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한 삼성전자가 범용 D램과 HBM(고대역폭메모리) 판매를 확대하며 ‘메모리 최강자’로 빠르게 도약하고 있다. 당분간 AI(인공지능) 열풍이 더 거세질 것이란 낙관론이 확산하면서, 삼성은 AI 메모리 수요에 더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은 글로벌 HBM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6세대 HBM인 ‘HBM4’를 적기에 공급해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11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전망치는 28%를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지난해 20% 대비 8%p 늘어난 수치다.
SK하이닉스의 시장 점유율 전망치 50%와 단순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SK의 점유율이 9%p 감소하는 것과 비교하면, 삼성이 SK의 점유율을 그대로 흡수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에 성공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HBM 수요가 공급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모든 고객사들을 대상으로 5세대 HBM ‘HBM3E’ 양산 판매를 확대해나가고 있다”며 엔비디아에 대한 HBM 공급을 공식화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 AI 메모리 공급을 대폭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2025년 사업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AI 인프라를 확보하려는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투자를 확대함에 따라 서버용 제품 수요가 지속 증가했다”며 “이는 전 세계 메모리 공급량을 크게 상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한된 공급 가용량 내에서 HBM 판매를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향후 삼성의 HBM 점유율이 시간이 갈수록 더 탄탄해질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차세대 AI 메모리로 주목 받고 있는 HBM4 시대가 본격 개화 하면서, HBM 1위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는 삼성전자에 큰 호재가 되고 있다. 삼성이 경쟁사들을 따 돌리고 HBM4 패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12일 삼성은 업계 최고 성능의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했다고 밝혔다.
당초 시장에는 삼성전자가 지난달 중순경인 설 연휴 이후 HBM4를 주요 고객사에 납품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삼성은 고객사와 협의를 거쳐 공급 일정을 일주일가량 앞당긴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는 HBM4 개발 착수 때부터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표준을 능가하는 성능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최선단 공정 1c(10나노급 6세대) D램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HBM 적층 구조 하단에서 전력·신호를 제어하는 기반 칩인 베이스 다이의 특성을 고려해 성능과 전력 효율 측면에서 유리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4나노 공정을 적용했다.
그 결과, 삼성 HBM4는 JEDEC 업계 표준인 8Gbps를 약 46% 상회하는 11.7Gbps의 동작 속도를 확보하며, HBM4 성능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5세대인 ‘HBM3E’의 최대 속도인 9.6Gbps 대비 약 1.22배 향상된 수치다. 여기에 최대 13Gbps까지 구현할 수 있어 AI 모델 규모가 커질수록 심화하는 데이터 병목을 효과적으로 해소했다.
삼성은 SK보다 먼저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4를 양산 출하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은 “삼성 HBM4는 기존에 검증된 공정을 적용하던 전례를 깨고 1c D램 및 파운드리 4나노와 같은 최선단 공정을 적용했다”며 “공정 경쟁력과 설계 개선을 통해 성능 확장을 위한 여력을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고객의 성능 상향 요구를 적기에 충족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체 파운드리 공정과 HBM 설계 간 긴밀한 협업을 통해 압도적 성능의 HBM4 성능을 구현한 삼성은 올해 독보적인 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AI 시대를 선도한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AI 시대, 신규 GPU(그래픽처리장치) 및 ASIC(주문형반도체) 시장을 목표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춘 HBM4를 적기에 대량 공급해 고객 수요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고 자신했다.
삼성이 우수한 품질과 최적의 수율을 동시에 갖춘 차세대 HBM을 세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양산 출하할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에 대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대한 관심과 강력한 투자 의지 덕분이다.
1992년 전 세계 D램 시장 1위에 등극한 이후 33년여 간 줄곧 선두 자리를 지켜 왔던 삼성전자는 핵심 AI 메모리인 HBM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나며 지난해 1분기 SK하이닉스에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삼성 반도체의 자존심에 큰 흠집이 나는 순간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이 회장은 삼성전자 경영진들을 강하게 질책하며 내부 단속에 나섰다.
지난해 3월 이 회장은 그룹 전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순차 진행 중인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며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위기라는 상황이 아니라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라며 “당장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이 회장은 각 사업부를 일일이 질책하기도 했다. 그는 “메모리사업부는 자만에 빠져 AI 시대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했고, 파운드리사업부에 대해선 “기술력 부족으로 가동률이 저조하다”고 꼬집었다.
이 회장은 올해도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지난달 27일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에서 경영진들을 향해 마냥 안주할 상황이 아니라며 꾸짖었다.
그는 “숫자(실적·주가 등 수치)가 좀 나아졌다고 자만할 때가 아니다”며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메시지를 접한 삼성은 반도체 역량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을 빠르게 고도화 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여기에 삼성 반도체 재도약을 위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도 뒤따랐다.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R&D 분야에 총 37조7000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2024년 대비 약 7.8% 증가한 수치다. 1년 365일로 나눠보면, 하루 평균 약 1000억원 이상을 기술 개발에 쏟아 부은 셈이다.
시설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 삼성은 지난해 반도체 등 시설 투자에 총 52조7000억원을 집행했다. 당초 계획보다 5조원 이상 확대된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생산 거점이 될 R&D 복합단지 ‘NRD-K’ 등에 중점 투입됐다.
이렇듯 천문학적인 규모의 R&D 및 시설투자는 삼성이 HBM4 주도권을 확보하는 마중물이 됐다.
메모리 최강자로 재도약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한층 강화하며 최고 수준의 HBM을 지속 개발해 세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킨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송재혁 삼성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사장은 ‘세미콘 코리아 2026’ 기조 연설에 앞서 취재진과 만나 “삼성 HBM4는 기술에 있어서 사실상 최고다”며 “7세대 ‘HBM4E’, 8세대 ‘HBM5’에서도 업계 1위가 될 수 있도록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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