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AI(인공지능) 열풍 확산으로 주요 빅테크 간 AI 칩 개발 경쟁이 본격화 되고 있다. AI 반도체 공룡인 엔비디아에 맞서 AMD가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도 AI 반도체 경쟁에 가세한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AI 칩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빅테크 간 대결이 격화되면서 AI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도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글로벌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K-반도체가 더 큰 수혜를 입을 것이란 분석이다.
12일(현지시간)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인 브로드컴이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과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호크 탄 브로드컴 CEO(최고경영자)는 2024 회계연도 4분기(올해 8~10월) 실적 발표 후, 투자자들과 가진 콘퍼런스콜에서 “향후 3년 간 AI에서 기회를 보고 있다”며 “대규모 클라우드 업체들이 자체 맞춤형 AI 가속기를 개발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탄 CEO는 “현재 매우 큰 고객사 3곳과 AI 칩을 개발 중이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 3곳이 어떤 기업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들 3곳 중 1곳이 애플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최근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애플이 브로드컴과 함께 AI 연산 처리를 위한 서버 칩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브로드컴이 AI 반도체 개발을 공식화하면서 향후 엔비디아와 AMD 등이 과점해 온 글로벌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브로드컴은 글로벌 반도체 및 인프라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이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고성능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제품을 설계·개발한다. AI 관련 솔루션 역량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브로드컴은 지난 1년 간 생성형 AI 인프라 수요 급증으로 AI 관련 매출이 220% 증가한 122억달러(약 17조4753억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이미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춘 브로드컴이 첨단 AI 칩을 개발한다면 엔비디아, AMD 와의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브로드컴은 AI 칩 출시와 동시에 빠르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 나갈 것으로 점쳐진다. AI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 3곳에 브로드컴 제품이 공급될 예정이어서다.
탄 CEO는 이와 관련해 “이들 3곳은 2027년까지 100만개의 맞춤형 AI 칩을 데이터센터에 이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브로드컴의 AI 칩 시장가세는 삼성·SK 등 K-반도체에도 큰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AI 반도체를 원활하게 구동하기 위해선 핵심 AI 메모리인 HBM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삼성·SK가 글로벌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브로드컴 역시 두 업체의 HBM을 탑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SK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38%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삼성·SK의 점유율 합산은 91%로, 사실상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
K-반도체가 글로벌 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 덕분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SK하이닉스는 HBM의 진보를 주도해 왔다. 지난해에는 업계 최고 성능의 5세대 HBM ‘HBM3E’를 개발하며 ‘AI 메모리 최강자’로 우뚝 섰다.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SK는 9월에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연내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삼성전자도 HBM 기술 개발에 매진하며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2월 24Gb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한 업계 최대 용량의 36GB HBM3E 12H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바 있다. 이어 10월 31일에는 올 4분기 엔비디아의 HMB3E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차세대 HBM 개발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SK는 6세대 HBM인 ‘HBM4’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 SK하이닉스는 어드밴스드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 기술을 적용해 내년 하반기부터 HBM4를 본격 공급한다는 목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차세대 HBM은 원가를 낮추는 것보다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로 적기에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며 “6세대 HBM4는 내년 하반기 출하를 목표로, 어드밴스드 MR-MUF, 10나노급 5세대(1b) 미세 공정 기술 등을 적용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파트너(대만 TSMC)와 원팀 체계도 구축 중이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도 AI 메모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HBM4 개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삼성그룹을 일구는데 근간이 된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해 반도체 역량을 다시 제고하고 차세대 메모리를 선점한다는 포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하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복수 고객사와 커스텀(맞춤형) HBM 사업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메모리 칩 시장에서 주력 제품으로 부상한 HBM3E에 이어 차세대 HBM4까지 독보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삼성·SK는 AI 칩을 개발 중인 브로드컴을 비롯해 주요 빅테크들의 러브콜을 받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반도체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면서 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전 세계 HBM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SK의 HBM을 확보하려는 빅테크와 K-반도체 간 밀월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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