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제도 개편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대규모 총파업이 현실화 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 파업으로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가 그동안 힘들게 쌓아 온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와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과 재계, 학계 등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이번 노사간 갈등이 단순히 삼성 내부 문제를 넘어 반도체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인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최근 글로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회복한지 얼마 안돼 자칫 대규모 파업으로 치달을 경우, 개발 일정 지연과 생산 차질로 호황 속 성장동력이 훼손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한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1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57조232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조6853억원 대비 무려 756.1% 폭증했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이 크게 선전했다. 올 1분기 DS 부문 영업익은 5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1000억원 대비 무려 50배 가량 늘었다.
삼성이 이처럼 실적 호조를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HBM 주도권 확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엔비디아 공급망 진입을 계기로 삼성전자의 HBM 사업은 반등 국면에 들어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분기 13%에서 3분기 23%로, 10%p가량 급증했다. 이는 삼성이 지난해 3분기 엔비디아 HBM 공급망 진입에 성공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이후 HBM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업계 최고 성능의 6세대 HBM인 ‘HBM4’를 세계 최초로 양산 출하했다. 최근엔 7세대 ‘HBM4E’ 개발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은 올 하반기 HBM4E 샘플을 공급하고, 내년도 본격적인 양산까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 반도체 사업의 또 다른 축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도 최근 실적 개선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최근 HPC(고성능컴퓨팅) 시장을 중심으로 수주를 이어가고, 광통신 모듈 대형 업체 수주에 성공하며 실리콘 포토닉스 사업 기반을 확보했다.
삼성 반도체가 이처럼 AI 시대 핵심 메모리인 HBM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인정 받게 된 것은 고객사에 신뢰를 잃지 않고 납기를 최우선으로 지켰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첨단 공정일수록 공급의 안정성과 일정 준수 여부가 고객사 선정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메모리칩 뿐만 아니라 파운드리 부문에서 납기 지연은 고객사로부터 외면을 받고 수주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결국 납기와 신뢰가 최고의 경쟁력인 반도체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생산 차질은 곧장 고객사 리스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와중에 삼성전자 노조는 총파업 카드를 꺼내들고 사실상 사측을 겁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조의 공세대로 오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장장 18일 간의 총파업이 본격화할 경우,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춰서고 이로인해, 그동안 삼성이 최고의 가치로 고수해온 납기준수와 신뢰구축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무정지 생산과 신뢰를 핵심 자산으로 구축해 온 삼성 반도체 브랜드 프리미엄에 균열이 생길 경우, 향후 첨단 공정 물량이 경쟁사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도 대규모 총파업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지배력 상실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과 관련해 신제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은 “파업이 현실화한다면 사업 경쟁력 저하는 물론 고객의 신뢰 상실, 주주 및 투자자 손실 등 국가 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 의장은 “막대한 파업 손실과 고객 이탈로 회사 가치가 하락할 경우, 주주, 투자자, 임직원, 지역사회에 심각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고 밝혔다.
정부도 현 사안을 예의주시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고 과도한 요구를 해서 우리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되면 해당 노조 뿐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입히게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삼성전자의 역대급 실적과 경쟁력은 노사만의 전유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의 결실에 수많은 인프라, 협력 기업, 40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와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는 것을 고려하면 회사 내부 구성원끼리 나눠도 되는 이슈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 개편안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상한선을 없애고, 연간 영업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할당하자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홍 광운대 명예교수는 “영업익 정률 배분 요구는 사실상 노조의 준(準)주주화를 의미하는 선배당 성격을 띈다”며 “주주의 잔여 청구권 이론 및 계약이론 측면에서 볼 때, 노조의 요구는 부당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노조가 제시한 영업익을 기준으로 한 고정 비율 배분 방식의 성과급 제도가 장기적으로 회사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도체 산업과 같이 대규모 선행 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 영업익 연동 고정 배분 구조는 장기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준일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는 “성과급의 투명성 요구는 정당하지만, 그 해법은 산정 기준 공개와 협의 절차 제도화에 있어야 한다”며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 체계는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대한 기자 / dayhan@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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