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27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열린 ‘노화를 치료하는 시대 : 과학, 산업 그리고 보험의 미래’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노화 치료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면 암·치매 진단이나 장기요양 진입처럼 ‘사건의 발생’을 담보하는 보험의 상대적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개인이 노화 과정에 직접 개입해 질병의 발생률과 발생 시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보험이 공동으로 부담해 온 ‘통제하기 어려운 우연적 위험’의 비중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다만 노화 치료의 효과와 치료비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남는 데다 연금과 장기요양은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보험계약 설계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과제도 함께 제시됐다.
이재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27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열린 ‘노화를 치료하는 시대: 과학, 산업 그리고 보험의 미래’ 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노화 치료나 생체 나이를 되돌린다는 이야기가 영화처럼 들렸는데 실제로는 예측보다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술로 어디까지 가능한지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잘 그려지지 않다 보니 이 기술이 보험 위험을 어떻게 바꿀지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노화 치료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다는 가정 아래 보험 위험의 변화를 다섯 가지로 나눠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먼저 개인이 자신의 미래 건강 위험에 개입할 수 있는 범위가 커진다는 점을 들었다. 운동이나 생활습관 개선을 통한 간접적 관리를 넘어 치료의 선택·시점·반응에 따라 질병 발생률과 발생 시점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유전자 치료나 편집을 통해 특정 질병에 걸릴 위험을 미리 제거하거나 치매에 걸릴 위험을 10년 뒤로 미룰 수 있게 된다면 암에 걸리면 얼마, 치매에 걸리면 얼마를 보장하겠다는 사건 진단형 담보들의 상대적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그렇다고 보험의 영역이 줄어들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치료 자체의 효과, 관련 치료비, 그로 인한 또 다른 건강 상태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새로운 불확실성 영역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두 번째로는 개인 간 위험의 이질성 확대를 꼽았다. 평균적인 위험은 낮아지더라도 분포의 분산은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치료를 받았는지, 그 치료에 반응하는 사람인지, 효과가 얼마나 지속되는지에 따른 이질성이 굉장히 커진다”면서 “자발적 가입을 전제로 하는 민영보험에서는 역선택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에 따라 연령·병력을 넘어 치료 여부와 반응·효과 지속성까지 활용한 위험평가가 필요해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너무 많은 정보로 위험을 쪼개고 또 쪼개다 보면 보험이 해야 하는 풀링 기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며 상충 관계를 함께 짚었다.
또 세 번째로는 ‘위험의 시간적 경로 변화’를 언급했다. 기능 저하에서 요양, 회복, 요양 재진입으로 이어지는 비선형 경로가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요양 상태가 됐다가 특정 치료를 통해 회복이 드라마틱하게 되고 다시 진행되는 식으로 건강 위험의 곡선 모습이 지금과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며 “보험 위험도 ‘언제 발생하는가’, ‘발생할까’라는 사건 위험을 넘어 어떤 상태를 거쳐 그 상태에 얼마나 머무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종목별 영향 엇갈려…“연금·장기요양, 계약 안에서 위험 나눌 설계 고민해야”
네 번째로 이 연구위원은 영향이 보험 종목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꼽았다. 진단·정액형 질병보험은 발생 자체가 줄거나 늦어지며 담보 가치가 흔들릴 수 있고, 실손·치료비는 중증도가 낮아지는 효과와 고가 신규 치료에 따른 비용 증가가 함께 작용해 방향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반대로 연금은 방향이 비교적 분명하다”며 “생존 기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예상보다 더 오랜 기간 연금을 지급해야 하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말했다. 장기요양에 대해서는 “생존 기간을 넘어 회복과 재진입 가능성이 몇 번이나 있고 얼마나 지속되는지, 그것을 보험 급부가 부담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연구위원은 변화하는 위험의 일부를 계약과 제도의 조건에 반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자본 확충이나 재보험이 위험을 계약 외부로 이전·분담하는 방식이라면, 보험계약의 일부 조건을 조정 가능하게 설계해 보험자와 가입자 사이의 위험 분담을 계약 안에 담는 방식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확실성이 크고 모든 사람이 함께 영향을 받아 분산하기 어려운 리스크는 외부로 이전하거나 보험사가 자체적으로 흡수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계약 안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굉장히 중요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례로는 네덜란드·핀란드 등 유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기대수명 변화를 연금 수급 조건에 연계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에서도 기대여명 증가를 고려한 국민연금 자동조정장치 도입이 논의됐으나 실제 도입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장기요양에서는 급부 기간 제한과 상태 재평가 장치가 이미 활용되고 있는 만큼 이를 변화하는 위험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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