 판매가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이나 베트남공장 증설을 서둘러 완료해 빅테크 수주 물량 대응 기반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수익성을 제고한다는 구상이다.
SKC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성장동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한다. 글라스 기판 사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글라스 기판은 최 회장이 점찍은 SK의 미래 먹거리다. 글라스 기판은 반도체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되는 핵심 부품이다. 플라스틱을 활용하는 기존 반도체 기판과 달리 유리를 원재료로 해 기판을 보다 얇고 평평하게 만들 수 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질 뿐 아니라 전력 소비도 기존 기판 대비 30% 이상 줄어든다. 이에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고성능 AI 메모리에 적용하기 위한 고순도 글라스 기판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SKC가 글라스 기판을 양산한다면 SK하이닉스와 엄청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SK하이닉스가 글라스 기판 기반의 HBM을 출시한다면 AI 반도체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글라스 기판에 대한 최 회장의 관심은 지대하다. 앞서 올해 7월 최 회장은 미국 조지아주 커빙턴시에 위치한 앱솔릭스를 찾아 세계 최초 글라스 기판 양산 공장을 둘러보고, 사업 현황을 보고 받았다. 앱솔릭스는 SKC가 고성능 컴퓨팅용 반도체 글라스 기판 사업을 위해 2021년 설립한 자회사다.
최 회장은 미국 출장에서 만난 빅테크 CEO(최고경영자)들에게 앱솔릭스 글라스 기판의 기술 경쟁력을 소개하며 영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6월부터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인텔의 CEO와 연쇄 회동을 하며, 글로벌 AI 파트너십 구축에 힘써 왔다. 대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센터가 글라스 기판의 주요 수요처인 만큼 최 회장이 영업맨을 자처한 것이다.
최 회장의 강한 의지에 힘입어 앱솔릭스의 글라스 기판 양산 목표도 차질 없이 순항하고 있다.
앱솔릭스의 글라스 기판 사업은 내년 고객사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완공된 공장에는 현재 모든 설비가 설치됐다. 아울러 고객사 인증용 샘플 제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뿐만 아니다. SKC는 그룹 리밸런싱의 일환인 운영 개선을 통해 재무 건전성 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SK그룹은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의 FCF(잉여현금흐름)를 만들어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운영 개선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제반 경영 활동이자 경영 전략이다.
그룹 기조에 발맞춰 SKC도 최우선 과제로 재무 건전성 강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먼저 비핵심 자산의 적기 유동화로 1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해 차입금을 줄이고 투자사의 재무 부담을 크게 낮췄다. 올 9월에는 SK넥실리스에 대한 7000억 유상 증자 지원으로 인수 금융 전액을 상환했다.
SKC는 올 연말 순차입금 규모가 연초 대비 30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렇듯 주력 사업 경쟁력 제고와 신성장동력 육성, 운영 개선 기반의 재무 건전성 강화를 통해 SKC는 적자 기업 타이틀을 떼고, 실적 반등을 꾀한다는 목표다.
SKC 관계자는 “올 하반기 턴어라운드를 전망했으나 여전히 업황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다”며 “‘스스로를 깊이 되돌아보고 새롭게 나아간다’는 ‘회과자신’의 자세로 주력 사업의 기초 체력과 경쟁력을 키우고, 글라스 기판 신규 사업 추진, 재무구조 개선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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