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준공된 세계 최대급 조선소가 16년 만에 새 주인을 맞았다. 지난 6월 26일 HD현대중공업과 신설법인 제이오션중공업이 7800억원 규모의 군산조선소 자산 양수도 본계약에 서명하면서 ‘HD현대는 떼어내고, 에코프라임마린퍼시픽은 끌어안는’ 거래가 매듭을 지었다. 양측이 입을 모아 ‘윈윈’이라 부르는 이 거래의 이면에는 각기 다른 전략이 자리한다. 거래의 구조와 양측의 속내, HJ중공업의 성장 시나리오, 그리고 7800억원의 셈법을 세 차례에 걸쳐 짚는다.<편집자 주>
HJ중공업의 HD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인수 동기는 ‘도크’로 요약된다. HJ중공업의 주력 생산 거점인 영도조선소는 도크 길이가 300m에 그쳐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나 2만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할 공간이 부족하다. HJ중공업이 그간 중소형 컨테이너선과 특수선을 주력으로 건조해 온 까닭이다. 자체 개발한 ‘댐(DAM) 공법’ 등으로 도크의 한계를 넘어 올해 1만100TEU급 컨테이너선까지 영역을 넓혔지만, 대형선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면 더 큰 도크가 필요하다.
24일 HJ중공업에 따르면 군산조선소를 운영하게 될 제이오션중공업은 우선 HD현대중공업의 블록 물량으로 현재 수준의 생산을 이어가면서 공정과 설비를 정비하고, 2028년 대형선 건조를 본격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첫 성과는 이미 나왔다. 제이오션중공업은 지난달 29일 오세아니아 지역 선주사와 11만4000톤급 원유·석유제품운반선 4척에 대한 건조의향서(LOI)를 맺었다. 정식 수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군산조선소가 2017년 7월 마지막 완성선을 인도한 뒤 약 9년 만에 처음 확보한 완성선 물량이다.
HJ중공업 영도조선소가 동남권에서 중소형 친환경 컨테이너선과 특수선을 맡고, 제이오션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서남권에서 대형선과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를 담당하는 투트랙 체제가 윤곽을 드러낸 셈이다. 노후 선대의 교체 수요가 이어지는 가운데 해상 물동량과 항로를 둘러싼 불확실성까지 겹치며 유조선 발주가 늘어나는 시황도 명분을 더한다. HJ중공업은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과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에 이어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설계 승인까지 받으며 무탄소 고부가 선종으로 기술 영역을 넓혀왔다.
투트랙 체제의 한 축인 특수선은 이미 HJ중공업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으로 자리 잡았다. HJ중공업은 해군 고속정과 공기부양식 고속 상륙정 등 특수선 건조에서 쌓은 기술을 기반으로 지난해 말 추가 수주를 통해 3년 치 이상의 건조 물량을 확보했다. 상선에서도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과 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LNG 벙커링선 등 친환경 선종을 선별 수주하는 전략이 수익성을 떠받쳤다. 여기에 군산조선소의 대형 도크가 더해지면 영도조선소에서 다져온 특수선과 친환경선의 역량 위에 대형선이라는 새 기둥을 세우게 된다.
함정 MRO는 또 다른 축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도인텔리전스 등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함정 MRO 시장은 약 77조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미 해군 몫만 연 20조원가량으로 추정된다. HJ중공업은 올해 초 국내 중형 조선소 중 처음으로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해 향후 5년간 입찰 자격을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미 해군 보급체계사령부(NAVSUP)로부터 수주한 4만톤급 군수지원함인 ‘USNS 아멜리아 에어하트함’의 정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추가 정비 계약까지 따내며 기술력과 수익성을 함께 입증했다. 군산조선소의 넓은 부지와 대형 도크는 미 해군 군수지원함뿐 아니라 전투함과 호위함을 동시에 여러 척 정비할 여건을 제공할 수 있다.

7900TEU 친환경 컨테이너선.<사진제공=HJ중공업>
이런 기회가 열린 데는 미국 함정 정비 전략 변화가 있다. 미 국방부는 자국 조선소의 인력 부족으로 함정 정비를 제때 소화하기 어려워지자, 본토에서 도맡아온 유지보수를 인도·태평양 동맹국으로 분산하는 ‘지역 정비 지원 체계(RSF)’를 도입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비 역량을 자국 함대 운용에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이다. HJ중공업이 첫 군수지원함 정비를 따낸 것도 이 같은 변화에 힘입은 결과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HJ중공업이 영도조선소에서 쌓은 정비 역량을 군산조선소의 대형 도크로 확장하면 미 해군 함정을 정기적으로 받아 손보는 거점으로 자리 잡을 여지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넘어야 할 문턱이 남아 있다. MSRA는 법인이 아닌 시설 단위 협약이기 때문에 군산조선소에서 미 해군 함정 MRO를 수행하려면 별도의 협약을 추가로 맺어야 한다.
HJ중공업이 군산조선소를 인수한 결단의 배경에는 체질 개선이 깔려 있다. HJ중공업은 지난해 매출 1조9997억원, 영업이익 67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24.8% 급증한 수치다. 호실적 흐름은 올해도 이어져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5414억원, 영업이익은 246억원으로 347% 늘었다. 2022년 18% 수준까지 떨어졌던 조선부문 매출이 지난해 절반 수준을 회복하면서 외형 확장으로 방향을 트는 데 필요한 동력이 생겼다.
사업 영역 확장을 이끄는 인물은 유상철 HJ중공업 조선부문 대표다. 그는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친환경선 수주와 특수선 다각화로 흑자 전환시킨 주인공이다.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로 시장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그가 거듭 강조해 온 원칙이다. 유 대표는 군산조선소라는 대형 도크를 지렛대 삼아 사업 영역을 VLCC급 대형선과 미 해군 함정 MRO로 한 단계 넓힐 계획이다.
HJ중공업 관계자는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고수익 프로젝트 매출 비중이 확대되면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대폭 늘었다”며 “양대 사업 부문에서 3년 치 이상의 안정적인 수주잔량을 확보한 만큼 지속적인 체질 개선과 원가구조 혁신을 통해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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