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건설업] ①태영건설, 급한 불은 껐지만…‘워크아웃’ 졸업 가능할까

태영건설, 부채실사·부실 PF 사업장 정리 등 워크아웃 변수
건설사, 유독 유동성 위기에 취약…대출의존도 높은 구조 탓
쌍용·현대·대우건설 등 역대 워크아웃 절차도 ‘가시밭길’

지난해 각종 악재로 힘든 한 해를 보낸 국내 건설업계가 올해도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연초부터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한 시공 능력 평가 16위의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에 돌입했고, 지방 건설사들의 부도와 법정관리가 줄을 잇고 있다. 이에 현재 건설사가 직면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진단해 보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 본사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일 채권단 96.1% 동의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개시됐다. 이에 따라 태영건설의 모든 금융채권에 대한 상환은 오는 4월 11일까지 유예된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불은 껐지만 태영건설은 채권단으로부터 자산부채실사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능력 등을 평가받아야 한다. 그 이후에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통해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고 경영정상화까지 이뤄내야 한다.

경영 정상화까지 함난한 가시밭길 예상

태영건설은 우여곡절 워크아웃까지 개시했지만 경영정상화까지는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태영건설은 4개월 동안 부동산 PF 사업장들에 대한 실사를 받는다. 실사는 PF 사업장별 처리 방안을 확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실사 회계법인은 태영건설의 자산부채 실사와 존속능력평가 등을 진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채 규모가 대폭 늘어날 경우 워크아웃이 무산될 수도 있다.

현재 태영건설의 보증채무는 총 9조5000억원 가량이다. 이 중 유위험 보증채무인 우발채무는 브릿지론 보증 1조2000억원과 분양률 75% 미만 본PF 보증 1조3000억원이다. 하지만 실사 과정서 태영건설이 ‘무위험 보증채무’로 판단한 7조원 중 일부는 우발채무로 분류될 수도 있다.

앞서 산업은행은 태영그룹을 향해 “태영건설 실사 과정에서 계열주와 태영그룹이 약속한 자구계획 중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거나 대규모 추가 부실이 발견될 경우, 워크아웃 절차를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PF 사업장에 대한 처리도 풀어야할 문제다. 현재 태영건설이 참여한 PF사업장은 전국 60곳으로 추정된다. 이 중 브릿지론 사업장이 18곳, 본PF 사업장이 42곳이다. 이 중 사업성이 좋지 않은 곳은 모두 정리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장 중 분양이 완료된 주택과 비주택 사업장은 당초 일정대로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분양 진행 중인 주택사업장은 분양률을 제고해 사업장 안정화 방안을 강구할 방침이다. 또 공사를 개시하지 않은 사업장은 실행가능성을 검토해 조기 착공 추진, 시공사 교체, 사업 철수 등 처리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장들도 난관이 많다. PF 사업 정상화를 위해선 공사비가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않다.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유동성 부족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주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출만기 연장이 이뤄진 다수 사업장은 분양 또는 매각실패가 이뤄진 경우여서 그 자체로서 사업성이 확보되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구단위계획 변경, 금융지원 등을 통해 위기 사업장들의 사업성을 높여 부실규모를 최대한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태영건설이 약속한 자구 계획을 제대로 이행할지, 실시 기간 중 필요한 운영 자금 조달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워크아웃 졸업까지 변수다.

태영건설이 참여한 PF 사업장 60곳 정리방안. <자료=금융위원회>
태영건설이 참여한 PF 사업장 60곳 정리방안. <자료=금융위원회>

왜 건설사는 유동성 위기에 취약한가

건설사들이 유독 유동성 악화에 취약한 이유는 다른 업종에 비해 대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건설사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고 건물을 지은 후 분양권을 팔아 벌어들인 수익으로 대출금을 갚는다. 이 같은 사업구조상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거나 분양 실적이 저조하면 유동성 악화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두산건설은 유동성 위기하면 떠오르는 건설사 중 하나다. 두산건설은 2000년대 일산 주상복합아파트인 ‘두산위브더제니스’ 사업의 공사를 맡았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2009년 분양에 나섰던 일산위브더제니스의 미분양으로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두산건설은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고, 이후 오랜 시간 적자에 시달렸다.

조주현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개발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 취득인데, 대개 시행사들은 토지를 취득할만큼 자본이 없다”며 “사업이 어떻게 돼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한 채 자금을 조달하는 개발 초기 단계가 가장 위험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가장 문제는 자체 지분 투자 없이 차입금으로 사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환경 변화, 원자재 가격 변화, 협의 불성사 등 주변 요인들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쁠 때는 굉장히 취약한 사업 구조”라고 설명했다.

현대·대우건설는 워크아웃 졸업

태영건설 뿐만 아니라 과거 워크아웃 절차를 밟은 대부분 건설사들이 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경영정상화를 이룬 건설사가 있는 반면 회생절차에 돌입한 건설사들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닥친 유동성 위기를 피하지 못한 현대건설은 2001년 8월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대대적인 구조조정 등을 통해 5년 만인 2005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할 수 있었다.

대우건설 역시 IMF 당시 닥친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지 못해 1999년 8월 워크아웃에 돌입하고 4년 만인 2003년 12월 졸업했다. 하지만 그룹이 해체되면서 주인을 찾지 못한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 그룹과 KDB산업은행 등을 거쳐 2021년 12월 중흥그룹에 인수됐다.

2009년 워크아웃 개시 당시 17위 건설사였던 경남기업은 임직원 수 감축, 급여 삭감 등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2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쌍용건설은 2013년 3월 워크아웃 절차를 밟았지만 1100억원 가량의 우발채무가 드러나면서 그해 말 법정관리에 들어간 바 있다. 이후 쌍용건설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투자청에 팔렸다가 2022년 말 글로벌세아에 인수됐다.

워크아웃을 졸업하지 못한 채 파산하는 기업도 있다. 동아그룹 계열사였던 동아건설은 비싼 이주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고 자금 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제2금융군으로부터 단기자금을 빌렸다. 이후 2000년 그룹 전체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그룹은 공중분해됐다.

월드건설과 벽산건설도 2010년 워크아웃을 신청했지만 각각 2011년과 2013년 법정관리 절차를 거쳤다.

이 처럼 유동성 문제에 취약한 건설업계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발형 펀드 등 간접투자기구의 발달과 사업의 객관적 분석 등이 필요하다.

조주현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투자자 중에선 위험을 감수하면서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도 있다”며 “간접금융기구에 대한 제도를 만들어 이들을 지분 투자자로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기업을 평가하는 기업평가원처럼 정부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업의 위험성을 평가해줄 수 있는 기구나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CEO스코어데일리 / 박수연 기자 / dduni@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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