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레이 헝가리 분리막 공장 전경. <사진=도레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둔화) 한파로 큰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들이 투자 계획을 미루거나 축소하고 나섰다.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업계가 혹한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 지원을 받는 중국 배터리 업계의 공세는 더 거세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소재 업체가 시장의 수요에 맞춰 투자 일정 조정에 나섰다. 배터리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소재로 전이된 것이다.
올해 들어서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모두 적자를 기록한 상황이다.
수주를 기반으로 투자에 나서는 배터리 업계 특성상, 배터리 소재사도 고객사인 배터리 셀 제조사 상황을 배제하고 기존 투자를 이어가기에는 부담이 있다.
최근 재고 부담을 줄이려는 배터리 업계의 전반적인 기조에 따라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소재 업체는 투자 재조정에 나섰다.
LG화학은 분리막 합작사 지분 인수 계획을 미루기로 했다. LG화학은 일본 도레이와 헝가리에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현재 각각 50%씩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LG화학이 20%를 추가로 인수해 70%까지 합작법인 지분을 늘릴 예정이었다.
LG화학은 지분 인수 시점을 지난달 30일에서 올해 12월 19일로 재변경했다. LG화학은 헝가리 분리막 합작법인 지분 20%를 인수하기 위해 총 1억8000만 달러(2445억원)를 투자해야 한다.
포스코퓨처엠도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 증설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해당 투자 건은 포스코퓨처엠의 음극재 포트폴리오 강화의 일환으로 기존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8000톤 규모의 인조흑연 음극재 공장을 증설해 총 1만3000톤까지 생산능력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던 일정은 현재 무기한 연장된 상태다.
에코프로그룹내 전구체 생산을 담당하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도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모습이다. 지난달 25일 시설투자계획 변경 공시를 통해 기존 투자액 대비 2020억원 규모를 줄이기로 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는 현재 5만톤 규모의 전구체 생산능력을 오는 2027년까지 21만톤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차전지 산업의 투자 계획 조정, 축소 등은 고객사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한다. 시장의 수요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나섰지만, 예상보다 더딘 성장세에 발맞춰 고객사와의 함께 대응하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투자 규모와 기간 등은 집행 과정에서 변경된다”며 “고객사와 논의를 바탕으로 조율하는 단계다”고 말했다.
에코프로머티리얼즈 전구체 제품 이미지. <사진=에코프로머티리얼즈>
시장의 수요에 따라 투자 일정을 조정 중인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에게는 중국 업체의 성장도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는 정부 지원과 원재료 수급 우위 등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양극재와 달리 음극재, 분리막, 전구체 등은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이 선점하고 있는 시장이다. 중국 내수 시장뿐 아니라 수출에서도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데,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소재 기업이 상위권에 다수 포진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에서 4월까지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에 적재된 소재 기준으로 음극재는 중국 샨샨(ShanShan)과 BTR가 1, 2위를 기록했다. 이들은 중국 배터리 셀 제조사인 CATL, BYD뿐 아니라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 등에 납품했다.
분리막은 중국 창신신소재(SEMCORP)와 성원재질(Senior), 시니어(Sinoma)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공고히 했다. 전구체도 중웨이그룹(CNGR), 거린메이(GEM) 등 중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도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유럽, 미국 등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반덤핑 규제와 상계관세 등이다. 미국의 경우, 해외 우려 기관(FEOC) 규정을 통해 중국에 대한 견제를 추진 중이다.
다만 배터리를 활용하는 시장이 이제 막 개화하고 있는 만큼, 한국 배터리 소재 기업이 현시점을 넘기기 위해 공급망·고객사 다변화를 추진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배터리의 수요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견딘 기업이 시장 선점이라는 과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대한 기자 / dayhan@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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