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이 지난해 한해에만 최대 수백억원대의 보수를 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가장 많은 보수를 수령한 총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었다.
반면 ‘재계 맏형’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보수를 한푼도 받지 않은 것으로 파악돼 대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7년 이후 지난해까지 9년 연속 ‘무보수 경영’ 기조를 이어 오면서, 사법 리스크·HBM(고대역폭메모리) 반도체 위기를 정면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6일 CEO스코어데일리와 부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 총수의 평균 보수총액은 102억586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81억430만원 대비 20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기준 총수가 있는 81개 대기업집단 중 국내 10대 그룹은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롯데, 한화, HD현대, GS, 신세계, 한진 등이다.
10대 그룹 총수 중 지난해 보수총액이 가장 높은 인물은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었다. 김 회장은 지난해 그룹 계열사 5개사에서 총 248억4100만원을 수령했다.
김 회장은 우선, 지주사인 한화에서 50억4000만원을 받았다. 한화는 김 회장의 보수 산정 기준과 관련해 “임원 보수 규정에 따라 직책, 직위, 리더십, 전문성, 회사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한화솔루션 50억4100만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50억4000만원 △한화시스템 50억4000만원 △한화비전 46억8000만원 등에서도 상당한 보수를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진=한화>
김 회장 다음으로 보수를 많이 수령한 총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롯데지주를 비롯해 롯데쇼핑,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롯데물산, 호텔롯데 등 7개사에서 총 191억3400만원을 지급 받았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총 174억6100만원을 수령해 국내 10대 그룹 총수 중 세 번째로 보수를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정 회장은 현대차에서만 90억1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HBM 1등’ SK하이닉스의 역대급 실적에 힘입어 지난해 총 82억5000만원의 보수를 지급 받았고,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주사 LG 한곳에서만 71억2700만원을 수령했다. 이 외에도 △정기선 HD현대 회장 23억9400만원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 57억7000만원 △이명희 신세계 총괄회장 30억3100만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145억7800만원 등이었다.
국내 10대 그룹 총수 대다수가 이처럼 수십억~수백억원의 보수를 수령한 것과 대조적으로, 재계 1위 삼성그룹의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단 한푼도 보수를 받지 않아 대조를 보였다. 이 회장은 지난해 삼성 그룹내 계열사 어느 곳에서도 보수를 수령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무보수 경영 기조는 지난 2017년부터 시작돼 9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 회장이 무보수 경영에 나선 것은, 지난 2017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데 대한 자숙의 의미로 시작됐다.
앞서 2017년 2월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 회장은 재계 맏형 삼성 총수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자 무보수 경영을 선언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어떤 계열사에서도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21년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위반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이 회장은 같은해 8월 가석방 됐다. 이후 특경법상 5년 간 취업 제한으로 인해 공식적인 경영 활동을 하지 못하다 2022년 8월 광복절 특별 사면으로 복권되면서 삼성그룹에 복귀했다.
광복절 특사로 그룹 경영이 가능해진 만큼 이 회장은 다시 보수를 수령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보수 경영을 고집했다.
이 회장의 무보수 경영 기조는 ‘책임 경영’ 실천과도 맞닿아 있다.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돌아온 이듬해인 2023년 삼성전자는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 악화로 2023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6조5700억원에 그쳤다. 영업익이 10조원을 하회한 것은 금융 위기가 있었던 2008년 6조319억원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은 연간 영업손실 14조8700억원로, 창립 이래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보수를 확실히 지급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보수를 한푼도 챙기지 않았다. 이 회장의 이같은 모습은 임직원들에게 위기 극복의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대내외 신뢰를 회복하는 마중물이 됐다는 평가다.

무보수 경영 기조에서 묻어난 이 회장의 강력한 책임 경영 실천 의지는 삼성전자의 재도약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60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익을 거두며, 한국 기업 역사상 유례 없는 대기록을 썼기 때문이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익은 57조2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조6853억원 대비 무려 755.6% 폭증한 수치다.
시장에서는 DS 부문의 선전이 전체 실적을 밀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첨단 AI(인공지능) 칩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하면서 역대급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 업계는 DS 부문의 올 1분기 영업익 전망치가 50조원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삼성전자의 1분기 전체 영업익 57조2000억원 중 87.4%를 DS 부문에서 벌어들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갈라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역대급의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무보수 경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이 회장은 삼성, SK, 현대차, LG 등 국내 4대 그룹 총수 가운데 유일한 미등기 임원이다. 미등기 임원은 경영 참여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이는 이 회장이 무보수 경영 기조를 고수하는 데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그간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이어 올 3월 삼성전자 정기 주주 총회(주총)에서 이 회장의 등기 이사 복귀가 성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올해도 이 회장의 등기 이사 재선임은 불발됐다.
이 회장이 미등기 임원으로서의 지위를 당분간 이어 가는 만큼 무보수 경영 기조도 계속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와 관련,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은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이 회장이 등기 임원으로서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서 책임 경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낸 바 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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