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글로벌 불확실성 시대, 위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AI(인공지능), 반도체 등 그룹 내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리밸런싱(Rebalancing)’ 전략을 재 점검한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시했던 경영전략을 재 점검하고,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최근 불거진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태에 따른 보안 강화 방안, SK이노베이션의 실적악화 타개책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13일과 14일 양일 간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2025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와 내실 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 등을 집중 모색키로 했다. 경영전략회의는 매년 8월 열리는 이천포럼, 10월 CEO 세미나와 함께 SK그룹 내 3대 전략 회의로 꼽히는 비중 있는 행사다.
올해 회의에는 최재원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SK수펙스) 의장을 비롯해 SK㈜,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주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등 30여 명이 총 집결해 당면한 경영과제와 함께 미래 전략 등을 논의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SK그룹 수장인 최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경제인 간담회에 먼저 참석한 뒤, SKMS연구소로 이동해 회의에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SK>
최 회장을 포함한 그룹 수뇌부들은 1박 2일 간 머리를 맞대고 지난해부터 계열사별로 추진 중인 리밸런싱 진행 상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중점 점검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최 회장은 다가올 시장의 큰 파고(Big Wave)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성장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그룹 리밸런싱을 선언한 바 있다. 그는 리밸런싱의 일환으로 ‘운영 개선(Operation Improvement)’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운영 개선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제반 경영 활동이자 경영 전략이다.
당시 SK그룹은 운영 개선을 통해 3년 내 30조원의 FCF(잉여현금흐름)를 만들어 부채비율을 100% 이하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특히 최 회장은 올 초 SK그룹 구성원에게 보낸 신년사에서 “본원적 경쟁력 확보를 위해 운영 개선의 빠른 추진을 통한 경영의 내실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운영 개선이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경영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접목해야 하는 ‘경영의 기본기’로 자리잡아야 함과 동시에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모든 경영의 요소들이 그 대상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운영 개선을 통한 본원적 경쟁력 강화는 우리 스스로 변화해야 하는 만큼 불편하고 힘들 수도 있다”면서도 “SK 고유의 ‘패기’로 끈기 있고 집요하게 도전하며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협업 한다면 기대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최 회장의 리밸런싱 선언 이후, SK그룹 내 주요 계열사들은 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엔 주요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손익·현금흐름 개선, 자산 매각 등이 본격화하면서 그룹 재무구조가 빠르게 안정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SK그룹의 부채비율은 2023년 말 145%에서 지난해 3분기 말 128%로 줄어 들었다. 또한 영업이익도 2023년 2조400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 1~3분기 18조2000억원으로 흑자전환 했다.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 <사진=SK>
재무 건전성 강화 뿐만 아니라, 그룹내 본원적 경쟁력을 끌어 올리기 위한 구조개편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그룹은 지난해 11월 SK이노베이션(SK이노)과 SK E&S 합병 법인을 공식 출범 시켰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자산 규모 105조원에 달하는 합병 법인은 SK이노의 석유화학 사업의 경쟁력에 SK E&S의 LNG(액화천연가스) 밸류체인(가치 사슬)까지 확보하며 석유, 가스, 전력 등 에너지 사업 전반에 걸쳐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또한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미래 친환경 에너지 시장에서 주도권을 이어갈 기반도 구축했다.
또 지난달에는 SK㈜ CIC(사내 독립 기업)인 SK머티리얼즈의 반도체 소재 자회사 4곳을 SK에코플랜트에 편입시켰다. 이를 계기로 SK㈜는 SK에코플랜트가 기존 건설 및 친환경 기업에서 반도체 종합 서비스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핵심 소재를 중심으로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강화함에 따라 미래 성장성이 높은 반도체 소재 시장에서 SK에코플랜트의 위상이 더 확대될 전망이다.
사실상 반도체 제조·양산을 지원하기 위한 후방 산업 경쟁력을 한층 제고한 SK에코플랜트는 그룹 내에서 반도체 밸류체인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기업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점쳐진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의 경영권 매각을 위한 적격 예비 인수 후보도 물색 중이다. SK는 이달 중 적격 예비 인수 후보 선정이 끝나는 대로 세부 조건 협의, 최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을 거쳐 이르면 올해 3분기 내에 매각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2024년 11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4’에서 키노트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SK텔레콤>
SK는 이같은 소기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리밸런싱을 더욱 가속화해 SK그룹의 재무 환경을 대폭 개선하고, 본원적 경쟁력을 기반으로 기업 가치를 제고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세운 상태다.
이에 그룹 최고 경영진들은 올해 회의에서 AI, 반도체 등 미래 성장의 두 축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면 개편하고, 해당 분야에 전사적인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전략과 방법을 집중적으로 다룰 전망이다.
먼저 SK는 ‘AI 컴퍼니’ 도약을 선언한 SK텔레콤을 중심으로 AI 투자와 기술 협력을 강화해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AI B2B(기업 간 거래)인 AIX(AI 전환)와 AI 데이터센터(AIDC) 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특히 SK텔레콤은 AI 클라우드, AI 컨택센터(AICC), AI 비전 등의 서비스 라인업을 갖춘 AIX 사업에서 올해 약 30%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AIDC 사업도 확대한다. 지난해 AI 데이터 센터 강자인 람다, 펭귄 솔루션스 등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한 데 이어, 최근에는 람다와 함께 ‘GPUaaS 서비스’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사업화에 시동을 걸었다.
AI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영역에서는 AI 퍼스널 에이전트(PAA) 서비스의 수익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중 국내에서 827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한 PAA ‘에이닷(A.)’의 유료화 모델을 연내 도입해 수익성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SK하이닉스 신규 팹 M15X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첨병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메모리 생산 능력 확대에 적극 힘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AI 메모리 수요에 대응하고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첫 팹 가동 전에 충북 청주에 들어서는 M15X를 D램 생산 기지로 구축키로 결정하고, 올 4분기 오픈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1기 팹 또한 오는 2027년 2분기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최 회장의 AI 반도체 비전을 실현할 이들 신규 공장은 SK의 반도체 사업을 주도하는 핵심 생산 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최근 발생한 SK텔레콤 보안 사고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고객 가치 확대와 정보 보호 강화 방안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은 지난달 14일 그룹 내 계열사의 보안 리스크를 사전에 감지·차단하고, 보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독립형 전문 기구인 ‘정보보호 혁신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보보호 혁신특별위원장은 최창원 의장이 맡았다.
또한 SK이노베이션의 실적 부진 타개책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는 지난해 4분기 반짝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나 올 1분기 다시 적자를 기록하면서 부진의 늪에 빠진 상태다. 지난해 2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SK이노가 거둔 영업이익은 △지난해 2분기 -458억원 △3분기 -4233억원 △4분기 1599억원 △올 1분기 -446억원 등이다.
지난해 11월 SK E&S와의 합병 법인을 출범한 후 수익성 확보 및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서긴 했으나, 핵심 사업인 정유부문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배터리가 업황 악화로 나란히 부침을 겪으면서 좀처럼 실적 반등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올 1분기 SK이노의 석유 부문 영업익은 국제 유가·정제 마진 동반 하락 등의 여파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3.9% 급감한 363억원에 그쳤다. 배터리 사업을 영위하는 SK온도 299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영업익을 끌어내렸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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