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데이터의 등록 및 공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국가연구데이터관리및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안(국가연구데이터법)’과 관련해 기술 유출, 사업화 기회 축소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경제계가 기업 참여 국가 R&D 과제의 경우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촉구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논의 중인 국가연구데이터법에 대한 건의서를 국회와 정부에 제출했다고 27일 밝혔다.
현재 국회에서는 정부 지원금이 투입된 국가 R&D 과제의 연구 데이터 공개를 규정하는 3개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이후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과방위 소위에서 3개 발의안을 통합한 제정안이 논의됐고, 기업이 수행하는 R&D 과제 중 정부 지원 비중이 50% 이상인 경우에 연구 데이터를 통합 플랫폼에 등록·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제계는 건의서에서 “국가 연구 데이터 통합 관리 및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제정안 취지에 공감하고, 기초 연구 결과를 공개하는 방향에 대해 찬성한다”면서도 “기업이 수행하는 국가 R&D 과제의 연구 데이터가 공개될 경우,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과 사업 기회가 침해 받을 가능성이 있고, 이는 기업들의 국가 R&D 과제 참여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 국가 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우리나라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건수는 검찰 송치 건수 기준 2021년 9건에서 지난해 33건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유출 방법도 날로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6단체는 “현재 연구 데이터의 공개 예외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신기술, 신소재, 미세 공정 개선 등을 시험하고 개발하는 R&D 특성상 예외 범위를 사전에 규정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연구 결과 중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범위만을 명확히 분리하는 것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가연구데이터법으로 인해 사업 참여를 꺼리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란 분석도 제기됐다. 대한상의 소통 플랫폼을 통해 국가 R&D 과제 참여 경험이 있는 294개사 중 79.6%는 ‘기업들이 수행한 국가 R&D 과제에 기업의 핵심 영업 비밀, 경영 전략 등 중요 정보가 포함돼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유출시 피해가 우려되는 중요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응답했다. 16.7%는 “공개 가능한 정보들 위주로 포함됐다”고 답했고, “중요 정보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기업은 3.7%에 그쳤다.
연구 데이터 등록 및 공개 의무화가 향후 국가 R&D 과제 참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연구 데이터 공개가 의무화될 경우, 향후 국가 R&D 과제의 참여 의향을 물어보니, 응답 기업의 65.7%는 “참여하지만 예전에 비해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고, 2.0%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공개 의무와 관계없이 참여할 것”이라는 응답은 32.3%였다.
연구 데이터 공개로 가장 우려되는 사항에 대해 기업들은 ‘기술 정보 및 영업 비밀 노출’(57.2%)을 가장 많이 꼽았다. ‘중요 기술 및 정보의 해외 유출 위험’(38.9%), ‘특허권 확보 어려움’(34.5%), ‘거래 관계에서 비밀 유지 계약 위반 가능성’(28.5%)도 주요 우려 사항으로 지목됐다. ‘연구 데이터의 상업적 가치 감소’(17.9%), ‘연구 데이터 등록·공개에 따른 행정 부담’(11.1%) 등도 있었다.
경제계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현재의 입법안이 과도하다고 밝혔다.
건의서는 “미국과 EU(유럽연합), 일본의 국가 R&D 데이터 공개 규정을 보면, 연구 데이터 공개 대상이 논문 등 학술 출판물 중심이거나 상업적 활용 또는 연구 책임자의 결정에 따라 비공개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요국들은 하나의 법으로 모든 공개 의무를 규정하지 않고, 국가 R&D 운영기관의 사업 규정 등에 따라 공개 여부를 정하는 등 상대적으로 유연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계는 이러한 우려를 감안해 기업이 수행한 국가 R&D 과제의 연구 데이터는 등록과 공개 의무 적용 대상에서 원칙적으로 제외할 것을 건의했다. 일괄 제외가 어려울 경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데이터에 한해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AI(인공지능) 시대에 데이터 축적 및 활용은 중요한 의제지만 기업 R&D 데이터의 경쟁 자산적 성격을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국가 R&D 과제 참여를 통한 기술 혁신과 국가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정책 목표가 훼손되지 않도록 공공 R&D로 생산된 연구 데이터 수집 및 공개 의무화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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