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승차감·연비 모두 합격, 약점은 단 하나”…르노 필랑트

세단·SUV 경계 파고든 르노 플래그십 크로스오버
뛰어난 핸들링·세단급 정숙성과 높은 연비 등 강점
사흘간 직접 몰아보니…아쉬움은 ‘사륜구동 부재’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세단인가, SUV인가. 르노 필랑트 앞에서 이 질문은 큰 의미가 없다. 르노코리아가 오로라 프로젝트의 두 번째 모델로 내놓은 이 플래그십 크로스오버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그 경계를 파고들었다. 낮게 깔린 차체와 시원하게 트인 시야가 그 답이다. 차에 타면 몸은 세단처럼 낮게 가라앉지만, 시선은 여전히 SUV의 눈높이에 걸쳐 있다. 사흘을 함께 달려보니 어정쩡해 보이던 포지션이 오히려 가장 영리한 선택으로 다가왔다.

시승차는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 모델로, 테크노와 아이코닉 위에 놓인 상위 트림이다. 르노의 모터스포츠 브랜드인 알핀의 이름을 빌려 스포티한 감성을 입혔다. 메탈릭 블랙 루프와 글로시 블랙 어퍼 테일게이트로 차체 상단과 후면을 검게 이은 것이 이 트림의 특징이다. 가격은 친환경차 세제 혜택 반영 기준 4971만9000원이다.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먼저 눈이 가는 건 비율이다. 전장 4915mm, 전폭 1890mm, 전고 1635mm로 덩치는 분명 큰데, 높이가 낮다. 같은 플랫폼을 공유하는 그랑 콜레오스보다 전고를 45mm 낮춘 게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보닛에서 시작해 트렁크 끝까지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흐르는 루프 라인은 SUV보다는 패스트백 세단을 닮았다.

전면은 르노의 새 패밀리룩을 따른다. 빛으로 완성한 로장주 엠블럼과 얇게 그은 풀 LED 헤드램프가 차폭을 더 넓어 보이게 한다. 후면도 얇은 띠처럼 이어진 LED 테일램프와 블랙 패널로 무게중심을 낮췄다. 다만 이 쿠페형 디자인에는 대가가 따른다. 뒷유리가 살짝 누운 형태라 룸미러로 보이는 후방 시야가 다소 답답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스마트 룸미러로 전환하면 불편한 부분은 금세 사라진다.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문을 열면 openR 파노라마 스크린이 눈에 띈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세 장을 가로로 이어 붙인 구성이다. 실제로 보면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 조수석 전용 화면이 하나로 연결된 듯하다. 스티어링 휠은 상단과 하단을 모두 깎아낸 육각형 모양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전방 시야는 분명 넓어진다. 에스프리 알핀 트림 모델은 시트의 라이팅 로고와 삼색 라인 데코, 도어·콘솔을 따라 흐르는 블루 스티치로 개성을 드러낸다. 마감 품질도 가격값을 충분히 했다.

휠베이스 2820mm라는 수치는 2열 공간의 여유를 만들었다. 르노코리아에 따르면 뒷좌석 레그룸은 320mm, 헤드룸은 886mm다. 낮은 전고 때문에 머리 공간이 부족할까 걱정됐지만,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를 얹고도 헤드룸이 874mm나 확보돼 답답함은 없었다. 적재 공간은 기본 633L, 2열을 접으면 2050L까지 확장된다. 앞좌석 등받이 뒤에는 태블릿 등 액세서리를 꽂아 쓰는 히든 포트를 더해 활용도를 챙겼다.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파워트레인은 르노의 직병렬 듀얼 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E-Tech다. 1.5L 터보 가솔린 엔진이 150마력과 25.5kg·m의 힘을 내고, 여기에 100kW 구동 모터와 60kW 시동 모터가 붙는다. 시스템 총출력은 250마력으로, 그랑 콜레오스보다 5마력 웃돈다. 숫자로는 미미하나, 주행 모드를 컴포트나 스포츠로 바꿨을 때 체감되는 움직임은 분명 다르다.

강점은 정숙성이다. 1열과 2열에 모두 이중 접합 차음 유리가 들어가고,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이 받쳐준 덕분이다. 전기 모터로 주행하다 내연기관 엔진이 개입하는 경우에도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이 적었다. 고속 구간에서 풍절음을 억제하는 능력도 기대 이상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핸들링이다. 차체가 낮은 만큼 코너에서 차가 옆으로 덜 기울고, 운전대를 꺾는 대로 군더더기 없이 방향이 잡힌다. 크로스오버라는 체급을 잊게 만드는 응답성이다. 주파수 감응형 댐퍼와 멀티링크 서스펜션의 조합은 거친 노면에서도 충격을 한 번 걸러 부드럽게 받아냈다.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르노 필랑트 1.5 하이브리드 에스프리 알핀.<사진=김병훈 기자>

사흘 동안 기억에 남는 건 결국 승차감과 연비였다. 세단에 가까운 시트 포지션과 잘 정돈된 하체 덕에 장거리 주행에도 피로가 덜 쌓였다. 노면의 정보는 충실히 전달하되 충격은 걸러내는 균형이 좋은 세팅이었다. 공인 복합연비는 15.1km/L지만, 실주행 연비는 에코 모드로 놓고 달리면 20km/L를 넘기기도 했다.

약점은 구동 방식을 꼽을 수 있다. 필랑트는 전륜구동 단일로, 사륜구동 선택지가 없다. 이만한 출력과 하체를 갖추고도 사륜구동 옵션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낮은 무게중심이 만든 민첩한 핸들링과 뛰어난 정숙성, 높은 연비 등을 고려하면 필랑트는 5000만원 안팎에서 보기 힘든 프랑스식 플래그십 모델이다.

[CEO스코어데일리 / 김병훈 기자 / andrew45@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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