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5] 전 세계 강타한 AI 열풍, 희비 엇갈린 K-반도체…젠슨 황 한마디에 SK ‘웃고’·삼성 ‘울상’

SK, CES서 HBM 전면 내세워…삼성 HBM은 자취 감춰
최태원, 현장 둘러보며 지원 사격…이재용·전영현 불참
젠슨 황 만난 최태원 “양사 협력 강화…개발 속도 높여”
“삼성, 새 설계 필요” 젠슨 황 발언에 삼성 반도체 우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연합뉴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성황리에 끝났다. 매년 연초에 열리는 CES는 첨단 기술 트렌드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CEO스코어데일리는 올해 CES 현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을 조명하고, 차세대 인사이트를 짚어주는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라스베이거스(미국)=오창영 기자]= 2025년 새해를 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 CES를 관통하는 핵심 이슈는 역시 AI(인공지능)였다. IT·가전 뿐만 아니라 로보틱스와 스마트홈, 모빌리티 등 미래 먹거리에 적용된 최첨단 AI 기술이 CES를 장식한 가운데, AI 서비스를 구현하는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도 여느 때보다 높았다.

다양한 AI 칩 신제품을 공개한 엔비디아 못지않게 글로벌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을 선도하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다만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의 말 한마디에 SK와 삼성은 서로 다른 결과를 마주해야 했다. SK는 엔비디아와 협력을 더욱 강화키로 하며 핵심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진 반면 삼성은 HBM 품질에 의심을 받으며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현지시간으로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 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 CES의 주제는 ‘다이브 인(Dive in)’으로, 기술을 통해 연결하고(Connect), 문제를 해결하며(Solve),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자(Discover)는 메시지를 담았다. 특히 올해 CES에서는 일상에 녹아든 최첨단 AI 기술과 이를 통해 달라질 우리 미래를 집중 조명했다.

이번 CES는 개막 전부터 세계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의 황 CEO가 8년 만에 기조 연설에 나서 AI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황 CEO는 지난 6일(현지시간) 기조 연설을 통해 “다음은 ‘피지컬(physical) AI’ 시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AI 기반의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처럼 물리적 실체가 있는 AI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피지컬 AI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AI 반도체도 대거 공개됐다. ‘그레이스 블랙웰 NV링크72’, ‘RTX 블랙웰’ 등 첨단 AI 칩 제품들이 첫 선을 보였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호텔에서 열린 기조 연설에서 AI 반도체 신제품 ‘그레이스 블랙웰 NV링크72’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오창영 기자>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신제품 출시 소식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에 호재가 됐다. AI 칩 구동에 필수인 HBM 시장을 SK와 삼성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CES에서 SK·삼성은 서로 다른 행보를 보였다. SK는 ‘HBM3E’ 16단 제품 등 최신 AI 메모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글로벌 AI 선도 기업으로의 도약 의지를 내비친 반면 삼성의 전시 부스에선 AI 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C, SK엔무브 등 관계사를 중심으로 꾸려진 SK 공동 전시관은 이번 CES에서 수많은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가로와 세로 각 2m LED(발광다이오드) 패널 21장을 3열로 이어 붙인 전시관 입구 ‘혁신의 문(Innovation Gate)은 정육면체로 표현된 비트(bit)가 물결을 이루며 마치 파도치는 듯한 형상을 구현했다. 이에 전시 부스로 입장하는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전시관에 있던 SK 관계자는 “혁신의 문은 전시 핵심 소재 중 하나인 AI 데이터센터에서의 역동적인 데이터 흐름을 표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혁신의 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원형 LED 기둥을 중심으로 전시된 AI 메모리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중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섹션이 있었다. 바로 SK하이닉스의 HBM3E 16단 제품 샘플이 실제 전시된 곳이다. 손톱 크기의 실물과 확대 제작한 목업(모형)을 본 관람객들은 연신 촬영 버튼을 눌러댔다.

