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3대 복합 위기] ③ ‘사법 리스크’에 4년째 ‘발목’…“책임경영 회복, 지배구조 혁신해야”

이재용, 지난 4년 간 법정 직접 출석 100차례
사법 리스크 대응하느라 그룹 경영 부재 장기화
‘뉴 삼성’ 비전 실현, 상당 기간 차질 불가피
삼성 준법위 “이재용, 등기 임원 재선임해야”
그룹 이끌 ‘제2의 미전실’ 재건 필요성도 제기

삼성전자가 불명예스럽게 ‘4만전자 시대’를 맞게 됐다.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리면서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이 4조원대를 밑돌고, 노골적으로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주가가 큰 악재와 맞닥뜨렸다. 또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서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CEO스코어데일리는 이처럼 대내외적으로 복합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당면한 리스크를 타개할 돌파구는 무엇인지 조명하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삼성이 위태롭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혀 수년째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부당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등 회계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는 이 회장은 잦은 법원 출석으로 그룹 경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올 초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는 듯 했던 이 회장은 검찰의 항소로 또 다시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반도체 패권 회복, 미래 먹거리 발굴 등 ‘뉴 삼성’ 재건을 위한 ‘책임 경영’ 추진 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삼성 반도체는 올 3분기 4조원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경쟁사에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내주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당장 삼성은 흠집 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이 회장의 책임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항소심 공판은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첫 공판 이후 벌써 네 번째 공판이 마무리됐다. 2심 재판부는 이달 25일 항소심 변론을 종결하고, 내년 초 2심 최종 선고를 내린다는 계획이다.

재계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인 만큼 2심 재판부는 항소심 일정을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1심과 달리 2심은 상당 시일이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회장이 법정 다툼을 서둘러 끝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1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부당합병·회계부정’ 관련 2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 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삼성의 위기를 초래했다. 4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재판으로 이 회장이 그룹 경영에 매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0월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이 처음 시작된 후부터 올해 2월 최종 선고까지 약 3년 5개월 동안 무려 107차례의 심리가 열렸다. 이 중 이 회장은 총 96차례 직접 출석했다. 올 9월 이후 총 네 차례의 항소심 공판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회장이 사실상 모든 재판에 출석하는 바람에 반도체 경쟁력 제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지속 투자 등 굵직한 현안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지적이다.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재도약시키겠다는 이 회장의 뉴 삼성 비전 실현도 상당 기간 동안 차질이 불가피했다.

그 사이 삼성전자는 HBM(고대역폭메모리) 패권을 SK하이닉스에 내줬고,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분기 영업익은 4조원선 밑으로 추락했다. 더욱이 SK하이닉스가 HBM을 앞세워 ‘분기 영업익 7조원 시대’를 열면서 당장 올 3분기 삼성 반도체는 SK에 메모리 최강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사실상 사법 리스크로 인한 이 회장의 경영 부재는 삼성의 미래 성장을 방해하는 악재로 작용했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은 삼성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위기 타개가 절실한데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내년 초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사법 리스크에 대응해야 한다. 결국 삼성그룹의 수장인 이 회장의 경영 부재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결국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도 이 회장의 책임 경영 실천을 위해 지배구조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삼성 준법위는 지난달 15일 ‘삼성 준법위 2023년 연간 보고서’를 통해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를 촉구했다.

이찬희 삼성 준법위원장은 연간 보고서 발간사를 통해 “삼성은 현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내 최대 기업이지만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급변하는 국내외 경제 상황의 변화, 경험하지 못한 노조의 등장, 구성원의 자부심과 자신감 약화, 인재 영입 어려움과 기술 유출 등 사면초가의 어려움 속에 놓여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외형적인 일등을 넘어 존경받는 일류 기업으로 변화해야 할 중차대한 시점에 놓여 있다”며 “경영도 생존과 성장을 위해 과감하게 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위원장은 “삼성은 최고 경영진의 등기 임원 복귀 등 책임 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인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책임 있게 이끌어 나가기 위해선 등기 이사 재선임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짚은 것이다.

현재 이 회장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미등기 임원이다. 이 회장은 과거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등기 이사에서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미등기 임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책임 경영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함게 삼성 내에 ‘제2의 미전실’이 재건돼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 회장은 항소심 선고가 내려지기까지 사법 리스크에 계속 대응해야 한다. 이에 삼성의 수장으로서 책임 경영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이 회장을 대신해 삼성그룹의 의사결정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복원돼야 한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삼성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전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사업을 통합 관리하는 조직의 부재로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일각에서는 현재와 같은 TF 체제가 삼성의 실적 부진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성의 모든 부서가 제각기 따로 분리돼 유기적인 협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과거처럼 일사분란함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의 주력 사업이 차질을 빚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도 삼성이 통일성 있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부활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내 굴지의 여타 그룹들은 대부분 컨트롤타워를 통해 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LG의 경우 지주사인 LG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통해 그룹의 의사결정 사안을 계열사에 안정적으로 전달한다. SK도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를 통해 계열사들이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이 회장 앞에는 반도체 주도권 탈환, 미래 먹거리 발굴 시급 등 여러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현재의 TF 체제로는 뉴 삼성 비전을 구체화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 미전실에 준하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를 부활시켜 이 회장이 그룹을 효율적으로 총괄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준법위 역시 대내외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삼성그룹에 컨트롤타워를 재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위원장은 “어떤 사안에 있어서 준법위가 정말로 많이 고민하고 있다”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도 컨트롤타워가 필요한데,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다”며 “개인적 신념으로는 그룹 컨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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