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 세대까지 별개로 존재하던 C클래스 쿠페와 E클래스 쿠페를 하나로 합쳐 ‘CLE’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세그먼트의 경계를 지운 이 결정은 단순한 라인업 정리가 아니다. C클래스의 민첩함과 E클래스의 여유를 하나의 차체에 녹여내겠다는 선언이었고, 그 정점에 메르세데스-AMG CLE 53 4매틱+ 쿠페가 있다. 1억원을 훌쩍 넘는 몸값의 이 고성능 쿠페를 사흘간 도심과 고속도로, 와인딩 로드에서 시승했다.
CLE 53을 처음 마주한 인상은 ‘길다’였다. 전장은 4855mm, 휠베이스는 2875mm로 이전 세대 C클래스 쿠페보다 늘어난 수치가 옆모습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앞바퀴를 밀어낸 롱노즈 비율과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루프라인이 어우러져 멈춰 선 상태에서도 내달릴 듯한 자세를 만든다.
전면에는 세로 슬랫으로 채운 AMG 특유의 파나메리카나 그릴이 자리한다. 벤츠의 다른 쿠페가 우아함에 무게를 둔다면, 이 차는 그릴 하나로 성격을 드러낸다. 프레임리스 도어, 매끈하게 처리된 도어 핸들, 넓게 벌린 리어 펜더가 더해지며 실루엣은 과장 없이 단단하다. 면과 비율로 승부하는 방식이다. 이 절제가 오히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힘이 된다.
기본 디자인이 이처럼 담백한 절제미를 보여준다면, 시승차에 적용된 선 옐로 색상과 AMG 나이트 패키지 I·II, 20인치 블랙 휠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프론트 에이프런의 트림 스트립과 사이드 미러 하우징, 테일 파이프 트림을 고광택 블랙으로 마감했고,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 위 AMG 배지, 후면 차명 레터링을 다크 크롬으로 덮었다. 여기에 블랙 컬러의 20인치 AMG Y스포크 경량 알로이 휠까지 더해지며, 차체 곳곳의 크롬은 자취를 감췄다. 원색의 바탕과 검은 장식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실내로 들어서면 벤츠의 최신 문법이 그대로 펼쳐진다. 세로형 11.9인치 중앙 디스플레이와 12.3인치 운전자 디스플레이가 MBUX 위에서 움직이고, AMG 전용 그래픽과 주행 데이터 화면이 더해진다. 터빈을 닮은 송풍구, 손에 감기는 스티어링 휠의 그립, 다이얼과 주행 모드 버튼까지, 조작계는 철저히 운전자 중심으로 짜여 있다.
주목할 부분은 균형이다. 스포츠 시트는 몸을 확실히 붙들면서도 장거리 주행에서 피로감을 덜어준다. 앞좌석 공간과 마감 품질은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쿠페라는 태생적 한계는 분명하다. 뒷좌석은 성인이 편하게 머물기에는 좁고, 트렁크 공간도 실용성과는 거리가 살짝 멀다. 이 차를 데일리카로 고민한다면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이 차를 시승하는 내내 받은 인상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흔히 발생하는 ‘한 박자의 공백’이 없다.
CLE 53의 심장은 M256 계열의 3.0리터 직렬 6기통 터보 엔진이다. 여기에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통합 스타터 제너레이터(ISG) 등이 결합해 최고출력 449마력, 최대토크 57.1kg·m에 전기 부스트가 순간적으로 힘을 더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4.2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힘을 내는 방식이다. 배기가스의 힘으로 돌아가는 터보는 힘이 붙기까지 짧은 지연을 피하기 어렵다. 이른바 ‘터보랙’이다. CLE 53은 이 공백을 전기의 힘으로 메운다. 결과적으로 페달을 밟는 발끝과 차체가 밀려나는 순간 사이의 간극이 지워진다. 저속에서 가속을 이어가든, 코너를 빠져나오며 다시 힘을 쏟든, 반응은 한결같이 즉각적이었다.
AMG 스피드시프트 TCT 9G 변속기는 이 응답성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변속 충격을 억제하며, 스포츠 모드에서는 필요한 순간 단수를 정확히 떨어뜨린다. 특히 가변식 사륜구동 AMG 퍼포먼스 4매틱+는 노면에 상관없이 접지력을 확보한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회전 반경을 줄이고, 고속에서 안정감을 더했다. AMG 라이드 컨트롤 서스펜션은 컴포트에서 진동을 부드럽게 걸러내고, 스포츠와 스포츠+에서는 자세를 금세 다잡았다.
장점은 명확하다. 지연 없는 선형적 출력, 직렬 6기통 특유의 매끄러운 회전 질감과 잘 다듬어진 배기음이다. 데일리카로서의 정숙함과 스포츠카로서의 몰입감을 하나의 스위치로 오가는 폭넓은 스펙트럼도 강점이다.
CLE 53의 위치는 경쟁 구도 안에서 뚜렷해진다. BMW M440i x드라이브 쿠페는 같은 3.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쓰지만, 출력이 449마력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반대로 500마력을 넘어서는 BMW M4는 성격과 가격대 모두 상위 모델인 AMG 63과 경쟁하는 영역이다. 아우디의 6기통 쿠페가 세대교체를 거치며 존재감이 옅어진 점을 감안하면, CLE 53은 ‘M440i보다는 위, M4보다는 아래’라는 틈새를 파고든다.
CLE 53의 가치는 스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차의 매력은 ‘가장 현실적으로 세련된 드림카’라는 데 있다. 세련된 쿠페의 실루엣, 즉각적인 가속, 일상과 스포츠를 넘나드는 주행 감각, 그리고 하차감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올라운더 카를 찾는 이들에게 돈값을 충분히 해내는 차다. 메르세데스-AMG CLE 53 4매틱+ 쿠페는 이성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 매력적인 타협점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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