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영업 중인 생명보험사들이 보유한 외화표시유가증권 규모가 1년 새 15조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보험부채를 보유한 생보사들이 자산·부채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 갭을 줄이기 위해 해외 장기채권 투자를 확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차이를 줄일수록 신지급여력(K-ICS) 비율 등 자본 적정성 관리에도 유리하다.
외화표시유가증권은 외국 통화로 발행된 유가증권으로 환율 변동에 따라 평가손익이 달라진다. 해외채권과 해외주식,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채권 등으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해외채권 비중이 약 75%로 가장 높다.
생명보험협회 공시를 분석한 결과, 국내에서 영업 중인 22개 생명보험사의 외화표시유가증권 총액은 올해 3월 말 기준 118조6673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월 말(102조5896억원) 대비 16조777억원(15.7%) 증가한 규모다.
생보사별로 살펴보면 업계 전반의 자산 확대 기조가 뚜렷한 가운데 대형사와 일부 중소형사, 외국계 생보사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외화표시유가증권 보유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삼성생명이다. 삼성생명은 1년 새 2조1675억원을 늘려 총 28조8329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교보생명이 2조4710억원 증가한 21조5722억원, 한화생명이 2조9132억원 증가한 16조7635억원을 기록했다. 이들 대형 3사는 전체 외화표시유가증권의 56.6%를 차지했다.
중소형사 가운데서는 동양생명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동양생명의 외화표시유가증권은 지난해 3월 말 4조618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7조4726억원으로 2조8546억원 늘었다.
외국계인 AIA생명도 2조원 이상 자산을 늘리며 6조4298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KDB생명(-1243억원)과 DB생명(-1608억원) 등 일부 중소형사는 외화표시유가증권 규모를 줄이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생보사들이 외화표시유가증권 투자를 확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IFRS17 체제 아래 자본 적정성 관리에 있다. 신지급여력(K-ICS) 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안전자산 비중을 확대하고 자산·부채 듀레이션 갭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생보사들은 장기 보험부채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 듀레이션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국내 초장기 채권시장은 발행 물량 자체가 제한적이어서 보험업계의 수요를 충분히 소화하기 어렵다.
결국 생보사들은 듀레이션을 늘리기 위해 미국 국채 등 만기가 긴 해외 우량채권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계 보험사의 경우 본사의 투자 정책과 리스크 관리 기조에 따라 외화표시유가증권과 국공채 투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다만 대외 거시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은 자산운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성 확대는 초고령화와 저성장에 따른 해외증권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요인과 엔화 동조화, 글로벌 AI 투자 열풍 등 순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글로벌 금리 변동성 역시 부담 요인이다. 금리 상승은 신규 채권의 이자수익 확대와 역마진 완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기존에 보유한 매도가능채권의 평가손실을 유발해 K-ICS 비율을 일시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생보사들은 이 같은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이종통화스왑(CRS) 등 파생상품을 활용한 환헤지 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다만 환헤지가 모든 위험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생보사들의 환헤지 비율은 평균 105% 내외로 사실상 완전헤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헤지 비용이 구조적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또한 헤지 수단과 만기 구조에 따라 비용과 효과가 달라지는 만큼 정교한 관리가 요구된다.
업계에서는 환헤지 만기 구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설계하느냐가 향후 자산·부채 종합관리(ALM)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장기채권 투자 확대는 신지급여력비율 대응을 위한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다. 문제는 최적의 헤지 만기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결국 환헤지 비용 최소화와 자산-부채 가중평균만기 갭 관리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정교한 ALM 역량이 각 사의 장기 수익성을 실질적으로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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