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더십 공백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수주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데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부정행위 의혹이 불거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하도급 갑질 및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위기감이 짙어지고 있다.
4일 공정위에 따르면 KAI는 기술자료 유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최근 3년 새 하도급 업체와 거래하면서 기술 자료를 유용하고, 대금을 제때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서 단가 인하를 요구한 혐의(하도급거래 공정화법 위반)다. 하도급법뿐만 아니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이번 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방산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지적한 후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열린 방위산업 발전 토론회에서 “방산 분야에는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기업들이 산업 생태계를 살리는 데 관심을 둬야 한다”면서 “방산 대기업이 원가 후려치기 등 지위 남용을 한다면 치명적인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문제는 현재 KAI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KAI는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7월 강구영 전 사장이 사임한 뒤, 현재까지 새 사장을 뽑지 못하고 있다.
관행적으로 방위사업청과 한국수출입은행장 인선 후에 KAI 사장 인선이 진행되는데, 수출입은행도 현재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KAI의 지분 26.41%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에 KAI는 국내 최대 항공우주·방위산업 분야 전시회인 서울 ADEX 2025에서도 사장 없이 해외 바이어를 맞았다. 차재병 부사장이 대행 자격으로 참석하긴 했지만, 최종 책임과 결정을 보장하지 못하는 만큼 최고경영자(CEO)가 전면에 등장한 경쟁사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 마다 KAI의 사장 공백이 이어지다보니 회사의 수주 경쟁력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실제로 KAI는 올해 방사청이 발주한 1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전자전기 체계개발 사업을 비롯해 UH/HH-60 블랙호크 헬기 성능개량, 천리안 5호 위성 개발, 해군 무인 표적기 연구개발 등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방산 호황 속 경쟁사들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 최대 실적을 달성하고 있는 반면, KAI는 지난해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각각 4.9%, 2.8%씩 줄었다. 올해 수주 목표 달성도 불투명하다. 당초 KAI는 올해 수주 목표를 8조4590억원으로 제시했으나, 2분기까지 수주한 금액은 3조1622억원에 그친다. 달성률은 고작 37.3%다.
여기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부정행위 의혹도 제기됐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AI를 상대로 △스마트팩토리 소송 △소형무인기 사업 관련 증거 인멸 △비자금 조성 및 지분 투자 등에 대한 의혹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KAI 측은 “모두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지만, 업계에서는 정치권 외풍까지 겹치자 KAI의 사장 인선이 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KAI 노조 관계자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차기 사장을 조속히 임명해 책임경영을 복원하고, 자금과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것”이라며 “사장 공백이 길어질수록 경영과 개발의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주선 기자 / js753@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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