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5년 6월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를 이끌고 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가짜 뉴스’ 논란에 휩싸이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얼마 전 배포된 대한상의 보도자료가 제대로 검증 안 된 해외 조사 결과를 인용해 국민의 판단을 흐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고의적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사태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청와대 뿐만 아니라 정부, 정치권 등 곳곳에서도 쓴소리를 내놓으면서, 그동안 국가대표 경제단체로 우뚝 선 대한상의의 위상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는 정부와 경제계 간 소통 창구를 자처해 온 최 회장의 대외 신뢰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관 산업통상부(산업부) 장관은 9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6개 경제단체 긴급 현안 점검 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배포한 보도자료로 가짜 뉴스 논란을 빚은 대한상의를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먼저 김 장관은 “대한상의를 소관하는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이번 사안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어 “해당 보도자료의 작성, 검증, 배포 전 과정에 대한 즉각 감사에 착수했다”며 “사실 관계 전반을 파악하고, 결과에 따라 대한상의에 철저히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전했다.
김 장관이 대한상의에 대한 강력한 문책을 예고한 것은 대한상의 보도자료가 불러 온 후폭풍 때문이다.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 <사진=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의는 앞서 지난 3일 ‘상속세수 전망 분석 및 납부 방식 다양화 효과 연구’ 보도자료를 냈다. 해당 보도자료는 영국 이민 컨설팅사 헨리앤파트너스의 조사를 인용해 작성됐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떠난 고액 자산가는 2400명으로, 2024년 대비 2배 증가했고,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수치다. 대한상의는 그 원인으로 상속세 부담을 꼽았다.
그러나 헨리앤파트너스의 조사 방식이 부실해 해당 자료의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고액 자산가가 상속세 때문에 한국을 떠난다’는 인과 관계를 찾기 어려운데도 대한상의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랐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대한상의는 뒤늦게 “관련 통계를 공식적·학술적으로 인용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수습에 나섰으나, 돌이키기엔 이미 늦은 때였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X(옛 트위터)에 “주권자 국민의 판단을 흐리려는 고의적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의 적이다”며 대한상의 보도자료를 문제 삼았다. 이 대통령은 “법률에 의한 공식 단체인 대한상의가 이런 짓을 공개적으로 벌인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사익 도모와 정부 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 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역시 “부유층 2400명이 상속세 부담으로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가짜 뉴스다”며 “제대로 안 된 통계를 활용해 보도자료를 생산·배포한 대한상의는 응당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대한상의가 공신력도 없고 사실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은 정보를 유통해 국민과 시장 그리고 정부 정책 전반에 심각한 혼선을 초래했다”며 “정부는 사실 관계를 철저히 밝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행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왼쪽)이 9일 서울 종로구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열린 ‘6개 경제단체 긴급 현안 점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부터 정부, 정치권 등까지 대한상의가 가짜 뉴스를 내놨다고 지적하자, 주무 부처 장관인 김 장관이 즉각 감사, 엄중 문책 등 특단의 조치에 돌입했다.
이날 김 장관은 “최근 1년 간 우리나라 백만장자 유출이 2400명으로 2배 증가했다는 주장 역시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며 “국세청에 따르면 연평균 139명에 불과해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대한상의가 상속제 제도 개선을 목적으로 인용한 통계의 출처는 전문 조사기관이 아니라 이민 컨설팅을 영업 목적으로 하는 사설 업체의 추계에 불과하다”며 “다수의 해외 언론과 연구기관이 해당 자료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으나 대한상의는 최소한의 검증 절차조차 거치지 않은 채 자료를 인용·확산시켰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더 심각한 것은 해당 자료 어디에도 고액 자산가 이민의 원인으로 상속세를 지목한 내용이 없음에도 대한상의는 이를 상속세 문제로 연결해 해석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이번 사안은 국민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정책 환경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심각한 사안이다”며 “감사 결과에 따라 담당자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전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그 여파가 대한상의 수장인 최 회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보도자료 때문에 회장이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실로 난감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실제 미국 출장 중 이번 사안을 보고받은 최 회장은 “책임 있는 기관인 만큼 면밀히 데이터를 챙겼어야 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1월 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2026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사태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단체로서의 대표성과 보도자료의 신뢰성을 한번에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대한상의의 위상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도화선이 될 수밖에 없다.
과거 정부와 경제계 간 소통 창구는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전신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맡아 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로 전경련의 지위가 크게 추락하면서 반사적으로 대한상의의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전경련의 해체 과정에서 대한상의의 영향력 확대에는 최 회장의 역할이 컸다. 2021년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한 최 회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회적 가치 등 다양한 의제를 제시하며 정부 정책 기조에 적극 발맞춰 왔다. 이에 대한상의는 단숨에 정부 정책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최근 가짜 뉴스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가대표 경제단체로서의 대한상의의 역할과 대외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아울러 지난 5년 여 간 대한상의를 이끌며 정부와 긴밀히 소통해 온 최 회장 역시 이미지 실추가 불가피해졌다.
‘최태원 리더십’이 약화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경제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한상의가 지고, 한경협이 재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지난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와 지방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 간담회’에는 주요 10대 기업 총수·임원과 함께 한경협이 경제계를 대표해 참석했다. 이날 류진 한경협 회장은 “주요 10대 그룹은 향후 5년 간 약 270조원 규모의 지방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10대 그룹 외에 다른 기업까지 합하면 300조원 정도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발표했다.
청년 일자리와 관련해선 “청년 실업은 그 자체도 문제지만 지역 경제의 어려움과 깊이 연결된 문제라 더욱 심각하다”며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지방에서는 인구가 줄어 지역 소멸을 걱정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며 “경제계도 적극적 투자로 호응하겠다”고 밝혔다.
한경협이 간담회에서 정부 정책 기조에 발맞춰 청년 일자리, 지방 투자 확대 등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은 반면, 대한상의는 이날 모임에 아예 참석하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 이에 일각에선 대한상의의 입지가 위축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단체의 지위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달려 있다”며 “이번 가짜 뉴스 논란을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따라 최 회장과 대한상의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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