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인사 첫 테이프 끊은 LG, ‘변화보다 안정’

‘경영쇄신’ 대신 ‘안정’에 방점…일부 계열사선 파격 인사
차석용 부회장 물러나…LG 4인 부회장 체제 깨져
이정애 LG생건 사장 승진…그룹 내 첫 여성 CEO

재계에 정기 임원 인사 시즌이 도래한 가운데 LG그룹이 첫 스타트를 끊었다. 올해 LG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위기 확산 우려 속에서 변화를 통한 ‘경영 쇄신’보다 ‘안정’을 기치로 임원 인사에 임했다. 다만 일부 계열사에선 사업 혁신을 위한 파격 인사도 단행해 눈길을 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주요 계열사별로 임원 인사를 확정했다. 하루 전인 23일 가장 먼저 임원 인사를 발표한 LG화학을 시작으로, 이날 ㈜LG와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LG엔솔),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LG생활건강(LG생건) 등 대부분 계열사들이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LG는 대다수 임원들을 유임했다. 대외 불확실성이 확산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의식해 큰 변화보다 안정에 무게를 싣는 인사를 실시했다는 평가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LG의 ‘4인 부회장 체제’가 깨졌다는 점이다. 그간 권봉석 ㈜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차석용 LG생건 부회장 등 4명의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뒷받침하며 그룹 경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차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4인 부회장 체제도 끝이 났다.

차 부회장은 2005년 1월 1일 LG생건 대표이사에 오른 뒤 약 18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는 취임 이후 매년 실적을 경신하면서 LG생건의 성장을 이끌어 온 일등 공신으로 꼽혀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 시장에서 화장품 판매가 부진하면서 LG생건의 실적도 악화하기 시작했다. 코트라에 따르면 LG생건의 화장픔 브랜드 ‘후’는 지난해 중국 광군제 기초 화장품 분야 판매액 4위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LG생건의 광군제 매출은 3600억 원으로 지난해 대비 7%가량 줄어들었다.

LG생건의 올해 실적이 암울할 것이라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증권사 컨센서스에 따르면 올해 LG생건의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7548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지난해 1조2896억원 대비 무려 41.5%나 감소한 수치다.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LG생건은 현재 음료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이정애 부사장을 LG그룹의 첫 여성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최고경영자(CEO)로 내정했다. 이 신임 사장은 1986년 LG생건에 입사해 마케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2015년 그룹 공채 출신 최초로 여성 부사장으로 승진한 이 신임 사장은 생활용품 사업부장, 럭셔리 화장품 사업부장 등도 두루 지냈다.

LG생건은 이 신임 사장에 대해 “디테일한 면까지 꼼꼼히 챙기는 여성으로서의 강점뿐만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LG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선임된 권봉석 부회장은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높은 신임을 바탕으로 유임에 성공했다. 권 부회장은 향후 구 회장의 미래 사업 구상에서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LG화학은 신학철 부회장을 유임키로 했다. △친환경 소재 △전지 소재 △글로벌 신약 등 3대 신성장동력의 경쟁력 강화에 힘써 온 신 부회장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어려운 경영 상황 속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낸 것도 유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신 부회장이 이끄는 LG화학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3분기 9012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등 실적을 선방했다.

LG화학의 인사 키워드는 신 부회장을 필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육성할 수 있는 조직 역량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눈여겨볼 인사는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를 맡고 있는 차동석 LG화학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것이다. LG화학 관계자는 “차 신임 사장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미래 신사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한편 최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응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직에 올랐다”고 밝혔다.

차 신임 사장은 회계·금융·세무·경영 진단 등 풍부한 경험을 가진 ‘재무 전문가’다. 2019년 9월 CFO로 부임한 이래 다양한 사업 인수합병(M&A)과 분할을 적극 지원했다.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재무 건전성 등을 공고하게 다진 성과도 높이 평가받았다.

양호한 실적을 내고 있는 LG엔솔의 권영수 부회장은 올해 유임되면서 그룹 내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다지게 됐다. 구 회장 취임 후 지주사를 이끌며 사업 재편의 핵심 조언자 역할을 했던 권 부회장은 LG엔솔을 맡은 이후 올해 최대 매출 달성에 성공하는 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다.

