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권이 연말을 앞두고 기업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과거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맞춰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탓에 건전성 악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탄핵 사태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며 은행권의 기업대출 관리 정도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고금리와 고물가, 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829조5951억원으로 전달 대비 7758억원 줄었다. 이들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이 줄어든 건 올해 들어 처음이다.
기업대출 축소 움직임은 대형은행 뿐 아니라 은행권 전반에서 있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11월 기업대출 증가 규모는 2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월 증가폭 7조3000억원과 전월 증가폭 8조1000억원보다 큰 폭으로 줄었다.
은행권은 최근 몇 년간 공격적인 기업대출 영업을 이어왔다. 금융당국의 가계 빚 억제 정책으로 관련 대출 취급이 어려워진 영향이다. 경쟁이 격화하며 일부 은행은 역마진을 감내하면서 대출 금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은행들이 기업대출 축소에 나선 건 모회사인 금융지주들이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중심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더 높은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가 반영되는데, CET1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RWA의 값을 줄여야 한다.
고금리와 경기 불황 등으로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상환능력이 악화한 점도 기업대출 축소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이자 수입이 없는 부실대출, 즉 무수익여신 규모는 1년 전보다 19.6% 증가한 4조277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기업 무수익여신은 3조597억원으로 전체 무수익여신의 71.5%를 차지했다.
연체율도 상당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국내은행의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0.16%포인트, 0.15%포인트 상승한 0.68%, 0.61%로 집계됐다. 이는 가계대출 연체율(0.36%)과 비교하면 배 가까운 수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으로 접어들면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더욱 보수적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환율이 오르면 외화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져 자산 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9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나 기업들에 원활한 자금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금융지주회사는 그간 위기 시마다 높은 건전성을 바탕으로 금융안정에 중추적 역할을 해 줬다“며 “유동성과 건전성을 다시 한번 면밀히 점검하면서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도 만전을 기해 달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최근 국내 정치 상황으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니 금융안정과 신뢰회복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정치 불안으로 자금중개 기능이 위축되지 않도록 기업에 대해서는 빈틈없이 자금을 공급하고, 소상공인 등 취약계층은 맞춤형 금융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기율 기자 / hkps099@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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