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사유진 기자>
네이버와 카카오 노동조합이 모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통합교섭’ 도입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나섰다. 계열사별로 법인은 나뉘어 있지만 사업재편과 인사, 보상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의사결정은 그룹 차원에서 이뤄지는 만큼 실제 결정권을 가진 본사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네이버 노조가 2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통합교섭 요구 사실공고와 관련한 시정신청을 제기할 예정이어서, 통합교섭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 회사측과 갈등이 확산될 전망이다.
1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산하 네이버지회와 카카오지회는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실과 함께 ‘IT산업 통합교섭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노조가 이날 공통적으로 제기한 문제는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다. 사업과 조직을 계열사 단위로 나눠 놓은 상황에서 그룹 차원의 결정은 모기업이나 최고경영진이 내리면서도, 노동조건이나 고용 문제에 대한 교섭 책임은 개별 법인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노조는 이날 네이버가 계열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본사가 통합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지분 소유 구조와 이사회 구성, 사업과 매출의 종속성, 인사 이동과 근로조건 등을 보면 네이버가 계열사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네이버가 계열사 교섭이나 근로조건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 지회장은 “네이버의 결정이 계열사 근로조건에 그대로 적용돼 온 이력이 있고 네이버의 교섭 결과가 계열사에 동일하게 적용된 사례도 있다”며 “네이버는 이미 계열사 노동자들의 사용자로서 행동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의 이같은 요구에, 네이버는 계열사 소속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면서 사실상 거부 입장을 밝힌 상태다.
오 지회장은 이에 대해 “네이버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네이버 사업에만 종속돼 매출 전부를 네이버에 의존하는 계열사도 있다”며 “이런 회사에 대해서도 네이버가 사용자가 아니라면 노란봉투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는 원청이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네이버 노조는 지난 8월 20일 통합교섭 요구를 공식화했지만 네이버가 교섭 요구 사실공고에 응하지 않자, 지난 2일 경기지노위에 시정신청을 접수하기로 했다. 통합교섭 요구 이후 네이버 노조가 밟는 첫 공식 법적 절차다.
오 지회장은 “노란봉투법의 취지에 비춰볼 때 네이버가 계열사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며 “이번 판단은 네이버 계열사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란봉투법이 살아 있는 법인지 묻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제트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달 9일 네이버 1784 로비에서 임금 동결과 임원진의 소통 부재를 규탄하고 있다. <사진=김동일 기자>
카카오 노조 역시 법인별 교섭만으로는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카카오는 사업을 만들고 분사하고 인수하고 재편하면서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해 왔고, 투자와 사업 방향, 조직개편, 계열사 매각과 분할, 보상정책의 큰 방향도 그룹 차원에서 결정돼 왔다”며 “경영할 때는 하나의 공동체인데 책임질 때는 서로 다른 회사가 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카카오 노조가 요구하는 통합교섭은 모든 계열사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동일하게 맞추자는 개념은 아니다. 각 법인의 사업 특성과 독립성을 인정하되 회사 매각이나 사업 종료, 조직개편 등 여러 계열사의 고용과 노동환경에 영향을 주는 사안은 결정 권한을 가진 그룹 차원의 주체와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지회장은 “통합교섭은 모든 회사를 똑같이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회사를 매각하거나 사업을 종료한다면 고용대책을 함께 논의하고, 조직을 개편한다면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미리 살펴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카카오가 추진하고 있는 인적분할 등 대규모 사업구조 개편도 통합교섭 요구의 배경으로 꼽힌다. 카카오 노조는 그룹 차원의 사업 재편 과정에서 계열사 노동자의 고용안정 방안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내 IT 대표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를 시작으로 노조의 통합교섭 요구가 거세지고 있지만, 정작 기업 입장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각 계열사마다 사업 구조와 수익성, 인력 구성, 의사결정 체계가 다른 만큼, 이를 하나의 교섭 틀로 묶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각 계열사가 별도 법인으로 이사회와 경영진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모기업이 모든 근로조건을 전부 결정하거나 책임지는 것 자체는 모순이라는 해석이다. 이와 함께, 개별 회사의 임금·복지·인사 등 개별 사안마다 실제 권한이 어디에 있는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통합교섭이 자칫 각 계열사의 경영 자율성을 제약하거나 교섭 범위를 둘러싼 또 다른 분쟁을 낳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결국 향후 쟁점은 ‘그룹 차원의 영향력’과 ‘법적 사용자 책임’의 경계를 어떻게 봐야할 지가 될 전망이다. 노조는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는 본사가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회사 측은 계열사별 독립성과 사안별 권한 차이를 강조하고 있어 양측의 간극이 큰 상황이다. 특히 네이버 노조가 노동위원회 판단을 구하기로 한 만큼,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통합교섭 방식에 대한 기준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것이란 관측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동일 기자 / same91@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