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美 HBM 생산라인 첫 삽…“트럼프 압박·호남 반도체 투자 ‘고민되네’”

SK하이닉스, 미 인디애나주에 차세대 HBM 후공정 공장 기공
2029년 하반기부터 양산 목표…7세대 HBM ‘HBM4E’ 생산
트럼프발 관세 폭탄 부담 가중…“美서 생산 안 하면 관세 내라”
SK, 미국 내 전공정 공장 없어…삼성은 건립 계획 전무
美 전방위 압박 가속화…호남 반도체 투자도 부담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핵심 메모리로 자리매김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미국 현지에서 본격 양산한다. 이번에 첫 삽을 뜬 첨단 공장은 2029년 하반기께 차세대 HBM을 제조하는 AI 메모리 생산 거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SK의 후공정 공장이 완공되기까지 향후 몇년이 걸리는 만큼, 당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도체 관세폭탄 리스크를 피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 현지에서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을 경우, 고강도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SK하이닉스는 현지시간으로 27일 미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차세대 HBM 어드밴스드패키징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해당 공장은 SK하이닉스가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에 짓는 첫 생산 기지다. 오는 2028년 10월 클린룸을 완공하고, 이듬해 하반기부터 HBM 양산을 목표로 한다. SK하이닉스 인디애나 팹의 HBM 생산 능력은 연간 수십만장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빅테크들은 ‘메이드 인 USA’의 SK HBM을 공급받게 될 전망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인디애나 프로젝트는 미국 최초의 HBM 생산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며 “미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고, 경제·안보에 기여하는 주요 기반이 될 것이다”고 자신했다.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 팹에서 생산할 HBM은 차세대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곽 사장은 미국 공장에서 양산되는 제품이 7세대 HBM인 ‘HBM4E’가 될 것이라고 확인시켜줬다.

8월 27일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열린 SK하이닉스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패키징 생산 기지 기공식.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첨단 HBM 생산 설비를 구축하고 나섰지만, 트럼프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을지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를 대상으로 고강도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폴리티코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정부가 검토 중인 방안은 반도체 관세 부과 대상 제품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며 “반도체뿐 아니라 노트북, 게임 콘솔, 데이터센터 서버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여러 완제품을 포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별 관세율과 쿼터를 설정하고, 주요 반도체 제조사를 대상으로 국가별 지침을 적용하는 방식 등이 아이디어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아직 세부적인 내용이 마련되진 않았지만, 미 정부의 반도체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K-반도체의 부담이 가중될 공산이 크다. 관세 부과로 인해 K-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이에 따른 실적 부진, 삼성·SK의 시장 지배력 축소 등 여러 악재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SK가 ‘만년 3등’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에 메모리 패권을 내주는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실제 반도체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면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될 곳은 마이크론이다. 현재 마이크론은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 해외 뿐만 아니라 미 현지 생산 시설에서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를 양산하고 있다. 이 중 미국 내에서 만든 메모리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서 자유로운 만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실제 마이크론은 미국 내 생산 능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HBM 등 AI 메모리를 제조하기 위해 미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첫 번째 공장을 짓고 있다. 이 공장은 2027년 중반부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이다호주에 들어서는 두 번째 공장은 내년에 착공해 2028년 말 가동 예정이다. 또한 올해 1월 착공식을 한 미 뉴욕주 공장에는 총 1000억 달러가 투입됐다. 해당 공장은 2030년부터 차세대 메모리를 양산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 달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내 메모리 반도체 생산라인이 없다.

그나마 SK하이닉스가 이번에 미 인디애나주에 후공정 공장의 첫 삽을 뜨면서 관세 부담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메모리 생산 과정 중 핵심인 전공정 공장은 이번 건설 계획에서 빠졌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내 메모리 생산 시설을 짓겠다는 계획이 없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일각에서, 미 현지에 메모리 공장을 짓는 방안을 고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삼성·SK는 이미 국내에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일대 728만㎡(약 220만평) 규모의 부지에 초대형 시스템 반도체 국가 산업단지(산단)을 건립키로 했다. 투자 규모는 약 360조원에 이른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삼성은 지난해 12월 LH와 산단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LH는 산단 예정지 내 토지 소유자들과 토지 및 지장물(건물, 공작물, 수목 등)에 대한 보상 협의에 착수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원삼면 일대 415만㎡(약 126만평) 규모의 부지에 구축되는 메가급 반도체 산단으로, SK의 첨단 AI 메모리 양산을 주도할 핵심 생산 거점이다. 약 600조원이 투입되는 이 곳에는 총 4기의 팹이 구축된다. 팹 1기가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M15X 6기와 맞먹는 규모임을 감안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단 용인 뿐만이 아니다. 삼성과 SK는 호남에도 대규모 자금을 쏟아 부어 반도체 클러스터를 건립키로 했다.

삼성전자는 광주에 약 400조원을 투자해 신규 반도체 팹 2기를 건설한다. SK하이닉스도 ‘포스트 용인’을 위한 미래 부지로 서남권을 주목하고, 약 40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 기반을 구축키로 했다.

삼성, SK로서는 트럼프발 관세 폭탄, 투자유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호남권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반도체 팹 구축을 추진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 결국, K-반도체의 셈법만 복잡해지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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