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디지털, 다시 ‘점프 업’] ① K-반도체, ‘AI 시대’ 주도권 잡았다…“HBM·CXL 등 차세대 메모리 ‘선점’”

미국·유럽 등 주요국, 자국 반도체 산업 역량 제고 박차
중국도 ‘반도체 굴기’로 맹추격…K-반도체 위협
한국, 기술 초격차 전략 성과로 이어져…차세대 메모리 기술 우위
삼성·SK, AI 시대 HBM·CXL 선점…“K-반도체 위상 더 높아져”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디지털 관련 산업이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중국에 대한 서방의 제재가 심화하며 지정학 리스크가 커지고 있고, 각 산업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국 굴기는 국내 기업들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대표 기업들은 기술 초격차 전략을 바탕으로 차세대 기술을 확보하며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들과 격차를 벌이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관련 산업의 업황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줄곧 고수해 온 기술 초격차 전략이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국내 디지털 3대 업종의 기술 경쟁력은 어느 단계이고, 그동안의 부진을 털고 한단계 도약하기 위한 조건들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점검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①K-반도체, ‘AI 시대’ 독주 체제…“HBM 등 차세대 메모리 경쟁자가 없다”

‘디지털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대만 등 주요국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역량을 키위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쏟아 부으며 공급망 강화에 힘쓰는 모습이다. 한때 후진국으로 평가 받던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정부의 든든한 지원 아래 첨단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선도해 온 K-반도체 산업은 이처럼 경쟁국의 거센 도전과 함께 극심한 수요 둔화로 큰 위기를 겪어 왔다. 

K-반도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메모리에서 해답을 찾았다. AI(인공지능) 열풍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과 새로운 D램 규격으로 주목 받는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 등 차세대 메모리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낙점한 것이다. 삼성·SK는 해당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위상을 높이고, ‘제2의 K-반도체 시대’를 연다는 구상이다.

◇미국·유럽 등 경쟁국 견제-중국은 턱 밑까지 추격…사면초가 처한 K-반도체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반도체 생산 능력(200mm 웨이퍼 환산 기준)은 지난해 대비 6.4% 증가한 월 3000만장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와 반도체 재고 조정 등의 여파로 생산 시설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이에 생산 능력 확장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생성형 AI 및 고성능 컴퓨팅(HPC) 시장 확대로 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짓 마노차 SEMI CEO(최고경영자)는 “AI 열풍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메모리 업황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이란 장미빛 전망이 제기됐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올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는 1297억 6800만달러(약 170조4892억원)로 지난해(896억100만달러)에 비해 44.8%나 급증할 것으로 점쳐진다.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반도체 업종은 AI발 훈풍에 힘입어 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미래 반도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미 주요국들은 자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2022년 8월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발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 현지에 반도체 생산 시설을 짓는 반도체 업체들에 향후 5년 간 527억달러(약 69조2478억원)의 보조금 지원을 골자로 한 반도체 지원법에 서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공장 설립 지원에 390억달러(약 51조2460억원), 연구개발(R&D)·인력 육성 지원에 132억달러(약 17조3448억원) 등이 투입될 예정이다. 또 향후 10년 간 설비 투자 비용의 25%에 해당하는 세액 공제 혜택도 제공키로 했다. 세제 혜택 규모는 무려 240억달러(약 31조5360억원)에 달한다.

유럽연합(EU)도 역내 반도체 산업을 키우기 위해 총 430억유로(약 62조43억원) 규모의 보조금 및 투자를 지원하는 ‘EU 반도체법(Chips Act)’ 시행에 합의했다. 일본도 반도체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키로 했다. 대만은 반도체 업체들의 R&D 세액 공제율을 15%에서 25%로 늘리는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비단 이들 선진국 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후발주자로 통하던 중국도 글로벌 시장 내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중국은 정부의 전폭적인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첨단 반도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주요 외신들은 중국 화웨이가 비밀 반도체공장을 짓고 있다고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를 인용해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SIA의 주장을 인용해 “화웨이가 지난해부터 자체 반도체 생산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SIA에 따르면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선전시로 부터 약 300억달러(약 39조42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당국의 든든한 지원 덕분에 화웨이는 최소 두 곳 이상의 반도체공장을 인수하고, 새로운 공장 3개를 더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화된 반도체 기술 역량은 중국이 자체적으로 AI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화웨이 본사. <사진=화웨이>

첨단 반도체를 향한 중국의 투자 규모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스위스 최대 투자은행 UBS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내놓고 있지만 중국은 챗GPT 같은 생성형 AI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밀어붙이기 위해 투자를 더 늘릴 것이다”고 말했다.

