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경제는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인해 다양한 부침을 겪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이 실적 부진에 시달렸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됐다. 중국에 대한 서방의 견제가 심화하며 지정학 리스크는 한층 더 심화됐다. 여기에 글로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등 악재까지 겹치며 우리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올 하반기부터 국내 대표 업종인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수출·설비 투자 회복 흐름이 이어지면서 내년에는 한국경제가 급 반등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CEO스코어데일리는 올 한해 각 산업분야를 결산하고, 내년도 주요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침체 늪 벗어나는 반도체 시장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올해 반도체 시장은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반도체 한파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K-반도체에 큰 타격을 입히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연초부터 실적악화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챗GPT가 쏘아 올린 AI(인공지능) 열풍으로 최근 반도체 업황이 급속도고 개선되고 있다. AI 칩에 기본 장착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DDR5 등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호조에 힘입어, 삼성·SK 모두 적자 폭을 빠르게 줄여 나가는 모습이다.
내년도에는 AI 특수를 발판으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이 대폭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까지 나오면서 K-반도체의 재도약 가능성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중심 축인 삼성·SK가 올 4분기, 늦어도 내년 상반기중에는 흑자전환에 성공함과 동시에 실적 또한 폭발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올해 반도체 시장, 극심한 침체…삼성·SK, 역대급 영업적자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올 한해 엄청난 침체를 겪었다. IT 수요 둔화로 인해 반도체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는 곧바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1일 글로벌 반도체 시장조사기관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치는 5201억2600만달러(약 678조8164억원)으로 추정됐다. 이는 지난해 5740억8400만달러(약 749조6963억원) 대비 9.4% 감소한 수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WSTS에 따르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 전망치는 896억100만달러(약 117조99억원)로, 지난해 1297억6700만달러(약 169조4627억원)와 비교해 무려 31.0% 급감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같은 반도체 업황 부진 속에서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 역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인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3조75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조1200억원의 흑자를 낸 것과 비교하면 현재 우려스러운 기록이다.
올해 삼성전자의 DS부문은 줄곧 적자 기조를 이어 오고 있다. 올 1분기 -4조5800억원, 2분기 -4조3600억원 등을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도 3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올해 삼성 반도체 부문 누적 적자는 12조6900억원으로 불어났다.
SK하이닉스 실적도 상당히 암울하다. 연결 재무제표 기준 올 3분기 SK하이닉스 영업손실은 1조79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6605억원에서 적자전환했다.
올 1분기 영업익 -3조4023억원, 2분기 -2조8821억원 등 상반기 적자 규모를 더하면 올해 SK의 누적 적자 규모가 8조764억원에 달한다.
하반기 들어 적자폭을 줄이고는 있지만, 4분기에도 흑자전환은 어려워 보인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 DS 부문의 올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조1000억원으로 추산됐다. SK하이닉스도 -1424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를 지속할 것으로 예측됐다.
K-반도체가 적자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지만, 삼성과 SK 모두 내년 상반기부터는 바닥을 찍고, 실적 반등이 본격화 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최근 실적 추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올 3분기 삼성전자는 4조원대 중반의 적자를 기록했던 올 1분기나 2분기 대비 적자 폭을 6000~8000억원가량 크게 줄였다. 주력 아이템인 메모리 실적이 개선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HBM, DDR5, LPDDR5x 등 고부가 D램 판매량이 증가하고, 일부 제품 판매 가격이 상승하면서 메모리의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 3분기 1조원대 영업 적자를 낸 SK하이닉스도 직전 분기인 2분기와 비교해 적자 규모를 큰폭으로 줄였다. SK하이닉스의 2분기 영업손실은 2조8821억원이었으나 3개월 만에 1조원 넘게 적자 폭을 축소시켰다.
SK하이닉스가 3분기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은 D램 사업이 기지개를 켠 덕분이다. 올 하반기 들어 메모리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프리미엄 D램 제품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올 3분기 SK하이닉스의 D램 출하량은 AI 등 고성능 서버용 메모리 인기에 힘입어 2분기 대비 약 20% 늘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업체 톱3 가운데 가장 먼저 D램 부문에서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올 1분기 적자로 돌아섰던 D램 사업 실적이 2분기 만에 흑자전환 했다”면서 “향후 반도체 시황이 더 좋아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실적 또한 빠르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메모리 업황 점차 회복세…삼성·SK, HBM 앞세워 흑자전환 가속화
K-반도체가 적자 규모를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는 삼성·SK가 적자에서 벗어나 흑자전환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같은 장밋빛 전망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 바로 HBM이다.
