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시대,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앞세워 ‘메모리 최강자’ 타이틀을 거머쥔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 미국에서 전체 매출의 70%를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AI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SK를 향해 미국 주요 빅테크들의 러브콜이 쇄도하면서, 미국 매출 비중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향후 엔비디아 등 미국 주요 빅테크의 AI 칩 인기가 더 확대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SK하이닉스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반면 그동안 SK하이닉스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꼽혔던 중국에선 매출이 크게 줄면서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또한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실제 시장에 반영되는 2분기 이후부터는 SK하이닉스의 대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위축될 것이란 분석이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 매출액은 17조6391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미국 매출은 12조7945억원으로, 전체의 72%나 됐다. 지난해 1분기 6조3126억원을 기록한 미국 매출 비중이 50% 수준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새 22%p나 급증한 것이다.
미국 매출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에 달할 만큼 확대된 것은 AI 고도화에 따라 HBM, DDR5, 기업용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 등 AI 메모리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HBM이 효자역할을 톡톡히 했다. SK하이닉스는 올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HBM의 경우 5세대 HBM인 ‘HBM3E’ 12단 제품의 판매 확대가 매출 증가에 크게 주효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메모리가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경쟁업체들에 비해 압도적인 기술력 덕분이다.
2013년 세계 최초로 HBM을 개발한 SK하이닉스는 HBM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3년에는 업계 최고 성능의 5세대 HBM인 HBM3E를 개발하며 ‘AI 메모리 최강자’로 우뚝 섰다. 세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기 시작한 SK하이닉스는 현존 HBM 최대 용량인 36GB를 구현한 HBM3E 12단 제품 양산에 돌입하며 ‘HBM 1등 굳히기’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HBM3E 12단 공급에 더욱 매진하고 있다. 이에 올 2분기 HBM3E 12단 제품의 매출 비중은 HBM3E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HBM 주도권 선점에 성공한 SK는 전 세계 HBM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한 상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2.5%로, 이미 절반을 넘겼다.
미국 빅테크들의 러브콜로 SK하이닉스의 HBM 수출선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과 달리, 대 중국 수출은 오히려 급격히 위축되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의 올 1분기 대 중국 매출은 2조6943억원으로, 전체의 15%에 머물렀다. 대 중국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 4조911억원을 기록하며 33%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18%p 하락한 것이다.
이처럼 대 중국 매출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은 중국에 판매하는 모바일용 반도체 판매가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SK는 중국에서 LPDDR, 낸드플래시 등 모바일용 제품을 주로 판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사진=SK하이닉스>
중국은 SK하이닉스에 견조한 수익 창출이 가능한 최대 시장으로 분류돼왔다. 그러나 올 1분기 중국 매출이 크게 감소하면서 SK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대신 미국이 SK하이닉스의 최대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한정된 생산 능력 가운데 HBM 비중이 크게 늘어난 반면 상대적으로 다른 응용 제품의 비중은 감소했다”며 “이에 따라 AI 메모리를 중점적으로 판매하는 미국 매출과 비중은 늘었고, 중국 지역 매출과 비중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SK의 대미 의존도가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 등 미국 주요 빅테크가 AI 반도체를 대량 공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매체 CNBC 방송은 13일(현지시간) 엔비디아가 사우디에 1만8000개 이상의 최신 AI 반도체를 공급한다고 보도했다. CNBC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현지 기업 휴메인(Humain)과 최신 AI 칩 공급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황 CEO는 이 자리에서 “자사의 최신 AI 칩 중 하나인 블랙웰 기반 ‘GB300’을 휴메인에 1만8000개 이상 판매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해당 칩은 사우디 내에 건립되는 500MW급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가 사우디에 첨단 GPU를 대량 공급한다는 소식에 SK하이닉스도 반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AI 칩 구동에 필수인 HBM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사진=최태원 SK그룹 회장 인스타그램 캡처>
뿐만 아니라, 차세대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 간 밀월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호재다.
SK하이닉스는 올 3월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게 HBM4 12단 샘플을 공급하며 시장 선도적 지위를 재확인했다. 시장에서는 HBM4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SK하이닉스가 올 상반기 중 내년 물량도 ‘완판(솔드아웃)’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선 특히 SK하이닉스가 오랜 기간 엔비디아와 끈끈한 파트너십을 맺어 온 만큼 HBM4 납품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CES 당시 황 CEO와 만나 나눈 대화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최 회장은 지난 1월 미 라스베이거스컨벤션센터(LVCC) 내 SK 공동 전시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황 CEO와 만나 사업 관련해 여러 논의를 했다”며 “(기존에는) 엔비디아의 요구가 ‘더 빨리 개발을 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최근엔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를 선제적으로 높여 헤드 투 헤드로 서로 빨리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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