생산 능력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다. 지난 11일 블룸버그 통신은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스(Barclays)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은 5~7년 안에 배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다”고 밝혔다.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중국의 반도체 생산 능력이 급격히 늘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유럽 등 경쟁국과 중국이 반도체 역량 제고에 전력을 다하면서 그동안 선두 자리를 지켜 온 K-반도체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대규모 자금 지원, 세제 혜택 등을 앞세운 경쟁국의 견제에 이어 중국의 반도체 굴기도 심화하면서 K-반도체가 큰 위협을 받고 있다”며 “경쟁 우위를 서둘러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K-반도체의 위상은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기술 초격차 전략 앞세운 삼성·SK…HBM·CXL 등 차세대 메모리로 차별화 속도

K-반도체 대표 주자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경쟁자들의 출현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삼성·SK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꾸준히 고민해 왔다.

삼성·SK가 점찍은 방안은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한 차세대 메모리 기술 선점이다. 경쟁자들과의 기술격차를 더 벌리고, 차세대 메모리 분야에서 확실하게 시장을 선점함으로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 초격차 전략은 AI 시대를 맞아 위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당장, AI 칩 시대에 핵심부품으로 부상한 HBM 부문에서 국내 업체들의 약진이 기대된다.

엔비디아, AMD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급성장하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AI 분야의 정보 처리에 주로 사용되는 핵심 장치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GPU를 활용하면 문장 생성 및 분석 등 생성형 AI 학습 등 여러 개의 연산을 병렬 방식으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

주목할 점은 고도의 작업을 빠르게 해내는 고성능 GPU를 구동하기 위해선 HBM과 같은 고성능 메모리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AI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수록 HBM 수요는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AI 칩 특수가 확대될 수록, K-반도체의 입지는 더 굳건해질 전망이다. 삼성·SK가 글로벌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HBM 시장은 삼성·SK 두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0%에 달한다. 삼성전자도 40%의 점유율을 확보하면서 SK하이닉스의 뒤를 바짝 추격 중이다. K-반도체가 전 세계 HBM 시장의 90% 이상을 싹쓸이 하고 있는 셈이다.

HBM 수요가 확대되면서 향후 K-반도체의 입지는 더 강화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에서 각각 46~49%를 차지하고, 미국 마이크론이 4~6%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차세대 메모리 기술인 CXL 분야에서도 국내 업체들이 입지를 굳힐 전망이다.

AI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선 AI 연산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AI 연산의 경우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탓에 PCIe와 같은 기존 컴퓨팅 규격 기반에서는 온전히 AI 반도체를 구동하기 어렵다. PCIe 규격에선 AI 연산을 돕는 메모리를 원하는 용량만큼 확장하기가 쉽지 않다.

이같은 단점을 해소한 것이 CXL이다. CXL은 확장성이라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서버에 필요한 D램을 거의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CPU, GPU 등의 프로토콜(통신 규약)을 하나로 묶어 데이터 병목 현상을 줄이고, 전력 효율에도 큰 도움을 준다.

이에 따라, 최근 CXL 규격을 지원하는 차세대 메모리의 필요성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시장정보업체 욜그룹은 2028년 글로벌 CXL 시장 규모가 158억달러(약 20조777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중 80%에 달하는 125억달러 가량은 CXL D램 시장에 집중될 것으로 관측됐다.

