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으로 변화할 것인가(Deep Change), 천천히 사라질 것인가(Slow Death)”
1998년 9월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 총수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딥체인지(혁신적 변화)’를 화두로 던졌다. 외환위기로 대내외 경제환경이 불확실하던 당시, 최 회장은 그룹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화두로 던졌다.
이후 최 회장은 25년 간 ‘딥체인지’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기존 주력 분야였던 에너지·정보통신기술(ICT)에 이어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미래 신성장 분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그룹 전체의 주력사업을 신사업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최태원의 딥체인지 철학은 이후 SK그룹을 재계 2위로 성장 시키며 질적 성장을 이끌어냈다.
1일 재계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최 회장이 취임한 1998년 약 32조8000억원이었던 SK그룹 자산총액은 지난 5월 약 327조3000억원으로 25년 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재계 5위였던 SK그룹의 순위는 삼성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매출 규모도 빠르게 성장했다. SK그룹의 전체 매출액은 지난 1988년 32조40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24조2000억원으로 6배 가량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조원에서 18조8000억원으로 9배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수출액도 8조3000억원에서 83조4000억원으로 약 10배 규모로 늘어났다. 이 같은 기록적인 성장세는 과거 정유·석유화학, ICT 등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했던 그룹의 주력사업을 BBC 등 미래 신성장 분야로 확장한 덕분이다. 특히 국내 연간 수출액 887조원 중 SK그룹이 약 1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 경제에서 SK그룹이 차지하는 비중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SK그룹이 이처럼 비약적인 성장을 일군 전환점이 된 것이 반도체 사업 진출이다. SK그룹은 2012년 하이닉스 인수를 계기로 사업 포트폴리오의 무게 중심을 BBC와 그린·첨단산업으로 전환했다. 당시 최 회장은 무리한 사업진출 이라는 사내 반대를 무릅쓰고, 당시 하이닉스 인수를 관철시키며 반도체 사업을 그룹의 핵심 성장동력으로 육성해 나갔다.
최 회장은 업황 부진으로 대부분의 반도체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관련분야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갔다. 사업 내실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도 이어갔다. SK하이닉스는 키옥시아, 인텔 낸드 메모리 사업부, OCI머티리얼즈, LG실트론 등을 연이어 인수하며 반도체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최 회장의 이같은 공격적인 경영 기조를 바탕으로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며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매김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HBM3를 양산한데 이어, 지난 4월 현존 최고 용량인 24GB(기가바이트)를 구현한 HBM3 신제품을 개발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현재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SK그룹의 또 다른 성장 동력인 배터리 사업 또한 점차 본 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업체 SK온은 국내를 비롯해 북미·유럽·중국 등 전 세계에서 글로벌 생산 거점을 확보하고 빠르게 생산량을 늘려가고 있다. 실제 지난 2017년 1.7GWh였던 SK온의 배터리 생산 능력은 지난해 말 88GWh로 5년 만에 5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전환 가속화에 따라 SK온이 본격적으로 성장세에 올라설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SK온은 올 4분기 주요 고객사의 전기차 생산 확대에 힘입어 사상 첫 흑자가 예상된다. 미국 조지아주에 2개 공장을 둔 SK온은 지난해 7월 포드와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를 출범하고 테네시·켄터키주에 배터리 공장 3개를 건설중이다. 유럽에서는 헝가리 코마롬시 1·2공장과 이반차시 3공장, 중국에서는 창저우·후이저우·옌청 공장에서 배터리를 생산 중이다.
다만 이들 신사업 확장을 위해 가중된 재정적 부담은 최 회장이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 있다. 기존 사업들을 탄소중립 관점으로 전환하고, BBC 등 신성장 사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 및 기업 인수 등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최근 SK그룹 분석 보고서에서 “지난해 주력 계열사들의 영업실적 부진과 운영자금, 설비투자 관련 외부 자금 조달이 지속하면서 차입 부담이 확대됐다”며 “차입 부담이 커지는 것을 억제할 적극적인 재무전략이 필요하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업황 악화로 반도체 등 주요 사업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점도 우려되는 요인이다. 한기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반도체 업황 악화와 유가 하락, 정제마진 감소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며 “투자 부담 확대로 잉여현금흐름(FCF)은 적자를 기록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진행된 그룹 확대경영회의에서 “지금 우리는 과거 경영방법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글로벌 전환기에 살고 있다”며 “예기치 못한 위기 변수들은 물론 기회 요인에 대응하기 위해 시나리오 플래닝 경영을 고도화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양한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최 회장은 “그동안 추진해 온 파이낸셜 스토리에 향후 발생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에 맞춰 조직과 자산, 설비투자, 운영비용 등을 신속하고도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경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은서 기자 / keseo@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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