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늪’ 한전, 25.7조 자구안 마련…“여의도 알짜땅 팔고, 임금 동결”

한전, ‘비상 경영 및 경영 혁신 실천 다짐 대회’ 개최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등 부동산 자산 다수 매각
2·3급 임금 인상분 반납…노조에 전 직원 동참 요청
정승일 사장도 경영난 책임지고 사의 표명
당정, 요구조건 반영…2분기 전기료 인상 발표 초읽기

한국전력. <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 <사진=연합뉴스>

40조원에 육박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하며 최악의 경영위기에 내몰린 한국전력이 25조7000억원 규모의 파격적인 자구안을 내놨다.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건물 등 알짜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고, 전체 임직원의 임금 동결을 추진하는 등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선다.

특히 자구안 발표와 동시에 정승일 한전 사장도 경영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한전 내부적으로 뼈를 깎은 자구책 마련과 경영진 퇴진이 단행됨에 따라, 정부여당은 그동안 보류했던 2분기 전기료 인상계획을  조만간 확정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한전은 12일 나주본사에서 정 사장과 임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 경영 및 경영 혁신 실천 다짐 대회’를 열고, 25조원대의 자구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자구안은 한전이 내놓은 방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앞서 올해 2월 발표된 재정 건전화 계획의 규모는 20조1000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날 한전 3조9000억원, 계열사 1조7000억원 등 총 5조6000억원 규모의 자구 계획이 추가됐다.

한전이 파격적인 대책을 발표한 것은 정부와 여당이 전기료 인상에 앞서 강도높은 자구책 마련을 요구한데 따른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한전의 극심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2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 전에 한전이 먼저 고강도 자구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 왔다.

당정은 당초 이달 11일 올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관련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최종 결정을 보류했다.

이번 자구 계획에는 한전의 부동산 자산 중 알짜배기로 꼽히는 여의도 남서울본부를 매각하는 방안이 새로 담겼다. 해당 건물의 가치는 조 단위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상 9층 규모의 남서울본부 건물 지하에는 변전 시설이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자구안 내 매각 대상에서 늘 제외돼 왔다. 그러나 당정의 실효성 있는 추가 자구안 마련 압박으로 한전은 변전 시설을 뺀 상층부 매각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지역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도심 내 변전소를 이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에 제값 받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다수다. 그러나 한전은 지방자치단체(지자체)의 지구 단위 계획과 연계해 매각을 추진하고, 매각 방식과 관련해 제안 공모를 받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 3개층 등 전국 주요 지역의 10개 사옥의 외부 임대를 추진해 추가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임직원 임금 동결 및 인력 운용 효율화 방안도 새 자구안에 포함됐다. 한전 및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비롯한 10개 자회사의 2급(부장급) 이상 임직원 4436명은 올해 임금 인상분을 전체 반납하고, 3급(차장급) 4030명은 인상 분 50%를 반납한다.

이외에도 올 6월 예정된 경영평가 결과를 통해 지급되는 성과급도 반납한다. 1급 이상은 전액 반납하고, 2급은 50% 반납한다.

또한 한전은 노조에 전체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인상 분을 반납하는 방안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전의 전 임직원은 2만3000명에 달한다.

전국 18개 지역본부 산하 234개 지역사무소를 주요 거점 도시 중심으로 조정하고, 지역 단위 통합 업무 센터를 운영하는 등 조직도 축소 운용한다.

신규 채용도 최소화 한다.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신사업 확대로 1600여 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디지털화와 인력 재배치를 통해 효율적으로 운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업무 추진비와 인건비 등 일상적 경상 비용도 최대한 절감해 2026년까지 1조 2000억원을 절감키로 했다.

전력 설비 투자 건설 시기를 조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한전은 안정적 전력 공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송전망, 변전소 등 전력 설비 건설 시기와 규모를 미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2026년까지 1조3 000억원의 투자를 늦출 방침이다.

또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전력 시장 제도를 추가로 개선해 영업 비용의 90%를 차지하는 구입 전력비를 최대한 줄인다는 계획이다. 한전의 목표는 2026년까지 전력 구입비를 2조8000억원 감축하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강력한 혁신 의지로 자구 노력 이행 및 재무 위기의 조기 극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로 다짐했다”며 “전 임직원이 한층 강화된 고강도 자구 대책에 비상한 각오로 적극 동참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대한민국 대표 에너지 공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국전력 본사. <사진=연합뉴스>

한편 정 사장은 이날 자구안 발표에 앞서 열린 임원들과의 화상 회의에서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무부처인 산업부의 주요 보직과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1년 5월 한전 사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한전이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한전 직원들의 태양광 사업 비리 의혹, 한국에너지공대(한전공대) 감사 은폐 의혹 등이 연거푸 불거지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정 사장의 사퇴 요구가 빗발쳤다. 

이날 정 사장의 사의 표명과 한전의 고강도 자구안이 발표됨에 따라, 당정의 올 2분기 전기요금 인상 발표가 임박해 보인다. 

업계는 전기요금 인상 최종 결정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도 “당장 오늘(12일) 결정이 나지는 않겠지만 결정이 아주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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