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I 메모리 HBM 진입 초읽기…K-반도체, HBM 독주체제 흔들리나

YMTC. HBM 자체 제조키로…필수 기술 TSV 공정도 개발 중
화웨이는 HBM 개발 성공 공식 발표…4세대 HBM3 성능 수준
중국, 사실상 글로벌 HBM 시장 진입…SK·삼성 피해 우려
‘HBM 3등’ 전락한 삼성, 중국 타깃 될까…위기 대책 마련 시급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업체 YMTC(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가 AI(인공지능) 핵심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자체 제조키로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빅테크인 화웨이의 경우 최근 HBM 개발에 성공했다고 선언하면서 놀라움을 사기도 했다.

당장 중국이 HBM을 조만간 양산할 수 있다는 소식에 K-반도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HBM은 여러 장의 D램을 적층해야 하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데, 이를 생산한다는 것은 중국이 첨단 칩 제조 역량을 확보하게 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삼분해 온 글로벌 HBM 시장에 중국이 조만간 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29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YMTC는 전 세계 HBM 시장 진출을 시사했다.

로이터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YMTC가 HBM을 포함한 D램 제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12월 미국이 대(對)중국 HBM 수출 통제를 확대한 이후, 중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YMTC의 HBM 제조 계획은 이미 스타트를 끊었다. 중국의 기업 정보 관련 업체인 치차차(企査査)에 따르면 YMTC는 이달 초 중국 우한에 세 번째 반도체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자본금 207억위안(약 4조669억원) 규모의 신규 법인을 설립했다.

업계는 해당 법인이 YMTC의 HBM 사업을 이끌 첨병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로이터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YMTC는 우한에 건설 중인 신규 반도체 양산 시설의 일부를 D램 생산라인으로 구축하는 것을 고려 중이다”고 말했다.

다만 YMTC의 새 반도체공장의 월간 생산 능력이나 D램 할당 규모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 YMTC 반도체공장. <사진=YMTC>

아울러 YMTC는 HBM 제조에 반드시 필요한 첨단 반도체 패키징 기술 ‘TSV(실리콘관통전극)’ 공정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TSV는 수천개의 미세 구멍을 뚫은 D램 칩을 수직으로 쌓고, 적층된 칩 사이를 전극으로 연결하는 고난도 기술로, 고용량과 고대역폭을 구현한다.

해당 기술의 수준이 상당히 높다 보니 지금껏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 단 3곳만이 HBM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 전 세계 시장에 공급 중인 HBM은 이들 3개사 제품뿐이다.

그러나 YMTC가 HBM 자체 제조를 선언하면서 SK·삼성·마이크론 삼국지였던 전 세계 HBM 시장에 거대한 파란이 일 것으로 예고된다.

비단 YMTC뿐만 아니다. 화웨이는 아예 HBM 개발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최근 화웨이는 자체 개발 HBM ‘HiBL 1.0’을 선보이고, 내년 1분기 출시 예정인 신형 AI 반도체 ‘어센드 950PR’에 해당 HBM을 탑재하겠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HiBL 1.0의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고 자평했다. 화웨이에 따르면 HiBL 1.0은 128GB 용량에 최대 1.6TB/s의 대역폭을 제공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5세대 HBM ‘HBM3E’ 12단의 대역폭이 1.2TB/s인 점을 감안하면 HiBL 1.0의 성능이 상당히 출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K-반도체는 HiBL 1.0이 4세대 HBM ‘HBM3’에 더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례를 볼 때 화웨이는 SK, 삼성. 마이크론 등보다 한두 세대 이전의 메모리를 만들어 왔다”며 “화웨이가 HBM3E에 맞먹는 제품을 내놨을 것으로 보기엔 다소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록 업계에서는 HiBL 1.0이 4세대 HBM3와 유사한 만큼 화웨이가 아직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 HBM 개발에 성공한 이상 첨단 메모리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 굴기를 추구하는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에 힘입어 화웨이가 HBM 경쟁력을 단숨에 제고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원팀’ 전략으로 반도체 역량 강화에 힘을 모으고 있어 내년에 출시되는 HBM 제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HBM4’. <사진=SK하이닉스>

기술력이 부족한 중국에게 있어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HBM 시장이 마침내 중국의 진입을 허용하면서 향후 글로벌 시장에 지각 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전 세계 HBM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K-반도체에 피해가 집중될 것이란 암울한 전망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속앓이를 하고 있다.

그나마 SK하이닉스는 사정이 낫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와 밀월 관계를 맺고 있는 SK는 전 세계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 상태다.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SK하이닉스는 HBM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에는 업계 최고 성능의 HBM3E를 개발하며 ‘AI 메모리 최강자’로 우뚝 섰다.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SK하이닉스는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차세대 HBM 패권도 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다. SK는 올 하반기 6세대 HBM ‘HBM4’ 12단 제품을 본격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올 3월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에 HBM4 12단 샘플을 공급했다.

이달 들어선 HBM4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양산 체제를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SK는 안정성을 검증 받은 자체 패키징 기술인 어드밴스드 MR-MUF(매스리플로우-몰디드언더필) 공정을 통해 HBM4를 효율적으로 고단 적층함과 동시에 방열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에 이전 세대인 ‘HBM3E’보다 대역폭이 2배로 확대됐고, 전력 효율은 40% 이상 개선됐다. SK가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실현한 것이다.

또 신제품은 10Gbps를 훌쩍 넘는 동작 속도를 구현해,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의 HBM4 표준 동작 속도인 8Gbps를 크게 뛰어넘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이렇듯 첨단 AI 메모리 리더십을 제고한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출하량 기준 올 2분기 SK하이닉스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무려 62%를 기록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상황이 좋지 않다. HBM 주도권 확보에 실패하면서 글로벌 HBM 시장에서 좀처럼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올 2분기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17%에 그쳤다. 이에 21%인 마이크론에 역전을 허용했다, SK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HBM 2등’ 자리를 지켜 온 삼성이 끝내 마이크론에 추월당해 3위로 내려 앉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HBM 양산이 본격화하면 삼성전자는 YMTC,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의 첫 번째 타깃이 될 공산이 크다. 결국 삼성은 SK, 마이크론을 따라 잡는 것보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더 주력해야 하는 위기에 놓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삼성전자는 기술 초격차 전략을 바탕으로 HBM 패권을 탈환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삼성은 올 하반기에 HBM4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하고, AI 메모리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HBM4에 1c(10나노급 6세대) D램을 도입키로 해 경쟁사를 긴장케 하고 있다. 가장 미세화된 1c 기술은 메모리 성능을 높이고 전력 소비를 줄이는 첨단 선행 기술로, HPC(고성능 컴퓨팅)와 AI 반도체의 진보에 있어 필수 기술로 여겨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HBM4는 고객사 일정에 맞춰 기존 계획대로 올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며 “1c 기반 HBM4 개발을 완료해 주요 고객사에 샘플을 이미 출하했다”고 밝혔다. 고객사가 어디인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업계에선 엔비디아로 추정하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