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이 2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열린 '글로벌 보험산업의 디지털 및 AI 혁신 : 미국 및 중국의 사례’ 산학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보험산업이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전을 계기로 전례 없는 변화의 기로에 선 가운데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보험산업의 AI 혁신과 리스크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AI에 대한 소비자 수용성이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긍정적 선호가 아닌, 기존 보험 채널에 대한 불만족의 표출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동시에 AI 시대 보험사 경쟁력은 브랜드나 감성 마케팅이 아닌 상품·서비스의 조건과 투명성에 달려 있다는 진단도 제시됐다.
보험연구원은 2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 17층 컨퍼런스룸에서 '글로벌 보험산업의 디지털 및 AI 혁신 : 미국 및 중국의 사례’를 주제로 산학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패널토론에서 손재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AI가 바꾸는 보험소비와 보험상품·서비스의 미래'를 발표하며 보험산업의 AI 전략 방향과 에이전틱 AI가 불러올 구조 변화를 짚었다.
손 연구위원은 우선 국가별 AI 수용성 차이를 기존 보험 채널에 대한 소비자 불만족의 표출로 해석했다. 그는 “보험사가 생성형 AI를 활용해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에 대한 수용성이 국가별로 다른데, 이는 AI 자체에 대한 긍정적 선호가 아니라 기존 채널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족에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거로 LIMRA(2022)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명보험 설계사를 ‘신뢰할 만하다’고 응답한 소비자 비율이 일본 38%(12개국 중 최저), 한국 44%(두 번째로 낮음)에 그쳤다. 반면 중국 82%, 인도 83%, 태국 85%, 말레이시아 86% 등 아시아 신흥국은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손 연구위원은 “소비자가 AI를 통해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상품 비교, 청구 처리, 계약 관리”라며 “기존에 불투명하고 번거롭게 제공됐던 서비스들을 AI로 해소하면서 만족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험사 AI 전략의 핵심 방향으로 신뢰·투명성 구현을 제시했다. 그는 “만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단순한 AI 활용이 아니라 신뢰라면, 보험사도 AI를 도입하면서 궁극적으로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고 투명성을 담보하며 중립적 조언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전략 방향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의의 ‘AI 리스크’ 관리 전략…통제 넘어 ‘새로운 시장’ 열어야
손 연구위원은 에이전틱 AI의 등장이 보험소비의 행동 주체를 바꿔 비즈니스 모델 전반을 재편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동안 생성형 AI는 소비자가 상품을 이해하고 비교해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도구 역할을 했다”며 “그러나 에이전틱 AI는 조언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행동한다. 스스로 상품을 비교하고 협상하고 가입하고 청구까지 처리해 주는 주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매 구조의 근본 변화도 예고하면서 “소비자의 에이전틱 AI가 순수하게 조건과 가격을 비교해 최적의 상품을 고른다면 설계사 인력과 감성 마케팅은 무의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 연구위원은 “결국 소비자의 AI 에이전트는 보험사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획득하고 비교하지만, 보험사의 에이전틱 AI가 소비자가 직접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소비자를 알기 어렵다”면서 “정보 비대칭이 오히려 보험사에 불리한 방향으로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AI 활용 확대에 따른 리스크의 확장된 정의와 대응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AI 리스크를 기술적 오류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규제 강화에 따른 준법 비용과 소비자 보호 강화에 따른 기업 부담까지 포함한 광의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 연구위원에 따르면 글로벌 보험사들은 이미 이런 내부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화에 착수했다. 미국의 트래블러스는 전사적 책임 AI 프레임워크를 수립해 임직원 교육과 거버넌스에 내재화했으며 알리안츠는 ‘AllianzGPT’를 사용할 때 내부 데이터 보안과 클라우드 보안 체계를 일원화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영국의 아비바나 다이렉트라인 등은 금융행동감독청(FCA) 소비자 의무 규정에 맞춰 AI 점검 결과를 KPI 및 거버넌스 체계와 연계해 이사회와 C-레벨 수준에서 책임지도록 명문화했다.
특히 손 연구위원은 이런 리스크를 새로운 상품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뮌헨리가 AI 성능 저하를 보증하는 ‘aiSure’ 상품을 선보이고, 파라메트릭스가 IT 중단 손실을 보상하는 파라메트릭 보험을 제공하는 등 ‘AI 전용 보험’이라는 신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그는 “에이전틱 AI를 포함한 AI 전반이 보험 소비를 더 투명하고 소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AI 리스크를 관리하고 이를 새로운 상품·서비스로 전환하는 역량이 보험 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I가 바꾸는 보험소비와 상품·서비스의 미래는 결국 소비자가 요구하는 신뢰와 투명성을 AI를 통해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발표를 마무리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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