삼성전자 128GB CXL 2.0 D램. <사진=삼성전자>

CXL D램에 대한 향후 전망은 매우 밝은 상황이다. 2027년 이후 모든 CPU(중앙처리장치)가 CXL과 연동되도록 설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미 CXL 규격을 적용한 CPU의 출시가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인텔은 AI 성능이 대폭 향상된 서버용 CPU 제온 스케일러블 프로세서 5세대 제품을 공개했다. 해당 제품은 데이터센터의 서버 내에서 각종 정보를 연산하고 처리하는 핵심 칩이다.

눈여겨볼 점은 이번 칩부터 CXL 규격 적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텔 관계자는 “일부 5세대 칩은 CXL 타입3 워크플로우를 선도적인 클라우드 서비스 공급 업체에 지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인텔이 CXL 규격을 채택한 CPU를 내놓으면서 향후 메모리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텔이 전 세계 서버용 CPU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번 신제품을 시작으로 CXL D램 생태계가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맞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CXL 기술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XL D램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다. 삼성은 2021년 5월 세계 최초로 CXL 기반 D램 기술을 개발했다. 이어 1년 만인 2022년 5월엔 DDR5 기반 512GB CXL D램 제품을 선뵀다.

2021년 10월에는 CXL D램에 대한 시스템 개발자들의 기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스케일러블 메모리 개발 키트(Scalable Memory Development Kit)’를 개발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5월엔 CXL 2.0을 지원하는 128GB CXL D램을 공개하며, 차세대 메모리 시장을 선도하고 나섰다. 삼성은 연내 해당 제품을 본격 양산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친 상태다.

최장석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신사업기획팀장 상무는 “삼성전자는 CXL 컨소시엄의 이사회 멤버로서 CXL 기술을 선도하고 있다”며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데이터센터·서버·칩셋 등 CXL 생태계를 더욱 확장해 나갈 것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CMM-D △CMM-DC △CMM-H △CMM-HC 등 CXL 관련 상표 4개를 잇달아 출원하며 상용화를 예고했다.

SK하이닉스 CXL 2.0 D램. <사진=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도 2022년 8월 DDR5 D램 기반 첫 96GB CXL 메모리 샘플을 개발했다. 또한 같은해 10월에는 업계 최초로 CXL 기반 연산 기능을 통합한 메모리 솔루션 CMS(Computational Memory Solution) 개발에 성공하고, 이를 ‘OCP 글로벌 서밋 2022’에서 공개한 바 있다. CMS는 HPC(고성능컴퓨팅) 물리 서버에 활용되는 응용 프로그램의 성능을 개선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준다. 또 간접 메모리 접근을 가속화하고, 데이터 이동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지난해 11월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슈퍼컴퓨팅 2023(SC 2023)’ 콘퍼런스에선 ‘나이아가라: CXL 분리형 메모리 솔루션’ 플랫폼 시제품도 선뵀다. 해당 플랫폼은 AI와 빅데이터 분산 처리 시스템에서 높은 수준의 성능 향상을 제공할 수 있는 ‘풀드(pooled) 메모리 솔루션’으로 주목 받았다.

최근엔 DDR5 기반 96GB·128GB CXL 2.0 메모리 솔루션 제품을 중심으로 올해 상반기 내에 고객 인증을 완료하고, 하반기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SK하이닉스는 고객과 협업을 통해 샘플을 제공하고, 상용화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의 CXL 2.0은 DDR5만 탑재한 기존 시스템과 비교해 대역폭 50% 향상, 용량 최대 50~100% 확장 등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CXL은 메모리 확장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다”며 “최첨단 D램 및 진보 패키지 기술을 개발해 CXL 기반의 다양한 대역폭·대용량 확장 메모리 솔루션 제품을 순차적으로 출시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AI 시대 핵심인 HBM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CXL 시장에서도 무난히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기존 일부 메모리 칩 시장에서 중국을 비롯한 경쟁자들의 추격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지만, 차세대 메모리 칩 분야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확고히 할 경우,  K-반도체의 경쟁력을 오히려  더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모리 업계 관계자는 “CXL은 일부에 한해 개발됐을 뿐 생태계 전체를 아우르는 기술은 부족한 상황이다”며 “전 세계 CXL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인지한 삼성·SK가 서둘러 CXL 기술을 확보한다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K-반도체의 위상은 한단계 더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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