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AI·사이버 위협 커지는데, 국내 사이버보험은 ‘걸음마’…“정부 역할 시급”

보험硏, ‘2026 국제세미나’ 개최…AI·사이버 리스크 시대 보험의 역할 진단
수요·공급 이중 취약…“민영보험-재보험-정부 백스탑 3단계 구조 갖춰야”

손재희 보험연구원 실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한경협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6 International Workshop on Risk and Insurance’ 국제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인공지능(AI) 확산과 사이버 위협이 동시에 커지는 가운데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왔다. 전통적인 보험의 역할과 ‘부보가능성(보험사가 특정 위험을 인수해 보험상품으로 보장할 수 있는 성립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수요자의 낮은 리스크 인식과 예산 부족, 공급자의 데이터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법·제도 정비와 경제적 유인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보험연구원은 포항공과대학교,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교와 공동으로 29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2026 International Workshop on Risk and Insurance’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글로벌 석학들의 주제 발표에 이어 국내 전문가들이 참여한 패널토론을 통해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의 현실을 진단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대안을 논의했다. 첫 번째 세션인 ‘AI 혁명과 사이버 리스크’에서는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이 직면한 인프라 부족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최용민 프로시스 언더라이팅 솔루션즈 부대표(전 민헨재보험 전무)는 국내 사이버보험 및 AI 리스크 시장을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내 시장은 이제 막 한글을 뗀 수준인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거나 철학 서적을 읽고 글을 쓰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며 시장의 현실과 기대 수준 간 괴리를 비유했다.

최 부대표는 화재보험과 비교해 사이버·AI 리스크가 가진 특수성을 설명했다. 화재는 사고 발생 시점과 피해 규모를 비교적 명확하게 산정할 수 있지만, 사이버 사고는 최초 침해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고 여러 기업이 동시에 피해를 입는 연계 손실과 시스템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어 손해 규모를 정확히 산정하기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손재희 보험연구원 실장도 공급과 수요 양측 모두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장벽이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리스크에 대한 인식과 예산”이라며 “대기업은 일정 수준의 예산을 투입해 대응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사이버 리스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제한된 예산으로 보험 가입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사이버 리스크를 표준화하고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가 쉽지 않아 보험사들도 적극적으로 상품을 개발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29일 서울 여의도 한경협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26 International Workshop on Risk and Insurance’ 국제세미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백종훈>

◇ 선별적 의무화·인센티브 병행…“정부가 마중물 역할 해야”

최 부대표와 손 실장은 개인정보 유출 배상책임보험 의무화 이후에도 국내 사이버보험 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정부가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부대표는 “보험사는 시스템적 리스크에 대한 부담과 인수 역량 부족으로 적극적인 상품 공급에 나서지 못하고, 기업들은 보안 투자를 단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장 파급력이 큰 분야를 중심으로 한 선별적 의무화가 필요하다”며 “대규모 개인정보를 보유하거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정보통신기업, 대형 온라인 쇼핑몰, 대학병원, 교육기관 등을 대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종합 사이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 시장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중장기적으로는 민간 보험사와 재보험사가 위험을 분담하고 정부가 최종적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영국의 ‘풀 리(Pool Re)’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시했다. 아울러 “AI 기본법과 사이버안보기본법이 조속히 시행돼야 보험업계와 기업 모두 명확한 대응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 실장은 획일적인 의무화만으로는 책임보험처럼 최소한의 가입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며 인센티브 방식의 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이 경량화된 사이버 리스크 점검 절차를 이수하면 국가 인증을 부여하고, 인증 기업이 보험에 가입할 경우 정부가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과 함께 보험업계의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가 확산되면 보험산업의 영업 방식 자체가 크게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자를 대신해 보험사와 직접 상품을 비교·협상하는 에이전틱 AI 환경이 가속화하면 기존의 설계사 중심 마케팅 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손 실장은 “앞으로는 소비자와 보험사가 직접 소통하기보다 소비자의 AI 에이전트와 보험사의 AI 에이전트가 상품과 가격을 비교·협상하는 방식이 일반화될 수 있다”며 “전통적인 마케팅과 판매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환경에 대비해 보험사들도 새로운 고객 접점과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CEO스코어데일리 / 백종훈 기자 / jhbaek@ceosco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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