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의 본업인 가맹점 수수료 수익 비중이 나날이 쪼그라들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금융위원회가 향후 추가적인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시사했다. 이에 카드 노조 측은 카드 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특히 노조 측은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의 폐기를 요청하며, 이와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파업도 불사할 것이라 다짐했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소재의 금융위원회 앞에서 카드수수료 추가인하 즉시중단 및 주기적 재산정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최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카드 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TF’ 회의에서 추가적인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시사한 것이 불씨를 지핀 것으로 풀이된다.
제도개선 TF 회의에서 발표된 제도개선 방안을 살펴보면 당국은 이용대금명세서의 전자문서 교부, 고객 요청 시 매출전표 출력 및 단순 정보성 안내 메시지의 모바일 메시지 전환 등을 주문하고 이에 따라 일반관리비를 줄일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 채무조정 직전 사치성 상품에 대한 고액 신용카드 결제 등 도덕적 해이 사례 차단을 위해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시 반복적인 신청을 제한한다. 이에 따라 도덕적 해이 의심대상은 채무조정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개선을 통해 대손비용 절감도 강조했다.
이처럼 당국이 카드사들의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춘 것은 하반기 추가적인 수수료율 인하에 대해 시사한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카드사의 △자금조달비용 △위험관리비용 △일반관리비용 △마케팅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가맹점 수수료를 재산정하는데, 이와 같은 비용을 줄여 향후 수수료율 인하 여력을 키우겠다는 의견이 내포됐다는 것이 골자다.
정종우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카드 수수료를 인하할 때마다 당국이 선택하는 단어가 ‘고비용 구조’인데, 카드 수수료를 낮추기 위한 구실이 이것밖에 없어 이 얘기만을 매번 반복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카드사 수익원 중 수수료 수익이 50%를 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20%대로 줄어들며 약 70%는 다른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카드 산업인가 싶다”며 “카드사는 지불결제 시장에서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므로, 수수료 수익 비중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산정 제도의 폐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카드사의 총수익 대비 가맹점 수수료 수익 비중은 해마다 쪼그라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8년 30.54%에 달하던 가맹점 수수료 수익 비중은 이듬해인 2019년 26.68%로 떨어지더니, 2022년에는 24.24%로 크게 감소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23.2%로 24%대 선마저 빠르게 붕괴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노조는 수수료율 인하에 따라 본업이 약화된 카드사가 대출을 늘리며 건전성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소리 높였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22년 7월 34조6019억원에 달하던 7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이듬해인 2023년 7월 35조3789억원까지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달마다 최대치를 경신하더니, 7월 기준 38조1729억원까지 치솟은 상황이다.
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신용카드 산업 노동자들은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와 상생하고자, 또 신용카드 산업이 금융 시스템으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간 끊임없이 수수료를 인하하며 최선을 다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상생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에 수수료 인하 명분만 찾고 있어, 카드사들은 산업의 존립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카드론 등 단기 대출 사업만을 늘리고 있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고금리로 인해 카드사들의 조달비용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고, 신용판매 수익성은 악화되는 반면 대출 사업은 10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며 카드사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함께 끌어내리고 있다”면서 “가맹점 수수료 수익 감소에 따라 카드사들은 이익을 내기 위해 인건비 등 비용을 절감하고 있으나, 이는 다시 미래 수수료율 인하 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 현재 카드사 가맹점 수수료가 영세 가맹점에게 결코 부담되는 수준이 아닌 만큼, 수수료 인하는 불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해당 제도가 오히려 일반 서민들을 옥죄고 있다고도 했다.
장문열 우리카드 노조위원장은 “현재 연매출 10억원 미만 중소 및 영세 가맹점의 경우 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0.5~1.25% 수준”이라며 “이 가맹점들은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카드 매출의 1.3%를 세액 공제 받게 돼 사실상 우대 가맹점은 수수료를 내고도 세금으로 더 돌려받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재산정 제도는 3년 마다 국민간의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현재 가맹점 수수료에서 적정 이익을 내지 못하는 카드사들은 결국 연회비를 인상하고 무이자와 할인, 서비스 등 각종 혜택들을 축소하고 있다. 이는 곧 일반 소비자에게 또 다른 피해가 돌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카드사들의 주력 사업은 오래 전부터 더이상 신용카드업이 아니게 됐다”며 “본업은 정부의 포퓰리즘으로 사업성과 혁신성을 완전히 잃게 됐고, 되레 대출 사업이 카드사의 본업이 됐지만 이마저도 가맹점 수수료 부분에 따른 손익 방어를 위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을 줄 세워 걸러낼 수밖에 없다. 사금융으로 밀려난 서민들이 또 다른 피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노조 측은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가 카드사의 비용 원리를 반영하지 않고, 제도의 취지 자체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제도 자체를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당국은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영세 가맹점을 위한 제도라고 쓰며 서민호도 선심성 정책이라 읽고, 그러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면서 “3년 전 총파업 당시에도 금융위가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를 바랐지만 우리의 기대와 상반된 모습으로 가고 있는 만큼, 적격비용 재산정 제도가 폐기되지 않으면 끝까지 투쟁의 깃발을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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