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 사이클’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한 삼성전자가 글로벌 D램 1위를 수성하며 ‘메모리 최강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핵심 AI(인공지능) 메모리인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비롯한 다양한 메모리 제품 경쟁력을 대폭 강화하며 AI 관련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덕분이다.
차세대 HBM 패권을 거머쥔 삼성전자의 독주 체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목소리도 높다. 일각에선 ‘삼성 메모리 시대’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겠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D램 시장 규모는 970억달러(약 146조955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분기인 지난해 4분기 535억7800만달러(약 81조1921억원) 대비 무려 81.0% 증가한 수치다.
이와 관련, 트렌드포스는 “AI 모델이 LLM(거대언어모델)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5세대 HBM ‘HBM3E’, 저전력 D램 ‘LPDDR5X’, 고용량 서버용 D램 ‘RDIMM(레지스터드듀얼인라인메모리모듈)’ 등 다양한 메모리 수요가 확대됐다”며 “전 세계 D램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D램 시장의 고속 성장을 견인한 것은, 최근 HBM 주도권을 탈환한 삼성전자다.
삼성의 올 1분기 D램 매출은 373억2300만달러(약 56조5630억원)로, 지난해 4분기 193억달러 대비 93.4% 폭증했다. 이에 따라, 시장 점유율도 지난해 4분기 36.0%에서 올 1분기 38.5%로, 2.5%p 높아졌다.
SK하이닉스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 SK의 올 1분기 D램 매출은 279억8200만달러(약 42조4263억원)로, 지난해 4분기 172억2100만달러 대비 62.5%나 늘었다. 그러나 시장 점유율은 다소 낮아졌다.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32.1%에서 올 1분기 28.8%로, 3.3%p 줄었다.
트렌드포스는 “SK하이닉스는 주요 메모리 제조 업체 3개사 가운데 HBM 출하 비중이 가장 높았다”면서도 “하지만 올해 HBM 계약 가격 하락 영향으로 전체 ASP(평균 판매 가격) 상승 폭이 일부 제한된 것이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켰다”고 설명했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 간극은 크게 벌어졌다. 지난해 4분기 3.9%p에 그쳤던 양사 간 시장 점유율 격차는 올 1분기 9.7%p로, 두 배 이상 커졌다. 한때 삼성전자를 제치고 전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올랐던 SK하이닉스가 다시 선두 자리를 내주고, 오히려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 삼성전자는 메모리 경쟁력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D램 1등’ 굳히기에 돌입했다. 특히 핵심 AI 메모리인 HBM 역량을 강화해 독보적인 경쟁 우위를 갖추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삼성의 의지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삼성전자는 업계 최고 성능의 7세대 HBM ‘HBM4E’ 12단 제품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세계 최초로 출하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HBM4E 샘플 공급은 단순한 제품 라인업 확대를 넘어, 향후 수년 간 폭발적으로 성장할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에서 삼성의 독보적인 공급 역량과 기술적 우위를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삼성 HBM4E는 6세대 HBM ‘HBM4’에서 검증된 1c(10나노급 6세대) D램과 4나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정을 동시에 적용했다.
특히 설계 및 공정 최적화를 통해 독보적인 성능을 구현했다. 핀당 동작 속도는 14Gbps에서 최대 16Gbps까지 지원한다. 이는 이전 세대 HBM4 대비 20% 이상 향상된 수치다. 또 단일 스택 기준 초당 3.6TB의 대역폭을 제공함으로써 LLM(거대언어모델) 및 차세대 AI 시스템의 연산 속도를 극대화했다.
용량도 개선됐다. HBM4E 12단 제품은 48GB의 고용량을 구현해 전작 대비 용량을 30% 이상 늘렸다. 삼성전자는 향후 고객사의 다양한 서비스 환경에 맞춰 32GB(8단), 64GB(16단)까지 라인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저전력 설계 및 패키징 구조 최적화 기술을 집약해 전작 대비 에너지 효율은 16%, 열 저항 특성은 14% 이상 개선됐다.
삼성전자는 이번 HBM4E 샘플 공급을 시작으로 고객사 일정에 맞춰 양산 공급할 예정이다.
황상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개발담당 부사장은 “HBM4 양산 성공에 이어 차세대 HBM4E 샘플 공급까지 차질 없이 완수하며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기술 리더십을 시장에 확실히 각인시켰다”며 “앞으로도 압도적인 기술 초격차와 선제적인 생산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AI 메모리 시장의 성장을 강력하게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비단 HBM4E뿐만 아니다. 삼성은 차세대 HBM 주도권 확보에도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6’에 마련된 삼성디스플레이 전시 부스에서 8세대 HBM ‘HBM5’ 목업(실물 모형)을 처음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삼성은 HBM5에 적용될 핵심 열관리 기술 ‘HPB(Heat Path Block)’ 구조를 소개했다. HPB는 AI 메모리의 성능을 높이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 다이와 다이 사이의 물리적 표면에서 발생하는 열을 보다 효율적으로 분산·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삼성전자는 이미 HBM4E을 기반으로 HPB 기술 구현 및 검증을 완료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은 향후 HBM5부터 HPB를 본격 적용해 성능과 안정성을 더욱 고도화할 계획이다.
아울러 삼성은 HBM5에 1c(10나노급 6세대) D램과 최선단 2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선제적으로 적용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송재혁 삼성전자 CTO(최고기술책임자) 사장은 “고객사가 요구하는 메모리 대역폭을 최고로 높이는 과정에서 베이스 다이 특정 영역에 발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일종의 굴뚝같은 구조를 추가해 열 저항을 낮추고 동작 안정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어 “HBM5에 첫 적용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고객의 요구에 따라 적용 시점을 당길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삼성전자가 경쟁자들보다 앞서 차세대 HBM 기술력을 과시하면서,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당분간 삼성전자의 독주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거센 AI 열풍으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할 것이란 점도 삼성으로서는 호재다. 높은 고객사 수요로 인해 메모리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탓이다. 이에 따라, 삼성의 독주 체제는 한층 굳건해질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올 2분기에도 주요 메모리 제조 업체들의 재고는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등 공급량이 제한적인 상황이다”며 “올 2분기 범용 D램 계약 가격은 1분기 대비 58~63%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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