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청소년 소셜미디어(SNS) 차단’ 조치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출처=EPA 연합뉴스>
호주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청소년 소셜미디어(SNS) 차단’ 조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과 체코를 비롯해 10여 개국이 잇따라 유사한 법안을 추진하며 미성년자 보호 강도를 높이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과거 ‘게임 셧다운제’의 부작용을 의식해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체코 정부는 8일(현지시간) 15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SNS 이용을 법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바비시 총리는 “전문가들이 소셜미디어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며 “아이들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카렐 하블리체크 부총리 역시 CNN 프리마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논의는 지난해 12월 호주가 실제 청소년 SNS 차단 조치를 시행한 데 있다. 호주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계정 보유를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고, 위반 시 플랫폼 사업자에게 최대 4950만 호주달러(약 485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호주의 결정 이후 스페인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3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세계정부정상회의(WGS)에서 “SNS는 중독과 폭력이 난무하는 디지털 무법지대”라고 비판하며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이용을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유럽연합(EU) 내 기류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해 11월 소셜미디어 기본 이용 연령을 EU 차원의 ‘디지털 최소 연령’ 16세로 두고, 13세 미만은 원칙적으로 접속을 금지하자는 비구속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덴마크를 비롯한 일부 회원국은 15세 미만 접근 금지, 13~14세의 경우 부모 동의하에 이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 움직임은 미국과 아시아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14세 미만의 SNS 계정 보유를 전면 금지했으며, 말레이시아도 호주식 연령 제한과 플랫폼 책임 강화 방안을 참고해 제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모든 규제의 배경에는 청소년 정신건강 악화에 대한 전 세계적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사무소의 ‘학령기 아동 건강 행동(HBSC)’ 조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과다 이용 문제를 겪는 청소년 비율은 2018년 7%에서 2022년 11%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미통위, 청소년 SNS 과의존 대책 의견청취. <출처=방미통위>
반면 한국 정부는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지난 5일 아동·청소년 SNS 이용 실태를 점검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고, 과몰입과 유해 콘텐츠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했다. 김종철 방미통위원장은 “무조건 SNS 사용을 차단하기보다는 이용 시간을 줄이도록 제도를 보완해 나가는 것이 우선”이라며 “청소년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해 찬반 토론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한국이 SNS 규제에 유독 신중한 이유로는 2011년 도입됐다가 2021년 폐지된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의 후유증이 꼽힌다. 당시 제도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괄 차단했지만, 기본권 침해와 산업 위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해외 게임사들이 한국 청소년의 계정 생성을 차단하거나 일부 게임을 성인 등급으로 전환하는 부작용이 이어지자, 정부는 10년 만에 제도 폐지를 결정했다. ‘플랫폼 다변화로 실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향후 해법 역시 ‘연령·시간 제한’보다는 ‘책임과 설계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접속 시간을 제한하는 방식보다는 추천 알고리즘, 무한 스크롤, 자동재생 같은 기능을 청소년 계정에서 기본 비활성화하고, 연령 검증 책임을 플랫폼에 부과하는 편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결국 쟁점은 ‘청소년 보호’라는 목표를 어느 범위까지 국가가 강제할지에 달려 있다”며 “중독을 유발하는 설계를 청소년 이용 환경에서 제거하고, 유해 콘텐츠 노출과 데이터 수집을 강하게 제한하는 방식이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진채연 기자 / cyeon101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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