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사유진 기자>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경영 전면에 복귀한 지 8개월, 네이버의 체질이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네이버를 지탱해 온 축이 ‘검색’이었다면, 이 의장이 새로 설계한 네이버의 미래 지도는 △ AI △중동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된다.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며 경영 전면에 등판한 이 의장은 “모바일 시대에 해외로 진출했듯, AI 시대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강한 전의를 피력했다. 그의 경영복귀 이후 네이버는 단순한 정보 플랫폼을 넘어, 국가 단위의 인프라까지 설계하는 생태계 조성자로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 美 빅테크 틈새 파고든 ‘소버린 AI’…중동·동남아 공략
이 의장의 핵심 전략은 ‘소버린 AI’다. 구글, 오픈AI 등 미국 빅테크가 주도하는 AI 패권 다툼 속에서, 네이버는 자사의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통해 각국의 언어와 문화적 맥락, 규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맞춤형 AI’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미국 서버에 데이터를 넘기지 않고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자체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어하는 아시아와 중동 국가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지다. 실제로 네이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동남아 주요 통신사 및 정부 기관과도 ‘소버린 클라우드’ 구축 계약을 연이어 체결한 바 있다.
네이버의 소버린 AI는 지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최근 통합 컨퍼런스 ‘단25’에서는 제조업 등 물리적 현장의 AI 전환(AX)을 이끌 ‘소버린 AI 2.0’ 전략을 발표했다. 자국 언어와 산업 구조를 정확히 파악해 자동차, 조선 등 물리적 현장이 중요한 산업계에 ‘피지컬 AI’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네이버는 로봇 친화형 빌딩인 제2사옥 ‘1784’와 각 세종 데이터센터를 연결해 피지컬 AI의 테스트베드로 본격 운영할 예정이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왼쪽)과 마제드 알 호가일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 장관. <출처=사우디 국영 통신 SPA>
◆ 교통·로봇·금융까지…사우디 도시에 ‘네이버 OS’ 이식
이 의장이 직접 챙기는 중동 사업은 건설이나 단순 수주 차원을 넘어섰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지역을 네이버의 기술이 통용되는 ‘제2의 내수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이미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와 진행 중인 디지털 트윈 사업을 통해 사우디 주요 도시를 가상 공간에 복제하고 있다. 도시 관제, 로봇 배송, 교통 시스템 등을 네이버 생태계 안에서 운영할 수 있도록 스마트시티의 운영체제(OS) 자체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네이버는 사우디에 공간 지능뿐 아니라 금융 인프라까지 이식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 의장은 지난 18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시티스케이프 글로벌’에 직접 참석,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 장관을 만났다. 양측은 부동산 투자·경제와 연계된 스테이블코인과 데이터센터 개발 계획에 관한 공동 추진 방안을 협의했다. 도시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결제 시스템’까지 네이버 생태계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출처=네이버>
◆ 두나무와 합병 추진,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선점
이 의장이 보여준 가장 파격적인 행보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와 네이버파이낸셜의 합병 추진이다. 이는 이 의장이 그리는 ‘금융 플랫폼’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해석된다.
네이버는 그동안 네이버페이를 통해 간편결제 시장을 장악했지만, 해외 결제와 송금망 확장에 있어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한계에 부딪혀왔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페이팔의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벤치마킹, 네이버와 두나무가 주도하는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합병할 경우, 네이버의 막강한 콘텐츠 IP(지식재산)와 커머스 결제망이 두나무의 블록체인 유동성과 결합하게 된다. 이는 특히 금융 인프라가 부실하거나 국경 간 송금 니즈가 큰 중동 및 동남아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네이버가 만든 스마트시티(중동)에서, 네이버가 발행한 코인으로 결제하는 ‘네이버 경제권’의 완성을 꿈꾸는 것이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이해진 의장의 복귀는 네이버가 더 이상 ‘내수용 포털’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면서 “AI로 기술 장벽을 넘고, 코인으로 금융 장벽까지 허무는 글로벌 ‘메가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는 초입 단계”이라고 평가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동일 기자 / same91@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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