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 시대, HBM(고대역폭메모리) 경쟁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가 HBM 주도권 회복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은 AI 반도체 공룡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꼽히는 미국 AMD와 손잡고 AI 반도체 역량을 강화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와 AMD가 철옹성 같은 ‘SK하이닉스·엔비디아’ 동맹에 맞서는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일 AMD는 최근 신형 AI 반도체 ‘MI350’ 시리즈에 삼성전자의 5세대 HBM ‘HBM3E’ 12단 제품을 탑재했다고 공식화 했다. AMD가 삼성 HBM 탑재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도 AMD에 HBM을 납품한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조상연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미국총괄(DSA) 부사장은 SNS를 통해 “AMD의 차세대 플랫폼에 HBM을 제공하게 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는 고성능·고효율·혁신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이어온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고 강조했다.
MI350 시리즈에는 HBM3E 12단 8개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장 올해 2분기부터 삼성전자의 HBM3E 12단 제품 출하량은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AMD와 AI 칩 밀월 관계를 맺은 삼성은 전 세계 HBM 시장에서의 위상을 더욱 드높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HBM 패권을 내주며 연일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삼성 반도체의 올 1분기 영업익은 1조1000억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의 영업익이 7조4405억원인 것과 비교해 7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해 2분기 6조4500억원의 영업익을 기록하며 실적 반등의 신호탄를 쏘는 듯했던 DS 부문은 3분기 3조8600억원으로 반토막 났고, 4분기엔 2조9000억원으로 추락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올해 들어서도 반도체 영업익이 1조원선을 겨우 넘기며 최근 5개 분기 중 가장 낮은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의 추락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입지도 뒤바꿔 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매출 기준 올 1분기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 1위는 36.0%를 기록한 SK하이닉스로 나타났다. 지난 1992년 이후 줄곧 1위였던 삼성전자는 D램 시장의 왕좌를 SK하이닉스에 내줬다. 올 1분기 삼성의 시장 점유율은 33.7%로, SK보다 2.3%p 뒤처졌다.
삼성 스스로도 HBM 경쟁력 약화를 시인한 바 있다. 앞서 지난 3월 19일 열린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장 부회장은 “AI 경쟁 시대에 HBM이 핵심 메모리인데, 시장 트렌드를 조금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고 인정했다.
HBM 패착을 만회하기 위해, 삼성전자는 “조직 개편, 기술 개발 등 필수 토대를 마련했다”며 HBM 역량을 서둘러 제고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엔 성능을 더욱 높인 HBM3E 개선 제품을 양산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올 2분기 본격적으로 제품 공급을 확대하고,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HBM3E 12단 제품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자신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DS 부문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앞서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주요 고객사에 HBM3E 개선 제품의 샘플 공급을 완료했고, 올 2분기부터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HBM 판매량은 올 1분기 저점을 찍은 후 매 분기 계단식으로 회복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삼성의 다짐은 빈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AMD에 HBM3E을 전격 공급하면서, 자존심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시장 안팎에선 AMD와의 이번 협력으로 전 세계 HBM 시장 내 삼성전자의 입지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42.4%로 집계됐다. 1위 SK하이닉스(52.5%)보다는 10.1%p 낮은 수치다. 그러나 올 2분기부터 삼성·AMD 간 파트너십이 본격화한 만큼 올해 삼성전자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AI 칩 연합을 구축한 삼성전자와 AMD가 ‘SK하이닉스·엔비디아’ 동맹을 추격하는 경쟁자로 부상할지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AMD는 삼성 HBM이 탑재된 신형 AI 칩이 엔비디아 제품보다 성능·효율이 더 뛰어나다고 발표했다. 또한 엔비디아의 AI 칩보다 가성비가 최대 40% 더 뛰어나다고 과시했다. 시장에서도 기술력과 경제성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삼성·AMD 동맹이 이미 오랜 기간 AI 동맹을 맺어온 SK·엔비디아 연합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엔비디아의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여전히 80%를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삼성 HBM이 머지않아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AMD에 공급한 HBM은 HBM3E 12단 개선 제품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재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받고 있는 제품이다.
그간 삼성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어 왔다. 특히 삼성은 앞서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당시 삼성 HBM이 새로 설계돼야 한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의 발언으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러나 삼성은 새 파트너인 AMD에 HBM3E 12단을 공급키로 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업계 안팎에선 삼성이 AMD로부터 HBM 성능을 인정 받은 만큼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 또한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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