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부발전(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한전KPS 하청 업체 소속 비정규직 근로자 고(故) 김충현씨의 사망 사고와 관련해 경찰과 고용노동부(노동부)가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서부발전이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특히 회사측이 사고 책임을 해당 노동자에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이정복 서부발전 사장이 취임 이후 줄곧 안전을 최우선으로 실천하겠다고 공언해 온 터라 더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8일 경찰과 노동부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10시께부터 밤늦게까지 서부발전 본사와 한전KPS 본사, 태안 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태안사무처, 2차 하청 업체인 한국파워O&M 작업 현장 등 5곳에 대해 동시 압수 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이번 조사를 통해 직접적인 사고 원인 뿐만 아니라 사망 사고에 영향을 준 작업 환경의 구조적 원인도 함께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노동부도 서부발전과 한전KPS의 작업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 2인 1조 작업 여부, 끼임 방지를 위한 방호 장치의 설치 여부 등 법 위반 사실을 밝히기 위한 증거 자료 등을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경찰과 노동부가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압수 수색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부분은 서부발전의 중대재해처벌법 저촉 여부다.
사망 사고가 발생한 태안 화력발전소의 설비 정비 작업은 원청인 서부발전이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 대신 하청 업체인 한전KPS에 정비 업무를 위탁했다. 한전KPS는 다시 전문 정비 업체인 한국파워O&M에 재하청을 줬다.
이러한 하도급 구조로 인해 서부발전은 명목상 원청이긴 하나 직접적인 관리·감독 권한이 없는 만큼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사고가 발생한 태안 화력발전소 내 태안사업처 기계공작실은 한전KPS가 설비와 인력을 관리하는 전담 구역이라는 점에서, 서부발전은 단순 임대인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사망 사고와 관련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며 “경영 책임자인 이 사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 보호 관리 책임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선 서부발전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는 서부발전과 한전KPS가 체결한 범용 선반 기계 임대차 계약서를 공개하면서, 이번 사망 사고에 대한 서부발전의 책임을 재차 주장했다.
대책위는 “계약서를 보면 ‘을(한전KPS)은 임차 공기구의 안전 관리에 주의하고, 갑(서부발전)의 지시에 따라 을의 비용으로 위험 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이는 서부발전도 사망 사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밝혔다.
대책위가 공개한 자료는 지난해 12월 발주처인 서부발전과 한전KPS가 맺은 ‘태안 9·10호기 기전 설비 경상정비공사 전용공기구(공작기계) 임대차 계약서’다. 대책위는 계약서 내 임차인의 관리 의무를 명시한 제6조 조항을 들어 발주처인 서부발전에 사고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대책위는 “관련 증거 자료들을 모아 서부발전을 고발할 예정이다”며 “서부발전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고 강조했다.
고 김충현씨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두고 노사 간 이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서부발전이 사고 관련 보고서에 숨진 하청 근로자의 책임이라고 밝힌 점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서부발전은 해당 사고 경위를 다룬 최초 보고서에서 “김씨가 한전KPS 기계공작실에서 임의로 주변을 정리하던 중 끼어 의식이 없다”고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KPS와 한국파워O&M도 “원청의 작업 지시가 없었다”고 밝혀 서부발전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이와 관련해 서부발전은 “보고서에 사망한 하청 근로자가 임의로 작업했다는 식의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면서도 “사실 여부를 떠나 이같은 언급이 된 점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원청의 작업 지시 없이 하청 근로자가 임의로 작업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성명을 통해 “원청의 보고서는 6년여 전 고 김용균씨가 사고로 숨졌을 당시 ‘왜 그곳에 갔는지 모르겠다’던 서부발전의 말과 똑같다”며 “또다시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기 위한 대응 법칙이 작동했다”고 규탄했다.
특히 2018년 이후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만 두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안전 최우선 경영을 주창해 온 이 사장의 경영 기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9월 서부발전 사장에 취임한 이 사장은 ‘Safety Together, Create Future; 함께 하는 안전 경영으로 서부발전의 미래를 창출한다’는 비전을 선포하고,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 및 안전 사고 사망자 수 ‘0(제로)’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이 사장의 안전 최우선 경영 기조에도 불구하고 서부발전은 지난해 공공기관 안전 관리 등급 심사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획재정부(기재부) 공공기관 안전 관리 등급 심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서부발전은 ‘안전 수준’ 항목 내 ‘작업장 안전 관리’ 분야에서 다소 저조한 C 등급을 받았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작업장 기본 안전 보건 관리 수준’, ‘화재 및 화학 물질 사고 예방 활동 수준’, ‘위험 작업 및 상황 안전 관리’ 등에 모두 C 등급이 부여됐다.
다만 서부발전은 해당 심사 전체 평가에서 종합 등급 2 등급으로, 전체 공공기관 중 최상위 수준에 랭크됐다. ‘안전 수준’ 항목을 제외한 ‘안전 역량’ 및 ‘안전 성과’ 항목에서 양호한 성적을 거둔 덕분이다.
또한 기재부는 보고서에서 개선 필요 사항도 짚었다. △작업장 내 경고 표지가 누락되거나 노후로 인해 시인성이 저하된 부분 개선 필요 △외부 반입 기계류에 대한 점검 절차 마련 및 점검 누락 방지 대책 필요 △현장 작동성 평가의 지적 사항(컨베이어 끼임 위험, 충전부 접촉 위험 등)에 대한 개선 필요 △산업재해가 발생할 위험 상황에서 작업 중지가 실행되지 않는 근본 원인에 대한 해결 방안 마련 필요 등이다.
그러나 이번에 사망 사고가 발생함으로 인해 서부발전이 이들 사항을 개선했는지 여부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 사장이 취임과 동시에 강조해 온 안전 최우선 경영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작업 현장 내 노동자 안전 관리에 소홀한 사이 이 사장은 올해 1억5691만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안전 사고까지 발생하면서, 일각에선 이 사장이 새 정부 들어 공기업 CEO(최고경영자) 중 가장 먼저 퇴출 대상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내놓고 있다.
한편 고 김충현씨는 지난 2일 오후 2시 30분께 태안 화력발전소 내 한전KPS 태안사업처 기계공작실에서 길이 약 40cm, 지름 7~8cm 쇠막대를 ‘CVP 벤트 밸브 핸들’로 절삭 가공하는 작업을 하다 공작 기계에 끼여 숨졌다. 그는 서부발전 태안 화력발전소의 1차 정비 하청 업체인 한전KPS의 재하청을 받은 한국파워O&M 소속으로 사망 당일 혼자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오창영 기자 / dongl@ceoscore.co.kr]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