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우선협상대상자(이하 우협)로 확정됐다. 국내 함정 건조의 주도권을 둘러싼 특수선 양강의 2년 가까운 대치에서 승부를 가른 것은 기술력이 아니라 과거 군사기밀 유출에서 비롯된 감점이었다. 법적 변수가 대부분 걷힌 가운데 한화오션이 오랜 기간 표류하던 사업을 제대로 수행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기술 점수 앞선 HD현대중공업, ‘1.2점 감점’에 발목
한화오션은 지난 1일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발주한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2일 공시했다. 한화오션 측은 “구체적인 거래 조건에 대한 협상을 통해 최종 계약이 체결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KDDX는 2030년까지 7000톤급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첫 국산 이지스급 구축함 사업이다. 개념설계와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총사업비 7조8000억원은 6척 건조 전체를 포함한 규모다. 이번에 발주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예산은 8821억원 수준이다.
이번 결과를 읽는 열쇠는 두 개의 숫자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총점 격차 0.5867점과 HD현대중공업이 받은 보안 감점 1.2점이다. HD현대중공업은 기술능력 평가에서 한화오션보다 0.6425점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보안 감점이 반영되면서 총점 93.3675점을 기록해 한화오션(93.9542점)에 0.5867점 뒤졌다. 실력이 아닌 결격 사유로 승부가 갈렸다는 HD현대중공업의 주장과 규정에 따른 정당한 결과라는 한화오션의 입장이 맞서는 지점이다.
감점의 발단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HD현대중공업 임직원 9명은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수행한 KDDX 개념설계도 등 군사기밀을 무단 촬영해 공유한 혐의로 기소됐고 2022년 11월 8명, 2023년 12월 1명이 각각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초 감점 기한은 2022년 확정판결을 기준으로 산정될 예정이었으나, 방사청은 지난해 내부 법리 재검토를 거쳐 2022년 확정 사건과 2023년 확정 사건을 분리해 감점을 적용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이에 따라 감점 적용 시한은 2026년 12월까지 연장됐고, KDDX 제안서 평가 또한 그 유효 기간 안에 놓이게 됐다.
HD현대중공업은 평가 이전부터 법적 대응에 나섰으나 번번이 막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0부는 지난 5월 8일 HD현대중공업이 방사청을 상대로 제기한 KDDX 기본설계 제안요청서 배포 및 자료 공유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도 지난 6월 5일 HD현대중공업이 방사청을 상대로 제기한 보안 감점 연장 조처가 부당하다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HD현대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지난 6월 11일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 기각 결정에 대한 항고장을 제출했다.
남은 선택지였던 이의신청도 벽에 부딪혔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6월 22일 KDDX 사업 제안서 평가 과정에서 적용된 보안 감점이 부당하다며 방사청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방사청은 지난 1일 이를 기각했다. 방사청은 이달 중순부터 한화오션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해 다음달 말 최종 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본설계=건조’ 공식 깨진다…관건은 수행 능력
한화오션이 최종 계약까지 체결하면 국내 함정 건조 사업의 오랜 관행이 처음으로 깨지게 된다. 통상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연이어 수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앞서 개념설계는 201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하지만 이번 우협 선정으로 기본설계 업체와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업체가 나뉘면서 방사청 개청 이후 사실상 첫 설계 분리 사례가 될 전망이다.
주목할 부분은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안방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반면 해외 시장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 해군 MRO(유지·보수·정비) 부문이 대표적이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올해 1분기에만 각각 2건씩 미 해군 함정 MRO 사업을 수주했다. 지난해 연간 실적에 이미 근접했거나 넘어선 수치다. 다만 접근 방식은 갈린다. 한화오션은 부산·경남 지역 정비업체들과 클러스터를 꾸려 물량을 소화하는 한편 2024년 말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업에 직접 진출했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방산업체 안두릴과 무인수상정 설계·건조 계약을 맺는 등 신조 함정 수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체급 측면에서 보면 한화오션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한화오션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3조2099억원, 영업이익 4411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3월 말 수주잔고는 35조4000억원 수준으로 약 3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상선이 실적을 떠받치는 동안 KDDX와 미 해군 함정 MRO,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으로 이어지는 특수선 사업이 다음 성장축으로 부상했다.
관건은 한화오션의 사업 수행 능력이다. 우선 과제는 설계의 연속성이다.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했지만,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한 터라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맡은 한화오션은 경쟁사가 축적한 기본설계 자료를 넘겨받아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 2024년 착수 예정이던 사업이 2년 가까이 표류한 만큼 2032년 말 선도함 인도라는 우리 군의 목표를 맞추려면 상세설계 단계부터 속도를 붙여야 한다. 향후 건조 일정과 품질을 좌우하는 설계 완성도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첨단 함정 기술력과 사업 수행 역량을 바탕으로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만큼 정부와 협상에 성실히 임해 사업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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