엔비디아,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급성장하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AI 분야의 정보 처리에 주로 사용되는 핵심 장치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GPU를 활용하면 문장 생성 및 분석 등 생성형 AI 학습 등 여러 개의 연산을 병렬 방식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고도의 작업을 빠르게 해내는 고성능 GPU를 구동하기 위해선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수록 HBM 수요는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AI 칩 특수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란 분석이다. K-반도체가 글로벌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HBM 시장은 삼성·SK 두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삼성전자도 40%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공급을 전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HBM 수요가 확대되면서 향후 K-반도체의 입지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내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각각 46~49%를 차지하고, 미국 마이크론이 4~6%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HBM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AI 반도체 호재를 의식한 삼성·SK는 이미 글로벌 HBM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었다.
삼성전자는 내년도 HBM 생산 능력을 올해보다 2.5배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은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HBM3와 HBM3E 신제품 사업을 확대 중이다”며 “이미 주요 고객사와 내년 공급 물량에 대한 협의를 완료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에 HBM3E 양산에 돌입할 방침이다. 앞서 올 10월 20일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맥에너리 컨벤션 센터(McEnery Convention Center)에서 ‘삼성 메모리 테크 데이(Samsung Memory Tech Day) 2023’을 열고, AI 기술 혁신을 이끌 초고성능 HBM3E ‘샤인볼트(Shinebolt)’를 공개한 바 있다.
김재준 부사장은 “내년 하반기에는 HBM3E로의 전환에 속도를 높여 날로 높아지는 AI 반도체 시장의 요구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며 “글로벌 HBM 시장 선도 업체로서 제품 경쟁력과 안정적인 공급력 등을 기반으로 시장 리더십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 성능의 D램인 HBM3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며 글로벌 시장 선점에 성공한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HBM3E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명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올 4월 “하반기 8Gbps HBM3E 제품 샘플을 준비하고, 내년 상반기부터 양산할 예정이다”고 밝힌 바 있다.
최첨단 HBM 고객사도 확보해 둔 상태다. SK하이닉스는 올 8월 엔비디아 등 고객사에 성능 검증 절차를 위한 샘플을 공급했다.
이안 벅 엔비디아 하이퍼스케일·HPC 담당 부사장은 “엔비디아는 최선단 가속 컴퓨팅 솔루션즈용 HBM을 위해 SK하이닉스와 오랜 기간 협력을 지속해 왔다”며 “앞으로도 차세대 AI 컴퓨팅을 선보이고자 HBM3E 분야에서 양사 간 협업이 계속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적극 매진해 전 세계 HBM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김우현 SK하이닉스 CFO(최고재무책임자) 부사장은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향후 5년 간 AI 반도체 시장은 40%가량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HBM 수요는 연평균 8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을 지속적으로 선도해 나갈 것이다”고 덧붙였다.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40% 넘게 성장 전망…K-반도체 , 점프 업 한다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올해보다 40% 이상 커질 것이란 장미빛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WSTS에 따르면 내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1297억 6800만달러(약 169조5419억원)로, 올해(896억100만달러)에 비해 44.8%나 급증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는 메모리 가격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데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등은 올 4분기 대형 스마트폰 고객사에 공급하는 모바일 D램 가격을 25~28%가량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PC용 D램 가격도 모처럼 반등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올 10월 대비 3.33% 오른 1.55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10월 15.38% 오른 데 이어 두달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D램 가격이 오름세로 돌아선 것은 주요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감산 효과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당시 “메모리 업황이 바닥을 찍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최근 고객사들로부터 재고 확보와 관련해 문의가 다수 있었다”며 “생산 하향 조정도 지속하고 있는 만큼 재고 수준은 D램과 낸드 모두 올 5월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감소 중이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고객사 재고 수준이 정상화하면서 메모리 수요는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요가 공급을 앞지를 것으로 보이는 만큼 추후 D램 가격 오름세는 더 가팔라질 전망이다.
긍정적인 관측이 쏟아져 나오면서 일각에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영업이익 합산 규모가 20조원을 웃돌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증권 업계는 내년 삼성전자 DS 부문 영업이익 전망치가 최대 18조원에 달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8조4696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됐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해 기나긴 ‘반도체 한파’ 터널을 지나 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조만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HBM, DDR5 등 스페셜티 메모리 질주에 힘입어 내년 실적은 대폭 향상될 전망이다”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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