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론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43조원을 돌파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에도 중·저신용자의 자금 수요가 이어지면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에도 카드론 증가세를 억제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며, 카드론 시장의 특성을 고려해 총량 규제와 함께 중금리·정책금융 연계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3일 여신금융협회의 자료를 종합한 결과, 국내 9개 카드사(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우리·하나·BC·NH농협카드)의 5월 말 카드론 잔액은 43조2534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42조6571억원)보다 1.40% 증가한 수준으로, 사상 첫 43조원 규모를 돌파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5월 카드론 잔액은 전월 대비 소폭 증가했다”며 “이는 가정의 달 등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자금 수요 증가와 은행권 대출문턱 상승에 따른 풍선효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설명했다.
카드사별로 보면 증가세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NH농협카드로, 1년 전보다 7.10% 증가한 3조3624억원으로 집계됐다. 뒤이어 △현대카드 6조1934억원(전년 대비 4.75% 증가) △우리카드 4조2768억원(4.72% 증가) △하나카드 2조9734억원(3.91% 증가) △삼성카드 6조7531억원(3.89% 증가)도 평균을 웃도는 증가율을 기록했다. BC카드 역시 2.30% 증가한 431억원을 기록했으나, 잔액 규모 자체가 작아 전체 추세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다만 일부 카드사의 경우에는 전년 대비 카드론 잔액이 줄었다. 특히 KB국민카드의 올 5월 카드론 잔액은 6조4616억원으로, 전년 동기(6조7012억원)보다 3.5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신한카드와 롯데카드 역시 각각 2.34% 감소한 8조1540억원, 0.62% 감소한 5조356억원으로 집계됐다.
카드업계의 카드론 잔액은 올해 1월 42조5850억원에서 2월 42조9022억원, 3월 42조9942억원으로 매달 증가하며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어 4월 들어서는 42조9830억원으로 소폭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으나, 한 달 만에 다시 반등하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같은 흐름은 당국의 거듭된 관리 주문 및 규제 강화에도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된다. 금융당국은 은행권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카드론 잔액이 빠르게 증가하자 카드업계에 자율적인 대출 관리와 건전성 강화를 주문한 상태다.
실제 금융당국은 카드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에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제시하고 신용대출 취급 규모를 자체적으로 관리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에 카드사들은 대출 심사를 강화하거나 신규 취급 한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일부 카드사는 대출 비교 플랫폼에서 신용대출 상품 노출을 일시 중단하는 등 신규 수요 조절에도 나섰다.
제도적으로는 카드론에 대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한 점이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카드론을 신용대출 범주에 포함해 차주의 대출 한도를 관리하고 있으며, 스트레스 DSR 적용 대상에도 카드론을 포함해 미래 금리 상승 위험까지 반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차주의 대출 가능 한도가 줄어들고, 카드론 이용 문턱도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는 카드업계 자체를 향한 규제가 본격화됐다. 금융당국은 올해 카드론을 포함한 가계대출 증가율을 1.5% 수준으로 관리하도록 카드업계에 주문했고, 지난 5월 말에는 증가세가 두드러진 일부 카드사(삼성·현대·KB국민·롯데·BC·NH농협카드)를 중심으로 가계부채 관리 한도 준수 여부 등 리스크 관리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규제가 강해질수록 은행권에서 밀려난 중·저신용자가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금융위원회는 카드사가 취급한 중금리대출의 일부를 가계대출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인센티브를 운영 중이며, 중금리대출 활성화 방안도 추가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당국의 적극적인 카드론 규제에도 불구, 카드업계의 카드론 잔액이 늘어나는 데는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에 구조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한국신용카드학회 학회장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와 금융권 규제 강화로 차주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가 줄어들면서 카드론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며 “카드론은 별도의 복잡한 심사 절차 없이 이용할 수 있어 대체 대출 수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카드사 입장에서도 연체율 상승 부담이 있지만, 수익성 측면에서 카드론 공급을 급격히 축소하기는 어렵다”며 “당분간 카드론 잔액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총량 규제 방식이 카드론에는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카드론은 대부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차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장인 만큼, 가계부채 총량을 규제한다고 해서 단순히 줄어드는 영역이 아니며 총량 규제 자체를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카드론을 중금리 대출처럼 정책금융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 교수는 “카드론 시장은 은행권과 대부업권 사이에 위치한 중간 영역으로, 단순한 총량 규제만으로 수요를 억제하기 쉽지 않다”며 “중·저신용 차주들이 고금리 대출로 밀려나지 않도록 정책금융과 연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카드론은 단순한 규제 대상이 아니라 서민금융의 한 축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페이데이론’ 같은 중금리 대출 전환 프로그램이나 정책금융 연계 등을 통해 금융취약계층의 자금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이지원 기자 / easy910@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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