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대만 TSMC가 1조1000억 대만달러 이상의 역대급 분기 매출을 거뒀다. 한화로 환산하면 50조원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예상을 뛰어 넘는 호실적에 ‘파운드리 1등’ TSMC의 독주 체제는 더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TSMC는 초미세 공정인 1나노급 칩 양산을 가속화해 미래 성장을 이어 나간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당장 올해 하반기 1.6나노 양산에 돌입하며 경쟁자들의 추격을 단숨에 따돌릴 전망이다.
TSMC가 약진하는 사이,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는 삼성전자의 근심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선단 공정 경쟁에서 한발 뒤처진 삼성이 TSMC를 추격하기 위해선 최첨단 1nm(1nm는 10억분의 1m) 공정 경쟁력을 서둘러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TSMC는 올 1분기 매출액이 1조1341억대만달러(약 52조9058억원)로 집계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8393억 대만달러(약 39조2289억원) 대비 35.1% 증가한 수치다.
이는 시장의 전망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증권 업계에서는 TSMC의 올 1분기 매출 전망치를 1조1200억 대만달러 수준으로 점쳤다. 그러나 실제는 이보다 더 높은 1조1300억대만달러대였다. 영업이익도 크게 개선됐다. 올 1분기 영업익은 6589억7000만 대만달러(약 30조8068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69억2118만 대만달러(약 18조9829억원) 대비 61.9%나 확대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올 2월 말 미국·이란 간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AI(인공지능) 수요는 꺾이지 않았다”며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선단 공정 파운드리 수요가 상당히 견조해 TSMC의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TSMC 역시 이날 열린 올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과 이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가 지속되는 가운데서도 글로벌 빅테크로부터 첨단 반도체에 대한 수요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고 재확인했다.

대만 TSMC 본사. <사진=연합뉴스>
TSMC의 성장세는 올 하반기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주요 빅테크는 물론, 북미 CSP(클라우드서비스기업)와 AI 스타트업들이 AI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첨단 칩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는 AI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계에 크나큰 호재일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올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지난해 대비 24.8% 증가한 2188억달러(약 322조5331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이 중 세계 1위 TSMC가 전 세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됐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TSMC의 매출이 32%가량 확대될 것으로 내다 봤다.
트렌드포스는 “첨단 공정 파운드리 수요는 엔비디아, AMD 등 AI 반도체 업체들의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이끌 것이다”며 “여기에 구글, AWS(아마존웹서비스), 메타 등 북미 CSP와 오픈AI, 그록(Groq) 등 AI 스타트업들까지 자체 AI 칩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빅테크와 북미 CSP, AI 스타트업 상당수는 올해 첨단 칩 양산에 들어가 출하를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는 초미세 공정 파운드리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TSMC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에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69.9%를 기록했다. 이는 2024년 64.4% 대비 5.5%p 증가한 수치다.
TSMC가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주춤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7.2%로, 2024년 9.4% 대비 2.2%p 줄어들었다.
TSMC와 삼성 간 점유율 격차는 2024년 55.0%p에서 지난해 62.7%p로, 7.7%나 더 벌어졌다.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2위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삼성이 TSMC와의 간극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파운드리 공룡’으로 변모하고 있는 TSMC는 초미세 공정인 1나노급 칩 양산을 본격화해 리더십을 더욱 강화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당장 TSMC는 올 하반기 1.6나노 공정 양산을 시작하고, 내년부터 선단 공정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A16’으로 명명된 TSMC의 1.6나노 공정 기술은 선도적인 나노 시트 트랜지스터와 혁신적인 SPR(슈퍼파워레일) 솔루션을 통합해 로직 밀도와 성능을 크게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2나노 공정과 비교했을 때, A16 기반 칩 속도는 8~10%나 빠르고, 전력 또한 무려 15~20% 절감해준다. 또 칩 밀도도 더욱 높여 복잡한 신호 경로와 고밀도 전력 공급 네트워크를 필요로 하는 HPC(고성능컴퓨팅)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TSMC는 이미 1나노급 공정 고객사도 확보했다. TSMC의 1.6나노 공정 파운드리에서 처음으로 첨단 칩을 양산할 곳은 엔비디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TSMC는 내년에 1.6나노보다 더 미세한 1.4나노 공정의 시험 생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후 2028년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양산한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이를 위해, TSMC는 대만 중부 과학산업단지에 있는 생산 기지에 신규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다. 이 곳에서는 1.4나노 공정 기술을 이용해 애플 아이폰의 차세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만들 예정이다.
1.4나노 공정 기술은 2나노 공정과 비교해 칩 속도를 최대 15% 향상시키고, 전력 소모도 최대 30% 줄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TSMC가 1나노급 선단 공정 경쟁력을 빠르게 제고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 또한 파운드리 재도약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초미세 공정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은 2029년께 1.4나노 공정 양산에 돌입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또 2030년 이전에 최첨단 공정인 1나노 공정 기술을 내놓기로 했다.
다만 삼성은 당장 차세대 공정 개발에 매진하기보다는 2나노 등 수율 개선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파운드리 전략을 수정한 상태다.
앞서 삼성은 지난해 SAFE 포럼에서 1.4나노 공정 양산 목표를 당초 2027년에서 2029년으로 2년 늦추기로 했다. 대신 2나노 공정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팹 가동률과 수익성을 높여 나가기로 했다.
특히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 리더십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사업 성장을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공정 경쟁력과 양산성 확보를 기반으로 2나노 시대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데이터센터, 로보틱스 등 다양한 AI 수요를 기반으로 선단 공정 사업을 집중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삼성 파운드리는 그동안 첨단 공정 기술 경쟁에만 몰두한 탓에 불안정한 공정 상태에서 다음 세대로 진입하는 일이 반복돼 수율이 낮아지고 고객사 신뢰를 잃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이번 전략 수정으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다시 늘려 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은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파운드리 사업은 최소 3년 이상 긴 호흡이 필요한 사업이다”며 “1~2년 정도 후에는 더 좋은 결과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고 전한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