1월 7~10일 나흘 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내 SK 공동 전시관에서 공개된 SK하이닉스 ‘HBM3E’ 16단 샘플. <사진=오창영 기자>

SK는 엔비디아와의 끈끈한 밀월 관계도 과시했다. SK하이닉스 HBM3E를 장착한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GB200’을 함께 전시한 것이다. 이를 본 관람객들은 AI 칩을 구석구석 살펴보며 SK가 엔비디아의 독보적 파트너임을 확인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황 CEO와 만나 나눈 대화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최 회장은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 내 SK 공동 전시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젠슨 황 CEO와 만나 사업 관련해 여러 논의를 했다”며 “(기존에는) 엔비디아의 요구가 ‘더 빨리 개발을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최근엔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를 선제적으로 높여 헤드 투 헤드로 서로 빨리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가장 선진적인 기술을 확보한 데 이어 엔비디아와의 전략적 협업 관계를 구축한 SK는 ‘AI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 굳히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올해 CES에서 현 HBM 시장 주력 제품으로 부상 중인 HBM3E 16단 샘플을 전시하며, 경쟁사보다 AI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특히 SK그룹의 수장인 최 회장이 직접 현장을 찾아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의지를 내보이면서 SK가 AI를 신성장동력으로 점찍고 전사적 역량을 집중해 전력투구하고 있음을 몸소 강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이 1월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내 SK 공동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SK>

이와 달리 삼성은 IT·가전 등 여러 기기들을 초연결하는 AI 기술에 집중하고, AI 반도체는 일절 보여주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업계 안팎에선 날로 치열해지는 HBM 경쟁에서 패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이 삼성의 AI 메모리 자신감을 위축시켰을 것이란 목소리가 제기됐다.

실제로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HBM 분야에서 큰 부침을 겪고 있다. 삼성은 글로벌 AI 칩 공룡인 엔비디아를 고객사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었으나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려 고전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SK의 전 세계 HBM 시장 점유율은 53%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삼성전자도 38%의 점유율을 확보했지만, SK하이닉스와의 점유율 격차는 무려 15%p에 달한다.

위기를 느낀 삼성은 기술 초격차 전략을 기반으로 HBM 역량을 강화해 SK의 턱 밑까지 추격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24Gb D램 칩을 TSV(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12단까지 적층해 업계 최대 용량인 36GB HBM3E 12H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HBM 시장 공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어 같은해 10월 31일에는 엔비디아의 HMB3E 품질 테스트를 조속히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판매를 늘려 나갈 것이라고 깜짝 발표했다.

이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예상과 달리 그간 주요 고객사에 대한 HBM 사업화가 지연됐으나 고객사 품질 테스트 과정상 중요한 단계를 완료하는 유의미한 진전이 있어 4분기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이 공언한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삼성 HBM이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SK하이닉스가 HBM3E 12단 제품을 먼저 개발한 삼성전자를 제치고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을 납품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으로서는 AI 메모리 경쟁에서 밀려 최신 제품 양산에 돌입하지도 못하고, 품질 검증 마무리 여부도 확정 짓지 못하면서 자존심을 구기고 만 것이다.

1월 7~10일 나흘 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 마련된 삼성전자 전시 부스. <사진=오창영 기자>

다행스럽게도 CES 2025 기조 연설을 맡은 황 CEO가 새해 벽두에 “삼성전자의 HBM이 성공할 것이라 자신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삼성 반도체를 둘러싼 위기론이 머지않아 불식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황 CEO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호텔에서 글로벌 기자 간담회를 갖고, 삼성전자의 HBM과 관련해 “현재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며 “내일(8일)이 수요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 삼성의 성공을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이어 “원래 엔비디아가 사용한 첫 HBM은 삼성 제품이었다”며 “그들은 회복할 것(Recover)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황 CEO와 다르게, 삼성 HBM에 대한 시장의 시선은 차갑기만하다. 앞서 지난해 3월 황 CEO는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4’에서 삼성 HBM을 테스트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 10개월이 넘도록 삼성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삼성 HBM의 완성도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삼성 HBM이 새로 설계돼야 한다는 황 CEO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황 CEO는 “삼성은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They have to engineer a new design)”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의 HBM3E가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HBM을 새로 설계하지 않으면 앞으로 삼성은 엔비디아로부터 품질 검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DS 부문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 등이 올해 CES를 찾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마저 터져 나온다. 삼성 스스로 HBM 경쟁력을 제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 반도체가 눈앞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타개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초격차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삼성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전 부회장은 한종희 DX 부문장 부회장과 함께 이달 2일 사내 메일을 통해 전 임직원들에게 보낸 공동 명의의 ‘2025년 신년사’에서 “우리 사업의 근간인 기술과 품질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해 AI와 품질 관련 조직을 한층 더 강화했다”며 “미래 기술 리더십과 철저한 품질 확보에 만전을 기하자”고 당부했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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