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KAI 2대주주’ 자리 꿰찼지만…인수까진 갈 길 멀어

지분 매입 빨랐지만 인수는 멀다…관건은 구조
공적 지분 35%…열쇠는 시장 아닌 정책 결정
12% 지분에도 과제 산적…공정위 문턱 높아

한화그룹이 최근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지분을 사들이고 있다. 지난 16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AI 지분 6.50% 확보를 공시했고, 한화시스템은 1250억원을 들여 1.53%까지 늘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USA가 보유한 1.01%를 더하면 그룹 합산 지분율은 9.04%로 한국수출입은행에 이은 2대 주주에 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연말까지 5000억원을 더 투입해 KAI 지분율을 9.97%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에 따라 그룹 합산 지분율은 12.51%로 뛰어오르게 된다. 그러나 지분율과 경영권 사이의 간극은 여전하다. 한화그룹이 당장 12%가 넘는 지분을 손에 쥐어도 KAI 인수를 보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한화그룹의 남은 과제는 자금이 아닌 구조에 있다.

◇KAI 민영화 주도권은 정부에…12%로는 역부족

19일 KAI에 따르면 현재 이 회사의 최대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은 26.41%의 지분을, 3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8.75%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공적 성격의 지분만 35%를 넘어서는 탓에 한화그룹이 보유한 지분만으로 이사회를 장악하거나 주요 안건을 통과시키기는 어렵다.

한화그룹도 일단 경영권 인수보다는 영향력 확보에 무게를 두는 모양새다. 한화 측은 앞서 KAI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바꾼 것과 관련해 “의사결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 경우 주주로서 적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회사 및 주주,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해 관련 사안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의 이번 KAI 지분 인수가 ‘명분 쌓기’에 가깝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수출입은행의 KAI 지분 매각 등 향후 정부가 민영화 결정을 내리면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KAI는 사실상 준공기업에 가깝다. 실제 KAI는 1999년 외환위기 직후 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의 항공사업 부문을 통합해 만든 정부 주도 빅딜의 산물이다. 2016~2017년 한국산업은행이 보유 지분을 한국수출입은행에 현물출자하면서 현 지배구조가 굳어졌다. 정권 교체기마다 재임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영화 논의도 방산 보안, 노조 반발, 공공성 등의 문제로 매번 좌초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변수는 더 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정부 자산 매각 중단과 진행·검토 중인 매각의 재검토를 각 부처에 긴급 지시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불거졌던 국유재산 헐값 매각 논란이 배경으로 꼽힌다. 문제는 한국수출입은행의 KAI 지분 매각이 직접 사정권에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KAI 민영화 주도권을 쥔 가운데 정책적 움직임이 없으면 인수 시나리오는 탄력받지 못할 전망이다.

한화그룹 본사 사옥 전경.<사진제공=한화그룹>

◇노조 반발·독과점 논란 과제…추가 자금도 필요

내부 저항도 거세다. KAI 노조는 한화그룹의 경영 참여를 단순 투자가 아닌 명백한 경영 개입 시도로 규정하고 있다. KAI의 설계 기술, 원가 구조, 수주 전략 등 민감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유일의 완제기 개발·제작 업체인 KAI의 시장 경쟁력 약화와 내부 거래 증가 등도 우려의 근거다.

한화그룹으로서는 KAI를 품으면 육해공과 우주를 잇는 방산 밸류체인을 완성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항공엔진·우주발사체, 한화시스템의 레이더·항전장비 기술이 KAI의 완제기 플랫폼과 결합해 시너지를 낸다는 청사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록히드마틴, 라인메탈 등 대형 방산기업과 겨룰 체급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다만 독과점 논란은 넘어야 할 산이다. 특정 기업집단에 지상, 해양, 항공, 우주 등 전 방산 영역이 집중되면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 반대로 방산은 단일 수요자인 방위사업청이 가격과 기술 요건을 강하게 통제하는 시장이라 공급자가 원가를 올려 큰 이익을 보기 어렵다. 독과점 잣대를 다른 시장과 똑같이 들이대기는 어렵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다.

KAI 인수전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해도 한화그룹의 단독 무대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유도무기와 방공체계에 강한 LIG D&A(옛 LIG넥스원)가 KAI 인수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존재 자체가 KAI의 몸값을 높이고 정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 가격도 낮지는 않다. KAI의 시가총액은 현재 약 14조원 안팎이다. 경영권 확보를 결정지을 규모의 지분을 쥐려면 조 단위 자금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지분율은 매우 빠르게 올랐지만, 인수는 아직 먼 얘기”라며 “KAI 지분 인수는 한화 측이 한국판 스페이스X를 만들기 위한 첫 단계로 보인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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