LG엔솔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서 톱 티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향후 권 부회장은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당분간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의 중심 축인 LG전자는 이번 인사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의 유임을 결정했다. 조 사장뿐만 아니라 4개 주요 사업본부장 모두 유임됐다. 내년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급격한 변화를 피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조 사장 체제 하에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LG전자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한층 안정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LG전자는 류재철 H&A(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 사업본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류 신임 사장은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로 입사한 정통 ‘LG맨’이다. 2011년 LG 세탁기 프론트로더 사업팀장, 2013년 냉장고 생산담당, 2015년 RCA(가정용 에어컨) 사업담당, 2017년 리빙어플라이언스 사업부장 등을 지낸 데 이어 지난해엔 H&A 사업본부장에 올랐다.

류 사장은 ‘오브제 컬렉션’으로 대표되는 공간 인테리어 가전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LG전자 가전을 세계 1위로 도약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지난해 LG전자는 월풀을 제치고 사상 첫 글로벌 생활가전 매출 1위 기업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 초에는 소프트웨어(SW)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전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제공하는 ‘UP 가전’으로 경쟁력을 대폭 강화했다. 역량 제고에 힘써 온 LG전자는 올 3분기 역대 분기 사상 최대 매출(21조1768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그룹의 통신 계열사 LG유플러스를 이끌고 있는 황현식 사장은 내년에도 회사를 이끌게 됐다. LG유플러스의 전신인 LG텔레콤에서 강남사업부와 영업전략담당을 맡았던 황 사장은 LG데이콤·LG파워콤과의 합병으로 탄생한 LG유플러스에서 MS본부장, PS부문장, 컨슈머사업총괄 등을 역임했다.

황 사장은 현재 회사 체질 개선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유·무선 통신 분야는 사내 전문가에게 맡기고, 황 사장은 CEO 직속의 신사업에 집중키로 한 것이다. 이에 그는 올 9월 △통신기반 라이프스타일 △놀이 △성장 케어 △웹(Web) 3.0 등 4대 플랫폼 전략을 내세우며 ‘U+ 3.0’ 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통신 분야에서는 기존 고객을 기반으로 구독 서비스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반의 놀이·성장 케어 서비스에도 주력하고 있다.

2019년 3월부터 LG이노텍을 이끌고 있는 정철동 사장도 유임됐다. 정 사장 취임 이후 LG이노텍은 매년 수익성이 높아졌다. 2019년 4764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2020년 6810억원, 지난해 1조2642억원으로 2년 만에 165.4%나 증가했다. 애플 등 글로벌 스마트폰 업체에 카메라 모듈 등을 납품하게 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LG이노텍은 주력 사업인 카메라 모듈뿐만 아니라 기판 소재, 전장 부품 등 신사업의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 영업이익을 더욱 늘리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 사장이 이번 임원 인사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LG 부회장단에 합류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정 사장은 부회장직에 오르지 못했다.

LG디스플레이는 23일 열린 이사회에서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을 유임했다. 최근 2개 분기 영업 적자를 기록한 LG디스플레이의 실적을 개선하기 위해선 재무 분야 베테랑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는 올 2분기 영업손실 4883억원을 낸 데 이어 3분기에는 영업이익 -7593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폭을 더욱 키운 바 있다.

정 사장은 그룹 내에서도 내로라하는 ‘전략·재무통’이다. LG전자 입사 후 전략기획팀장과 재경 부문 경영관리팀장을 거쳐 CFO를 역임했다. 이후 LG화학, LG생활건강 등 계열사의 경영 환경을 개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LG디스플레이는 정 사장을 통해 향후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LG CNS는 현신균 D&A(데이터분석&인공지능) 사업부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현 신임 대표이사는 2010년부터 LG디스플레이에서 업무혁신 그룹장을 지내며 전사 차원의 IT 혁신을 주도했다. 2017년엔 LG CNS로 자리를 옮겨 CTO(최고기술책임자) 등을 역임했다. LG CNS 관계자는 “현 신임 대표이사는 기술 역량 중심의 정예 전문가 조직으로 이끈 성과를 인정받아 대표이사직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현 신임 대표이사는 향후 정보기술(IT) 역량 중심의 사업 수행 체계를 더욱 고도화하고, 디지털전환(DX)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다.

이번 임원 인사를 통해 LG는 미래를 이끌어갈 잠재력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경영 일선에 전진 배치했다. LG는 이들 임원이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고, 미래 준비를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 회장은 최근 계열사 CEO들과 진행한 사업 보고회에서 “사업의 미래 모습과 목표를 명확히 해 미래 준비의 실행력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등록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