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광주 반도체 공장’…삼성·SK, ‘주 52시간제’ 규제 해소 ‘공방’

정부,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담은 법안 적극 검토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등 노동 규제 완화 방안 거론
김정관 장관 “근로자 의욕·의지, 제도로 꺾어선 안 돼”
노동계는 강력 반발…“노동 기준 무너뜨리는 법 반대”
“반도체 근로자 등과 연대…투쟁 나설 것” 엄포
업계 “삼성·SK, 차세대 칩 개발 온전히 몰두 어려워”

정부가 호남에 들어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주 52시간제’ 예외 규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그간 국내 반도체 업계의 염원이었던 주 52시간제 완화가 마침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규제 강도를 낮출 경우, 근로자의 과로를 방치하고 메가특구에 안 좋은 일자리만을 양산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인해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 탄 K-반도체는 첨단 AI 메모리 역량을 강화하며 역대급 실적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라는 족쇄로 첨단 칩 경쟁력 제고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여부가 메가 클러스터 사업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이목이 초집중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산업부) 장관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 토론회에서 “일하겠다는 젊은 사람들의 의지를 제도가 강제로 막아선 안 된다”며 메가특구 내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주 52시간제 이슈는 우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인 중국과 비교해야 한다”며 사기업 재직 시절 중국 출장 당시 들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중국 충칭의 한 IT 기업이 ‘996 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를 도입하려 하자 근로자들이 먼저 ‘그렇게 일해서 다른 기업과 어떻게 경쟁하겠느냐’고 반발했다”며 “(해당 기업은) 결국 자정까지 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실제 반도체 후발 주자인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가속화하기 위해 근로시간의 제약을 없애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는 과거 “알리바바와 일하려면 하루에 12시간 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996 근무제를 옹호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열심히 일해서 성취하겠다는 사람들의 의욕과 의지를 주 52시간제와 같은 제도로 꺾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연구개발(R&D) 분야는 물론 스타트업을 비롯한 첨단 산업 전반에서 근로시간 제도를 손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패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 수장이 주 52시간제 완화에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은 정부가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호남권 반도체 메가특구의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앞서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노동부)는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노동 분야 메가특구특별법 추진 방향을 보고했다. 당시 보고에는 근로자가 동의할 경우 소득 상위 3%인 관리자와 연구개발자에 주 52시간 근로 상한을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방안이 담겼다. 여기엔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수당을 주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6개월(26주)로 확대하는 것도 검토키로 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정산 기간 내 총 근로시간이 한도를 넘지 않을 경우, 특정 기간에 몰아서 일할 수 있는 제도다.

만약 정산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난다면, 처음 16주는 주당 80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10주는 주당 7시간 내외로 단축 근무하는 식으로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이렇게 일한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52시간으로, 정산 기간 내 총 근로시간 한도를 맞출 수 있는 셈이다.

이 외에도 기간제 근로자가 서면 합의한다면 사용 기간을 현행 2년에서 추가로 2년 연장하고, 정규직 전환 없이 계약이 종료되면 공정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됐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노동부의 보고를 접한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특히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핵심 사안인 주 52시간제 완화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고 “메가특구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4년짜리 계약직, 확대된 파견 노동, 초과 근로 수당조차 없는 장시간 노동이라면 그것은 미래 산업도, 좋은 일자리도 아니다”며 “노동권 후퇴 방안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도 “노동자의 건강권과 고용 안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안전 장치를 메가특구라는 이유로 예외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그 예외는 곧 일반화될 수밖에 없다”며 “노동 기준을 무너뜨리는 법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적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노동계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고려 중인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이달 3일 성명을 통해 “메가특구특별법 추진을 강력하게 저지할 것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양대노총은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강화하겠다는 AI 전환을 근로자의 권리를 제약하는 메가특구특별법 제정으로 시작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며 “메가특구특별법 제정 관련 사회적 대화의 출발점으로, 이른 시일 안에 양대노총과 이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한다”고 했다.

노동계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직원들과 연대해 주 52시간제 완화를 막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인천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 인천시 질식사고 근절 공동선언식에서 답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강경한 입장에, 정부는 노동계 달래기에 나섰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앞서 지난 5일 출입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메가특구특별법 관련 정부 정책이 확정된 건 없고, 지금은 논의를 숙성시키는 과정이다”며 “유관 부처 내 협의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올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반도체산업의경쟁력강화및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 방안이 제외된 것을 두고 ‘앙꼬 빠진 찐빵’이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어도 지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다”며 “너무 예송(禮訟) 논쟁처럼 되면 안 된다”고 전했다.

김 장관은 “사실 관계에 기초해서 합리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며 “양대노총에서 이와 관련해 대통령 면담과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으니, 노동계와 소통해 진행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렇듯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둘러싸고 사회 전반에 걸쳐 첨예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첨단 칩 역량 강화를 위해 갈 길 바쁜 ‘AI 메모리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삼성·SK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만 89조50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고, SK하이닉스도 영업익 60조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주 52시간제로 인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에 제약이 뒤따르면서 첨단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은커녕 각종 규제로 발목을 잡으면서, 삼성·SK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알아서 미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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