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보다 현금, 손보업계 ‘안전판’ 확보 총력…KB·NH 1년 새 2배 ↑

손보사 ‘현금 예치’ 9.1조 돌파…삼성 1.9조·현대해상 1.5조 보유
보험연구원 “대외 환경 급변 대비…수익 포기해도 유동성 확보”

주요 손해보험사 현금 및 예치금 보유 현황. <그래프=CEO스코어데일리>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자산 운용의 고삐를 죄며 '재무적 안전판' 확보에 나서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과 금리 변동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보다 즉시 활용 가능한 현금성 자산을 늘려 보험금 지급 능력을 강화하려는 선제적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통상 보험사는 고객에게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만큼 현금성 자산을 과도하게 보유하는 것은 자산운용 효율 측면에서 불리할 수 있다. 그럼에도 1년 새 업계 전반의 현금 및 예치금 규모가 크게 늘었다는 것은 보험사들이 현재 시장 환경을 그만큼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6일 손해보험협회 공시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17개 손해보험사의 현금 및 예치금 규모는 올해 1분기 누계 기준 9조1829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 누계 기준 7조5015억원보다 1조6813억원(22%) 증가한 수치다.

가장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인 곳은 KB손해보험과 NH농협손해보험이다. KB손해보험의 현금 및 예치금은 지난해 1분기 5857억원에서 올해 1분기 1조2060억원으로 6203억원(106%) 늘었다. 같은 기간 NH농협손해보험도 2996억원에서 6234억원으로 3237억원(108%) 증가하며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손보사들도 현금 곳간을 두둑하게 채웠다. 업계 1위 삼성화재는 3622억원(22%)을 추가 적립해 총 1조9753억원의 현금 및 예치금을 보유하게 됐다. 현대해상 역시 2755억원(22%) 증가한 1조5211억원을 기록했다. 이 밖에 메리츠화재는 8007억원(10% 증가), 롯데손해보험은 7922억원(27% 증가), 한화손해보험은 5705억원(16% 증가)으로 현금 및 예치금 규모를 확대했다.

디지털 손보사인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같은 기간 525억원에서 880억원으로 현금 및 예치금을 약 68% 늘리며 지급여력 강화에 나섰다.

반면 자산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현금 및 예치금 규모를 줄인 곳도 있었다. 코리안리는 5960억원에서 4384억원으로 1575억원 감소했고, 신한EZ손해보험은 1115억원에서 61억원으로 1054억원 줄었다. SGI서울보증 역시 2049억원에서 1569억원으로 479억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는 대다수 손보사가 대규모 현금 확보에 나선 배경으로 대내외 금융시장 불확실성을 꼽는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보험사는 계약자의 보험금 지급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충분한 자본뿐 아니라 현금 및 예치금과 같은 유동성이 높은 자산도 확보해야 한다.

실제로 보험업계의 운용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2006년 3.3%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5.7%로 2.4%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향후 미국 금리 정책 변화 등으로 대외 환경이 급변할 경우 국내 금융시장 역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은 일반적으로 만기가 짧고 안전자산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수익률이 낮다. 따라서 보험사가 현금 비중을 높인다는 것은 일정 수준의 수익 창출 기회를 포기하더라도 지급 능력(Solvency)과 유동성 확보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금융 시장의 불안에 대비해 보험사들의 현금성 자산 보유 비중 적정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량 해약에 따른 유동성이 부족한 경우 보유자산을 매각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보유자산의 매각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금융 시장의 향방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섣불리 채권 등에 묶이기보다, 현금 예치 형태로 자금을 운용하다 적기에 고수익 자산으로 갈아타려는 ‘대기성 자금’의 성격이 짙다는 분석도 있다”며 “확보된 유동성은 향후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는 든든한 방어막이자, 새로운 투자 기회를 잡는 공격적인 무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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