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타며 호재를 맞고 있는 삼성전자에 파업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임금 교섭을 벌였던 노사가 성과급 제도 개선안을 두고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성과급 제도 개선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노조와 “큰 폭의 양보를 했는데도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사측이 서로 맞서면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 충돌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산되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파업 리스크’까지 불거지면서, 삼성이 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호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초기업노동조합(초기업노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삼성전자노조동행(동행노조) 등 삼성전자 내 3개 노조로 구성된 공동투쟁본부는 9일 오전 11시 조합원을 대상으로 쟁의 행위 결의를 위한 찬반 투표에 돌입했다. 전자 투표로 진행되는 이번 찬반 투표는 오는 18일 오후 2시까지 진행된다.
만약 찬반 투표에서 쟁의 행위가 가결되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이번 찬반 투표에 대한 조합원들의 참여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투쟁본부 중 가장 많은 조합원 수를 자랑하는 초기업노조는 이날 투표 시작 1시간여 만에 투표율 28%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 오전 10시 조합원 명부 기준 투표 대상 조합원 6만6337명 가운데 1만8578명이 투표 개시 1시간여 만에 표를 던진 것이다.
비단 초기업노조 뿐만 아니다. 전삼노, 동행노조 등도 찬반 투표가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투쟁본부의 조합원들이 이번 찬반 투표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단연 성과급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역대급 실적에 맞춰 천문학적인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하면서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9월 임금 교섭 타결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성과급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 매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되, 개인별 성과급 산정 금액의 80%는 당해 연도에 지급하고 나머지 20%는 2년에 걸쳐 매년 10%씩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SK는 새로 마련된 성과급 기준에 따라 지난달 5일 직원들에 기본급의 2964%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연봉이 1억원이라면 성과급으로 1억4820만원을 받은 셈이다.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SK하이닉스보다 적은 수준의 성과급이 지급됐다. 삼성은 지난 1월 사내망을 통해 2025년도 ‘OPI(초과이익성과급)’ 지급률을 확정 공지했다.
OPI는 TAI(목표달성장려금)와 함께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성과급 제도 중 하나다. 매년 한 차례 지급되는 OPI는 소속 사업 부문의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경우,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받을 수 있다.
사업 부문별로 살펴보면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의 OPI 지급률은 MX사업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난해보다 낮아졌거나 비슷했다. MX사업부는 ‘갤럭시S25’ 시리즈와 ‘갤럭시Z7’ 시리즈 흥행에 힘입어 50%의 OPI를 받게 됐다. 그러나 TV 사업을 담당하는 VD(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를 비롯해 DA(생활가전)사업부, 네트워크사업부, 의료기기사업부는 12%의 지급률이 책정됐다. 아울러 경영지원과 전장·오디오 사업 자회사 하만은 연봉의 39%를 OPI로 받는다.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실적이 크게 개선되고 있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OPI 지급률은 47%로 책정됐다.
초기업노조에 따르면 삼성전자 직원 평균 연봉은 7700만원 수준이다. 이를 토대로 DS 부문의 OPI를 단순 계산할 경우, 약 3620만원 수준이다.
SK하이닉스 직원이 삼성전자와 동일한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가정할 때, 성과급은 약 1억1400만원에 달한다. 사실상 삼성의 성과급이 SK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성과급 제도 개선을 위해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못박았다. 노조는 중노위 조정 중지 결정에 따라 합법적 쟁의권을 확보하고, 다음달 조합원 총집회, 올해 5월 조합원 총파업까지 나아가겠다고 엄포를 놨다. 공동투쟁본부는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여 간 사측과 여러 차례 교섭하고 중노위 조정까지 갔는데도, 사측은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 제도의 투명화 및 상한 폐지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이는 성과급 제도 개선에 대한 사측의 의지가 부재한 탓이다”고 밝혔다.
공동투쟁본부는 “우리의 핵심 요구안은 성과급 제도 투명화, 성과급 상한 폐지, 임금 인상률 7% 등임에 변함이 없다”며 “삼성전자의 인재 제일 경영 원칙 실현, 반도체 인재 경쟁력 향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측은 미래 투자 재원 확보와 사업 부문 간 형평성을 이유로 성과급 제도 투명화 및 상한 폐지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맞서고 있다.
사측은 “OPI 상한을 폐지하면 일부 사업부는 일시적으로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초과 이익 달성이 어려운 대다수 사업 부문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전례가 없이 많은 이익 창출에 기여한 사업 부문에는 특별 포상을 통해 상당한 보상을 하고자 한다”며 “나머지 재원을 활용해 다양한 보상과 복리 후생 제도를 운영해 보다 많은 직원들이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전사 차원의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공동투쟁본부의 계획대로 다음달 총집회, 올 5월 총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당장 삼성전자는 막대한 생산 차질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상 삼성전자 내 단일 과반 노조에 오른 초기업노조의 조합원 수는 이날 오후 2시 기준 6만6703명이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전삼노 조합원 수는 2만1264명이다. 여기에 동행노조 조합원 수까지 합산하면 공동투쟁본부 조합원 수는 무려 9만여 명에 달한다.
지난해 반기보고서 기준 삼성전자 총 직원 수가 12만8925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약 70%의 삼성전자 직원들이 공동투쟁본부에 몸 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파업에 나서게 되면 삼성전자 공장은 제대로 가동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특히 조합원 상당수는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가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HBM 등 AI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 운영에 적신호가 켜질 우려도 크다. 이는 첨단 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드라이브를 건 삼성전자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동 전쟁 확산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급격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파업 리스크로 인한 생산 차질까지 빚게 될 경우, 삼성전자의 위상은 크게 약화될 지 모를 일이다.
삼성은 앞서 지난 2024년 7월 창사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파업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전삼노가 25일 간 무기한 총파업을 진행하면서 삼성전자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는 후문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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