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7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지며 경기 하방 요인이 확대됐으나, 널뛰고 있는 환율이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금리 동결을 통해 한 차례 관망의 자세를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관세 인상은 수입물가 상승을 유발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동시에 경기 침체(성장 둔화) 가능성도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인플레이션 억제)과 경기 부양(성장 촉진)이라는 두 목표 사이에서 정책적 딜레마에 직면한 상황이다.
이번 4월 금통위에서는 내수 회복이 필요한 만큼 금리를 더 낮춰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요구와 한미간 금리차로 인한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가계대출 억제 차원에서 동결을 바라는 목소리가 대립한 여론을 형성했다. 이중 한은은 동결을 택했지만, 경기하강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만큼 다음 달 통화정책방향회의(통방)에서는 기준금리 인하에 다시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 “전망 시나리오 설정도 어려운 상황”…한은, ‘관망’ 택했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소재의 한은 본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과 같은 연 2.75%로 유지했다. 현재 관세 정책으로 인해 환율이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과 더불어, 가계대출과 부동산 등 금융 불안까지 여전한 만큼 흐름을 신중하게 살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세계경제는 글로벌 무역갈등 심화로 성장의 하방위험이 크게 높아졌다”면서 “미국경제의 성장세는 수입관세 영향과 관세정책의 불확실성 등으로 가계와 기업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상당폭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미국 이외 국가도 수출이 둔화되면서 성장흐름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내경기는 내수와 수출 모두 둔화되면서 1분기 중 성장률이 당초 전망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정치 불확실성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경제심리 회복이 지연됐으며, 대형 산불과 일부 건설현장 공사 중단과 같은 이례적인 요인도 가세하면서 내수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특히 건설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금통위 역시 전망경로의 불확실성이 큰 것으로 보고 환율 변동성 및 가계대출 흐름을 살펴봐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통방 이후 정책 여건의 가장 큰 변화는 통상여건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 향후 전개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전례없이 커졌다”면서 “미국 관세정책의 강도와 주요국의 대응이 단기간에도 급격히 변하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는 전망의 기본 시나리오조차 설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향후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환율의 경우에도 단기간에 급격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어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가계부채는 일시 증대된 이후 점차 안정될 것으로 보이나 금융여건 완화에 따른 재확대 가능성에는 유의해야 할 것으로 봤다”며 “이러한 불확실한 여건을 종합해 볼 때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나가되, 금번에는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어떻게 변화할지 좀 더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 도널드 트럼프 美 대통령 관세 칼날에…‘터널’ 갇힌 韓 경제
이번 통방의 금리 동결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발 상호관세 발표에 따라 경기·성장 우려가 더욱 확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는 환율이 변수로 작용하며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추가 쏠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이달 9일 상호관세가 본격적으로 발효되자 1484.1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는 금융위기 당시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16년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후 상호관세 유예 소식 등과 함께 최근 올해 들어 가장 낮은 1420원 안팎으로 떨어졌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에 다시금 뛸 가능성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의 관세정책이 변화되는 것 때문에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면서 “이렇게 어두워진 상황에서는 조금 스피드를 조정하면서 밝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를) 세 차례 하고 있고, 또 계속할 예정이며, 그렇게 볼 때 보수적인 통화정책이 아니라 경기 상황에 따라서 적절히 조정하고 있다”면서 “타이밍만 지금 앞뒤로 조정하고 있을뿐, 사실 불확실성이 없었으면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었던 만큼 보수적으로 결정한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 금통위원 전원 “3개월 내 기준금리 인하해야” 한 목소리
이번 통방에서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가운데 5명은 기준금리 동결을 택했다. 아울러 금통위원 전원은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에 따르면 기준금리 동결을 택한 위원 5명은 성장과 물가를 봤을 때 인하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통화정책이 인하기조에 있고, 정책 불확실성과 금융안정 및 자본유출입을 고려할 때 당분간 금리를 동결하고 지켜보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올해 연간 성장률이 예상치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가능성도 계속해서 시사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이하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직후 ‘올해 1분기 및 향후 성장 흐름 평가’ 보고서를 통해 “1분기 성장률(직전분기 대비)은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본래 수정 경제 전망 발표는 5월로 예정돼 있었으나, 한은이 미리 분기 성장률 중간 집계 상황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시장의 충격을 줄이고, 내달 기준금리 인하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올해 연간 성장률은 1분기 성장 부진을 감안할 때 지난 2월 전망치 1.5%를 하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더해 미국의 관세정책이 2월 전망 당시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강화된 것도 성장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금융통화위원 6명 모두 3개월 내 기준금리를 연 2.7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금통위원들은 5월에 우리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가능성이 굉장히 큰 상황이므로 전망 수정치와 금융시장 상황, 외환시장 상황 등을 보면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부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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