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9일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상호 관세를 부과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90일 간 관세를 유예하는 조치를 취했고,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제품에 대해 관세가 면제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자마자 “관세 부과에 예외는 없다”며 다시 정정하고 나섰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 기업들이 일희일비하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는 삼성전자의 고심이 그 어느때 보다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와 전자 제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곧 발표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삼성의 대응 전략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제품에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지난 11일에 발표한 것은 관세 예외(exception)가 아니다”며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제품은 기존 관세를 적용 받으며, 추후 다른 관세 범주(bucket)로 옮겨질 것이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를 비롯한 디지털 기기 및 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재차 강조한 것은 미 행정부가 발표한 공지에서 비롯된 혼선 때문이다.
앞서 지난 11일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상호 관세에서 제외되는 수입품의 품목 코드(HTSUS)를 전격 공개했다. CBP가 밝힌 상호 관세 제외 품목에는 반도체를 비롯해 반도체 제조 장비,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등 반도체 부품, 집적회로,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스마트폰, 평면 디스플레이 모듈 등 여러 전자 제품이 포함됐다.
CBP의 공지대로라면 이들 품목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각국에 부과한 상호 관세를 적용 받지 않는다. 이에 미 언론은 12일 CBP의 공지에 주목하고, “‘관세 면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혀 온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9일 국가별 상호 관세를 90일 유예한 데 이어, 반도체 등 전자 제품에 대한 관세도 면제하는 등 관세 정책 기조를 완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품목이든 예외 없이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13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CBP의 공지에 대해 “반도체 등 전자 제품은 상호 관세를 면제 받지만, 아마 한두달 내로 나올 반도체 관세를 부과 받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는 목적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품목의 생산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다”며 “품목별 관세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사실상 반도체의 경우 품목별 관세를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관세와 중첩되지 않도록 했을 뿐 반도체 등 국가 안보에 중요한 품목에 상호 관세와 별개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다.
실제 품목별 관세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를 다음주에 발표하겠다고 엄포까지 놨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반도체에 대한 관세가 “머지않은 미래에 시행될 것이다”고 못 박았다. 실제 반도체 관세율이 얼마나 될지 묻는 질문에 “다음주 중에 발표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품목별 관세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도체 및 전자 제품 제조 업체들은 또 다시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부터 스마트폰, 가전 등 주요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향방에 대해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등 전자 제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가 매겨지면 삼성은 상당한 관세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 주력 제품의 생산 거점 대다수가 미국 외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관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미국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반도체를 양산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경우 베트남에서 갤럭시 전체 물량의 절반가량이 생산되고, 30%가량은 인도에서 만들어진다. 나머지 물량은 한국, 브라질 등에서 제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의 가전공장도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미국을 빼고, 한국, 베트남, 인도 등에서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이 주로 양산된다.
어느 국가든 미국 외에서 생산되는 전자 제품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는 만큼 삼성전자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비상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에서 상호 관세 부과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참석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품목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에게 당근을 주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일부 기업들의 경우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유연성이 적용될 것이다”고 전했다.
이를 고려할 때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주요 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트럼프발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하진 않다”고 한발 물러서는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 반도체 관세가 인하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사그러드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대신 자국 기업인 애플 챙기기에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그는 아이폰에 부과하는 관세와 관련해 “곧 발표할 것이다”면서 “일부 유연성은 있어야 할 것이다”고 애플에 유리한 관세를 부과하려는 뜻을 시사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토대로 모든 국가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했다. 이어 미국이 많은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기본 관세에다 국가별로 차등화된 개별 관세를 더한 상호 관세도 9일 매겼다.
특히 백악관이 ‘최악의 침해국’이라고 표현한 60여 개국은 기본 관세 10%를 포함해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 받았다.
최악의 침해국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미국은 환율 조작 및 무역 장벽을 포함해 한국이 미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절반을 디스카운트(할인)한 25%를 상호 관세로 책정했다. 한국 외에 △베트남 46% △대만 32% △인도네시아 32% △인도 26% △일본 24% △유럽연합(EU) 20% 등도 타깃이 됐다.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수십%의 보복 관세까지 더해 무려 125%의 상호 관세를 때려 맞았다. 여기에 추가 관세 20%까지 합하면 미국의 대(對)중 관세는 무려 145%에 이른다.
그러나 여러 국가가 트럼프 관세 리스크의 타깃이 되면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대외 불확실성이 큰 폭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글로벌 경제 충격이 예상을 뛰어 넘고 미국과 주요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발효 13시간여 만에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상호 관세를 유예했다.
단 기본 관세 10%는 여전히 적용된다. 이에 삼성전자의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이 미국에 수출될 경우 10%의 관세가 부과된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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